최근 20년 동안 전 세계에서 7,384건의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40억 명이 피해를 봤고 해마다 6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재해 수는 1.7배 늘었는데, 전체 재해의 90%가 기후 변화와 관련된다. 인명 피해는 선진국에 비해 저소득국가에서 4배나 많이 발생했다. 기후 위기가 기후 재해를 부추기면서, 수많은 사람이 생존의 필수 요소인 집, 즉 살 곳을 잃은 것인데, 재해는 주로 기후 위기에 책임이 거의 없는 나라에서 발생한다. (본문 중)
유미호(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센터장)
지난달 25일, 전 세계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걸었다.1)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만도 3만 5천 명이 걸으며 ‘기후 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저마다 ‘죽음’이 아닌 ‘생명’을 선택할 것을 요청하는 구호가 담긴 손 피켓을 들고 기후 정의 실현을 요구한다. 기후 위기로 인한 온갖 불평등이 우리 곁에 나타나고 있고, 기후 위기가 단순한 생태계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의 문제임을 알기 때문이다.
최근 20년 동안 전 세계에서 7,384건의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40억 명이 피해를 봤고 해마다 6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재해 수는 1.7배 늘었는데, 전체 재해의 90%가 기후 변화와 관련된다. 인명 피해는 선진국에 비해 저소득국가에서 4배나 많이 발생했다.2) 기후 위기가 기후 재해를 부추기면서, 수많은 사람이 생존의 필수 요소인 집, 즉 살 곳을 잃은 것인데, 재해는 주로 기후 위기에 책임이 거의 없는 나라에서 발생한다. 매년 평균 2천1백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생기는데, 1분에 40명 이상이 난민이 되고 있는 셈이다.
특별히 세계에서 이산화탄소 배출 책임이 단 1%도 안 되는 남태평양과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들은(투발루, 마셜 제도, 키리바시, 몰디브 등) 나라 자체를 잃을 위기에 처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세계 여러 나라를 오가며 현실을 알리고 화석 연료 사용과 탄소 배출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올해 국토의 1/3이 물에 잠긴 파키스탄의 총리는 자신들이 겪은 기후 재해, 홍수를 자신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에 닥칠 기후 재앙의 신호라고 경고한다.
기후 난민, 미래의 재난이 아닌 현재의 문제다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기후 난민’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우리에게 기후 난민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재난이 아니라 이미 생존을 위협하는 현재의 문제다.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에 의하면, 지구 기온이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1.5도 증가(2100년까지의 억제 목표)하는 것을 넘어 3도까지 증가하게 되면, 북극의 얼음은 다 녹고, 해수면 상승으로 태평양 섬나라 대부분이 바닷물에 잠길 수 있다. 인도 뭄바이와 중국 상하이 등 인구 1천만 이상의 거대 해안 도시들도 침수된다.
사실 전 세계 인구의 40%가 해안에서 100km 이내에 산다. 그들 중 상당수는 고도가 해발 10m가 되지 않는 저지대나 강 하구의 삼각주 지역에 산다. 이런 지역에 사는 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볼 텐데, 이 지역의 인구는 지난 30년간 16억 명에서 25억 명으로 늘어났다. 게다가 이들 가운데 1억 7천만 명은 하루 생활비 1.9달러 이하로 살아가고 있어 같은 홍수라도 그들이 겪을 위험의 종류와 크기는 일일이 다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우리도 기후 난민이 될 수 있다
기후 재난으로 인해 이미 난민이 된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미래도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와 상관없는 일일까? 먼 나라 일로만 봐서는 안 된다. 그들을 그저 도움이 필요한 연민의 대상으로만 봐서도 안 된다. 기후 난민은 우리 모두의 미래가 될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에 의하면, 매년 2,500만 명 넘게 발생하고 있는 기후 난민이 2050년 안에 최소 12억 명에 이르게 된다.3) 비영리연구단체인 클라이밋 센트럴(Climate Central)이 제공하는 해수면 상승과 해안 홍수로 위협받는 지역을 보여 주는 대화형 지도를 보면, 해수면 상승이 1m에 이르면 우리나라 인천, 부산 등 해안과 인접한 도시의 일부도 잠기게 된다. 결국 기후 난민을 발생시키는 기후 위기를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모두를 위한 ‘내일’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기후 위기는 국제 분쟁을 키우고 있는데, 에덴동산이라 불릴 만큼 비옥했던 초승달 지역에 있는 시리아 내전의 결정적 요인도 기후 위기였다. 세계적인 곡창 지대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 역시 기후 위기로 농작물 수확량이 감소하고 곡물 가격이 불안정해져, 사회 혼란과 정치적 불안이 커졌고 결국 전쟁을 치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기후 위기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지 않도록 잘 살펴야 할 것이다. 「네이처」에 발표된 한 연구는 지구 온도 상승이 산업화 이전보다 2도까지 더 오르면 분쟁과 갈등은 지금보다 13%나 늘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4) 그러니,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로서는 특별히 기후 위기에 더욱 신중히 대처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기후 난민들이 이제까지 전쟁이나 분쟁 난민과 달리 난민법 제도 바깥에 있다는 점이다. 기후 난민의 수는 보수적으로 봐도 3천만 명이 되는데, 분쟁 난민의 3배다(국제난민감시센터 IDMC 추산). 이들은 기후 위기에 대한 책임도 없는 이들인데 피해를 보면서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후 난민을 보호하는 제도적 틀이 마련되도록 국내외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상관없다 하기에는 우리나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10위로 최상위권으로 많다. 또,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이루지 못할 경우 기후 난민이 약 5배(탄소 중립 달성 시는 2배)5)가 된다고 하니, 이런 재난에서 우리나라라고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일상이 된 기후 재난, 어떻게 벗어날까
일상이 된 기후 재난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후 재난의 크기는 사회의 불평등한 피라미드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이정전 교수는 “환경 문제는 본래 오염이 심화될수록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이 피해를 더 크게 본다. 반면 환경 개선에 따른 혜택은 장기적으로 저소득층보다 고소득 계층이 더 많이 누린다”라고 주장했다.6) 앞서 살폈듯이 기후 문제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재난에 따른 기후 난민 문제를 풀 때도, ‘모두의 책임’ 운운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영국의 기후 변화 데이터 전문 웹사이트 카본브리프(Carbon Brief)의 분석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이하로 막으려면 어린이와 청소년은 그들의 조부모가 배출한 탄소 양의 6분의 1만을 배출해야 한다. 피해 정도로 보면, 2021년에 태어난 어린이는 60년 전에 태어난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7배나 더 많은 폭염, 2배나 더 많은 산불, 3배나 많은 가뭄과 홍수와 기근을 겪게 될 수 있다고 한다.7)
여성들도 더 큰 피해를 본다. 여성은 기후 재난 발생 시 사망률이 남성보다 14배 높으며, 기후 난민의 80%가 여성이다(세계보건기구, WHO). 특히, 가난한 나라 여성들은 기후 재난의 상황에서 더 큰 위협에 놓이게 되는데, 기후 변화 적응 대책에서마저 그들을 우선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겪을 재앙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IPCC 제6차 보고서 중 제2 실무그룹 보고서). 지금도 여성들은 홍수, 가뭄으로 깨끗한 물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져 더 먼 거리로 물을 길으러 가면서 교육 기회의 박탈은 물론 생존의 위협까지 받고 있고, 더 많은 성폭행과 괴롭힘, 건강 악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8)
유엔기후변화협약이 제시한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 원칙을 따라 ‘기후 변화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이나 ‘기후 변화에 대한 적응’도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해 온 지역과 나라에 초점을 두고 대책을 세우고 이행해 가야 한다. 전 세계의 약 52%나 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상위 10%의 부유한 사람들이 유럽 사람의 평균 수준만 배출하게 되어도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3분의 1이 줄어든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도 배출량을 줄이기는커녕 더 늘리고 있다. 그중 상위 1%는 배출 증가량이 50%의 가난한 사람보다 3배나 더 크다.9)
기후 재난으로 인한 기후 난민을 줄이려면 먼저, 부유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책임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회피하는 동안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이 기후 재난을 피하지 못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또 그로 인해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을 겪고 있음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세기말에 수십억 명에 이를지도 모르는 기후 난민을 어떻게 수용할지 묻는 것이 아니라, 애당초 사람들이 자기 집을 버리고 떠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함께 논의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기후 재난에서 자유로운 세상을 상상해 보자
스톡홀름탄성력센터가 발간한 “지구 위험 한계 안에서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이라는 보고서는 컴퓨터 모델링을 사용해 불평등 폭의 적정 한도를 산출했다. 그 기준은 전 세계 가장 부유한 10%의 사람의 소득이 인류 전체 소득의 40%를 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현재의 불평등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지구에 대한 착취가 줄어 지속가능한 삶이 가능하다고 보았다.10)
기후 재난, 기후 불평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다소 늦긴 했지만, 기후정의행진을 걷고 있는 이들의 노력이 큰 호응을 얻는다면, 마침내 그런 자유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후 약자들, 그리고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날을 꿈꾸어 보자. 그날은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세계, 모두가 함께 누리는 세상이다.
그날을 위해, 세기말 10억 이상이 될 기후 난민을 수용하는 계획을 세우려 하기보다, 그들이 애당초 자신의 집을 버리고 떠나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드는 변화를 시작하자. 서로를 위해, 지구상 모든 생명을 위해, 지구 생태계 시스템을 안정시키는 책임 있는 변화가 시작되도록 기도하고 행동하자. 변화가 필요한 이웃을 그냥 내버려 두지 말고 사랑으로 함께하자. 단지 해를 적게 끼치는 것을 넘어, 한 걸음 더 나가는 것을 날마다 상상하며 함께 행동하자. 나 아닌 단 한 사람이라도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내 보자. 무언가 내 것 아닌 것을 탐했다면 용서를 구하고, 그로 인해 아파하는 이의 상처를 치유하자. 나의 필요를 잘 살피며 정말 필요한 것만으로 사는 기쁨을 누려 보자. 무엇보다도,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는 기후 난민을 생각하며, 기후 재난에 가장 취약한 이들을 돌보는 일에 마음을 다하자. 그것이 죽음이 아닌 생명의 길이요, 사랑으로 최악의 기후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길이다.
정의의 하나님, 당신의 아들은 자신을 내어 주는 희생적 사랑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우리도 불의에 맞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가 세상의 가장 취약한 이들을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냉정한 과학적 분석을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착취하는 사악한 제국들을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기후 위기의 절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돌아봐 주소서. (26가지의 ‘기후중보기도’ 중에서)
2) 유엔 재난위험경감사무국(UNDRR), “2000-2019 세계 재해 보고서”(2020)의 내용을, 이근영, “기후변화 20년, 자연재해 1.7배 늘었다”, 「한겨레」, 2020. 10. 13.에서 재인용.
3) 박하얀, “기후 난민 확산, 나라 안 따진다”, 「경향신문」, 2021. 8. 15.
4) 윤신영, “기후변화와 극한기후, 내전의 씨앗이 되다”, 「동아사이언스」, 2019. 6. 13.
5) 이재은, “금세기말 ‘기후난민’ 5배 늘어난다….가뭄이 주요 원인”, 「뉴스;트리」, 2022. 5. 9.
6) 이정전, “소득 분배와 환경 문제”, 「도시와 빈곤」, 16호(1995.8): 1-16.
7) 권승문, “미래세대 기본권 투쟁 위한 기후소송”, 「그린포스트코리아」, 2022. 08. 28.
8) 김표향, “지구 병들수록 더 아픈 건 소녀들… 기후정의가 ‘젠더정의’인 이유”, 「한국일보」, 2021. 11. 09
9) 조천호, “가난하거나 어리거나…기후위기와 불평등은 얽혀 있다”, 「한겨레」, 2022. 2. 20.
10) 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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