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보험의 보증 한도를 주택 가격의 100%가 아니라 60~70%처럼 일정 비율 이하로 설정하면 전세 가격이 매매 가격에 근접하거나 상회하는 깡통 전세는 전세 시장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깡통 전세로 인해 발생하는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기/사고는 대폭 줄어들게 된다. 물론 현재 다세대‧다가구 주택의 불투명한 시장 가격 구조 때문에 전세보증보험의 보증 한도를 낮추는 것만으로는 깡통 전세로 인한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기/사고를 막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이는 다세대‧다가구 주택 공시 가격 산정 방식을 더욱 정교하게 하는 장기과제로 풀어가야 할 부분이다. (본문 중)
이성영(희년함께 상임대표)
2022년 부동산 하락장에 들어서면서 전세 가격이 매매 가격을 상회하는 ‘깡통 전세’, 세입자의 전세금을 의도적으로 반환하지 않는 ‘전세 사기’ 등 이전 하락장에서는 듣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서 서민 울리는 전세 사기에는 일벌백계하겠다고 경고한 후, 국토교통부는 전세 사기 의심 사례를 1만 4천여 건 적발해서 경찰청에 넘기고, 경찰은 무자본 갭 투기로 수천 채를 보유한 전세 사기 일당을 검거했다는 뉴스가 들린다.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을 의도적으로 반환하지 않는 전세 사기는 깡통 전세가 만들어 내는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미국발 금리 인상이 만든 후폭풍인 전세 가격 하락은 최소 2023년까지 이어지면서 내년까지는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역전세와 깡통 전세로 인해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급격히 증가할 것이다. 깡통 전세가 만들어진 원인을 파악하지 않으면, 의도적인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기는 부동산 호황기가 돌아오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전세 보증금을 지키기 위한 개인의 최선: 전세보증보험 가입
세입자의 전 재산과 다름없는 전세 보증금을 지키기 위한 개인의 최선은 일반적으로 ‘전세보증보험’이라고 부르는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하는 것이다.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으면 계약 만료 시 임대인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더라도 보험회사가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기 때문이다.
현재 전세보증보험 가입자의 90% 이상은 공기업인 주택도시보증공사(이하 HUG)에 가입해 있다. HUG의 전세보증보험은 2013년 전세 가격이 급등하던 시절 정부가 서민들의 자산인 전세보증금을 보호해주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전세 보증금이 주택 가격의 100%을 넘지 않으면 세입자는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데, 만약 임대인이 계약 만료시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HUG에서 세입자에게 전세 보증금 전액을 보상해 주고 HUG가 임대인에게 구상권(상환을 청구하는 권리)을 청구하는 제도이다. 쉽게 말해 임차인의 전세 보증금 손실 위험을 보증 주체인 HUG가 떠안는 보험이다.
깡통 전세가 가능한 조건: 전세보증보험이 만들어낸 무자본 갭 투기
일반적으로 전세는 월세에 비해 주거비 지출이 적다. 특히 정부가 서민 주거 안정을 명분으로 제공하는 저리의 전세 자금 대출을 사용하면, 주거비 지출은 월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해진다. 하지만 아무리 전세가 월세에 비해 주거비 지출이 적다고 해도, 세입자의 전 재산인 전세 보증금을 맡기는 일이기에 세입자는 계약 만료 시 전세 보증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전세 계약을 하려는 주택에 주택 담보 대출 및 세입자 보증금 등 선순위 채권이 있는지 등기부 등본을 꼼꼼히 확인한 후 전세 계약을 체결하고, 전입 신고와 확정일자를 받는다. 주택 담보 대출과 같은 선순위 채권이 없다 하더라도 임대인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경매를 통해 전세 보증금을 회수해야 하기에, 전세 보증금이 매매 가격의 70%를 상회하는 주택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 전세 보증금 손실을 피할 수 있는 길이다.
그런데 왜 전세 가격이 주택 가격과 같은 주택의 전세 계약이 성사되는 것일까? 세입자가 겁도 없이(?) 주택 가격과 같은 주택에 들어갈 수 있는 이유는 전세보증보험 때문이다. 만약 전세보증보험이 없다면 세입자는 계약 만료 시 임대인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경매로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하기에, 전세 보증금이 매매가의 70%를 상회하는 주택에 들어가는 것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세입자가 전세보증보험만 가입하면 전세 보증금 손실은 100% 전세보증보험 회사가 책임져 주니 세입자들은 주택 가격이 얼마인지, 전세 보증금이 매매 가격에 얼마나 근접했는지 신경 쓰지 않고 매매 가격과 전세 보증금이 같은데도 전세계약을 체결한다.
전세보증보험이 임차인의 리스크를 다 떠안아 준다는 점을 간파한 신축 빌라 분양 업자들은 공인 중개사와 결탁해 전세로 들어올 사람을 구한다. 빌라 분양 업자들은 공인 중개사가 매매 또는 전세 계약을 성사시키면 수백만 원에서 1천만 원 가량의 인센티브를 약속한다. 공인 중개사는 매매 가격 수준의 전세 가격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는 세입자에게 저리의 전세 자금 대출과 전세보증보험을 추천하면서 매매 가격과 비슷해도 전세 보증금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고 설득한다. 그리고 중개 수수료를 무료로 해주거나 또는 전세 대출 이자분을 지원해 준다며 세입자를 꼬드겨 매매 가격에 준하는 전세 가격으로 전세 계약을 체결시킨다. 매매가 수준의 전세 계약이 체결되면 분양 업체는 부동산 상승기에 시세 차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을 찾아 자기 자본 없이도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으로 집을 살 수 있다고 설득하여 집을 넘긴다.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을 활용한 전형적인 무자본 갭 투기 방식이다.
전세보증보험으로 인해 전세 가격이 매매 가격에 근접한 수준으로 몇 건 거래되기 시작하면 인근의 전세 가격도 함께 따라 오른다. 깡통 전세, 전세 사기가 집중되는 저층 주거지의 다세대‧다가구 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품질이 다양하고 거래가 자주 있지 않아 해당 주택의 시장가격을 정확히 파악하기 쉽지 않은 점을 파고들어 매매 가격이나 분양 가격을 인위적으로 부풀린 후, 전세 가격이 주택 가격에 비해 낮은 것처럼 보이게 하여 전세 계약을 체결한다. 보증금 미반환의 위험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하여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를 보험 회사에 넘기겠지만, 임대차 계약의 경험과 정보가 부족하여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전세 가격이 하락하는 시점에서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문제가 터진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해서 상승하던 지난 2021년까지는 부동산 시장을 낙관하며 시세 차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이어지고 전세 가격도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였기에 깡통 전세와 전세 사기가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었지만,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인한 부동산 경기 침체와 전세 가격 하락이 시작된 2022년부터는 깡통 전세와 전세 보증금을 의도적으로 미반환하는 전세 사기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깡통 전세와 전세 사기의 해결 방안: 전세 보증금의 보호 한도 제한
만약 전세보증보험으로 주택 가격의 70%까지의 전세 보증금만 보호해 준다고 하면 세입자들은 전세 가격이 매매 가격과 같은 주택에 입주하려 할까? 그러면 전세 가격이 매매 가격에 근접한 전세 물건들은 임차인의 외면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점차 전세 시장은 대부분 주택가격의 70% 이하 주택으로 재편될 것이다. 만약 시장에서 해당 주택의 전세 가치를 주택 가격의 70% 이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주택 가격의 70%를 넘는 전세 보증금은 월세로 전환될 것이다.
전세보증보험의 보증 한도를 주택 가격의 100%가 아니라 60~70%처럼 일정 비율 이하로 설정하면 전세 가격이 매매 가격에 근접하거나 상회하는 깡통 전세는 전세 시장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깡통 전세로 인해 발생하는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기/사고는 대폭 줄어들게 된다. 물론 현재 다세대‧다가구 주택의 불투명한 시장 가격 구조 때문에 전세보증보험의 보증 한도를 낮추는 것만으로는 깡통 전세로 인한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기/사고를 막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이는 다세대‧다가구 주택 공시 가격 산정 방식을 더욱 정교하게 하는 장기과제로 풀어가야 할 부분이다.
일시에 목돈을 맡기고 주택을 빌리는 전세 제도는 개인에게나, 사회적으로나 여러모로 불안정하고 위험이 큰 제도이다. 장기적으로 전세 주택은 전세와 월세의 중간 형태인 반전세 또는 보증부 월세 주택으로 전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금리 인상이 가파르게 일어나는 가운데 기존의 전세 주택이 반전세, 보증부 월세 주택으로 바뀌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전세보증보험을 어떻게 운용하는가에 따라 전세 제도를 강화시킬 수도 있고, 전세 주택을 반전세 주택으로 전환의 속도를 높일 수도 있다.
전세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전세보증보험이 오히려 세입자를 전세 사기의 위험에 빠뜨리는 역설적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세보증보험의 보증 한도 개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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