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종교개혁기념주일에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16세기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언급하며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과 같은 개혁가들의 모토를 거듭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아니면 ‘성인 세례의 정당성과 비폭력 무저항의 윤리’와 같이 낯선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할까? 그런데 이 모두가 16세기 교회가 답해야 했던 그 시대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개혁가들은 우리가 계속해서 500년 전 질문에 머물러 있는 것을 바랄까? 아니라면, 지금 우리 시대에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무엇일까? (본문 중)

김성한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 동북아 대표)

 

수녀원에 간 메노나이트

 

오랜 시간 복음주의 대학생 선교 단체에서 일하던 나는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MCC)1)의 평화교육가로 일하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새로운 일을 시작하던 날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내 전임자이자 동료인 크리스 라이스와 함께 부산에서 하루를 머물며 화해의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통역자와 강사로 선 그날, 내 앞에는 70명이 넘는 수녀님들이 앉아 있었다. 그곳은 부산 광안리에 있는 가톨릭 수녀원이었다. 장로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이른바 ‘복음주의권’에서 활동하다가 이제는 아나뱁티스트-메노나이트 신앙고백을 하는 내가, ‘공식적으로’ 첫 외부 강의를 시작하는 자리는 놀랍게도 장로교도 감리교도 아닌 수녀원이었다.

 

“애도(lament)와 화해의 사역”에 대해 준비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내가 일하고 있는 MCC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필요했다. 그리고 MCC에 대해 말하려면, 16세기 종교개혁과 급진적 종교개혁으로 분류되는 아나뱁티스트[Anabaptist, 재세례(침례)파]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 그곳에서도 아나뱁티스트는 낯선 전통이고 생소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수녀님들과 나눴던 이야기를 돌아보았다.

 

아나뱁티스트는 16세기 종교개혁의 여러 그룹 중에서 급진적인 개혁을 추구했던 그룹으로 여겨집니다. 이들은 루터, 칼뱅, 츠빙글리와 같이 교회의 교권 남용과 부패에 대해 저항했고, 교회의 전통보다 성서의 권위가 더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세례받은 사람’이라는 의미의 ‘아나뱁티스트’라는 이름처럼, 이들이 다른 개혁가들과 다른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세례에 대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당연히 유아 세례를 받았고 그리스도인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고 다시 세례를 주고받았던 것이죠. 이들의 믿음과 실천은 아주 위험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왜, 세례를 받는 것이 그렇게 위험한 일이 되었을까요? 첫 번째로, 종교개혁이 있었던 16세기 유럽은 크리스텐덤(Christendom)이었습니다.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종교로 공인되었고 훗날 그리스도교는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됩니다. 그리스도교 국가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 크리스텐덤은 종교개혁 당시까지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시민권과 같이 당연한 유아 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다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봉건 제후의 도움을 받아 종교개혁을 진행하던 루터나, 새로운 신정 국가를 꿈꾸던 칼뱅은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교회와 국가의 긴밀한 연합’이라는 기존 체제를 전복시키는 위험한 시도로 여겨졌습니다.

 

두 번째로, 교회와 국가의 경계가 없기에 누구나 ‘자동으로 신자가 되고 교인이 되던’ 시대에, 아나뱁티스트들은 교회는 건물이나 제도가 아니며, 국가의 강요가 아닌 세례라는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신자들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제후들의 결정과 선택에 따라 그들의 영지의 교회도 루터주의 혹은 칼뱅주의, 아니면 가톨릭 교회가 되던 상황에서 이는 얼마나 충격적인 주장이었을까요?

 

세 번째로, 급진적이고 폭력적인 종말론으로 달려갔던 뮌스터 반란(1545-1535)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지만, 산상수훈과 같은 예수의 가르침을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보았던 아나뱁티스트는 모든 폭력을 거부하는 것을 예수의 길을 따르는 표지로 여겼습니다. 이는 아나뱁티스트가 역사적인 평화 교회로 발전하는 중요한 이유와 근거가 됩니다.

 

더크 윌렘스(Dirk Willems) 1569년 이단으로 몰려 도망치던 중 자신을 쫓는 경비병이 빙판에 빠지자 그를 구하고 결국 붙잡혀 순교했다.

 

사건은 서로 다르게 기억되고 해석된다

 

1517년 10월 31일, 수도사요 신학교 교수였던 마르틴 루터가 95조목으로 된 신학 명제(혹은 반박문)를 발표했던 목적은 교회의 쇄신과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루터의 기대와 달리, 교회는 쇄신이 아닌 분열을 시작했다. 많은 (개신)교회들이 종교개혁기념주일로 지키는 1517년 10월 31일을 가톨릭교회는 어떻게 기억할까? 『가톨릭대사전』은 ‘종교개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엇보다도 교회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교회혁신 운동은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이다. 이 사건 자체는 교회 쇄신에 대한 열망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1,500여 년 동안 전승, 보존된 그리스도교 신앙을 근본적으로 파괴하였고 하나의 그리스도교 세계를 여러 갈래의 분파로 분열시켰다.

 

각각의 입장에 따라 사건은 다르게 기억되고 해석된다. 어떤 교회에게 10월의 종교개혁기념주일은 교회의 개혁과 새로운 출발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가톨릭교회의 입장에서는 ‘그리스도교 세계가 여러 갈래의 분파로 분열’되는 사건이다. 물론, ‘가톨릭교회가 1,500여 년 동안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승, 보존해왔다’는 주장에는 동방교회를 비롯한 여러 전통이 지워져 있기에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해서 (개신)교회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회복하고 지금까지 그 정수를 지키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 역시 담대한 착각일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이 속한 교회가 16세기 유럽에 머물러 있지 않듯, 소위 ‘그 교회들’도 지난 수백 년의 역사 속에서 갱신되어왔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보존되지 않았을까? 하나님은 우리가 아는 모든 교회들을 합친 것보다 크시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와 같은 아나뱁티스트는 1517년 10월 31일이 아니라, 1525년 1월 21일을 더 중요한 날로 기억한다. 처음으로 신자들의 세례가 이루어진 날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기념일은 서로의 다른 맥락 가운데 존재한다.

 

고마해라, 마이 물었다 아이가

 

아나뱁티스트-메노나이트에 대해 수녀원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보다 훨씬 더 잘 정리된 자료가 많다.2) 그러나, 그날 이야기가 나에게 이토록 중요한 기억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듣보잡’ 메노나이트 형제에게 자리를 열고 환대하며 경청하고자 했던 가톨릭 자매님들의 진심 때문이다.

 

우리의 종교개혁기념주일에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16세기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언급하며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과 같은 개혁가들의 모토를 거듭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아니면 ‘성인 세례의 정당성과 비폭력 무저항의 윤리’와 같이 낯선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할까? 그런데 이 모두가 16세기 교회가 답해야 했던 그 시대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개혁가들은 우리가 계속해서 500년 전 질문에 머물러 있는 것을 바랄까? 아니라면, 지금 우리 시대에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무엇일까?3)

 

그 질문이 무엇일지 서둘러 답하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말이 하나 더 있다. 지금 당신이 어느 전통에 있든지, 자신을 길과 진리 그리고 생명으로 선언하신 예수를 믿고 따르고 있다면(요한복음 14:5),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예수가 걸었던 길을 함께 걸으며, 그의 진리가 드러내는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죽음이 아닌 생명으로 복음이 약속한 충만한 삶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1)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Mennonite Central Committee, MCC)는 아나뱁티스트 교회들의 전 세계적인 사역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에 반응하며 평화와 정의를 위해 일함으로써 모두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연민을 나누기 위해 1920년 시작되었다. 남한에서는 1951-1971년 전후 복구 사업을, 1995년부터 북한에서는 인도적 지원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48나라에서 구호, 개발, 평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 월터 클라센, 김복기 옮김, 『가톨릭도 프로테스탄트도 아닌 아나뱁티즘』(KAP, 2017)에서는 왜, 아나뱁티스트를 제3의 길이라고 이야기하는지 설명한다. 포스트크리스텐덤과 선교적 교회의 맥락에서 아나뱁티즘에 대한 재고와 수용에 대해서는, 스튜어트 머레이, 강현아 옮김, 『이것이 아나뱁티스트다』 (대장간, 2011)를 추천한다.

3) 루터파 목사이자 신학자인 최주훈은 “현실을 직시하고 질문과 소통을 통해 재해석하며, 그 해석의 힘으로 자기 삶의 자리를 변혁시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을 개신교, 혹은 종교개혁의 정신이라고 주장한다, 최주훈, 『루터의 재발견』(복 있는 사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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