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비닐에서 기름을 뽑는 기술은 기름에서 플라스틱을 만드는 반대의 과정이다. 높은 온도를 가하거나 촉매 물질을 넣어 이 길고 긴 고분자를 끊어 다시 탄소 5~12개 정도의 석유로 만드는 것이다. 석유에서 만든 플라스틱을 다시 석유로 되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기술을 ‘도시 유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폐기된 전자기기나 폐배터리에서 광물을 다시 뽑아내는 것을 ‘도시 광산’이라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 이 기술은 긴 탄소 고리를 끊어야 하기에 많은 에너지가 든다. (본문 중)

성영은(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얼마 전 폐비닐에서 기름을 뽑아내는 기술이 국내에서 개발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1) 국내외를 막론하고 넘쳐나는 플라스틱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는 마당에 이를 재활용하는 기술이라니 주목해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 ‘비닐’은 폴리염화비닐(PVC)이라는 플라스틱을 줄여 부르는 말로 이전에 이 플라스틱으로 얇고 부드러운 비닐봉지를 만들어 사용했다. 그러나 이 PVC로 비닐봉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소제라는 물질을 넣어 부드럽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 가소제 중에 우리 몸에 들어가면 우리 몸의 내분비계를 교란하는 환경 호르몬이 있어 지금은 PVC가 비닐봉지로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대신 가소제가 필요 없는 폴리에틸렌((PE)이나 폴리프로필렌(PP)과 같은 플라스틱이 봉지로 사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비닐봉지’ 혹은 ‘비닐’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해외에서는 비닐 대신 ‘플라스틱 백’(plastic bag)이라는 용어가 통용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1970년대 나무로부터 만들어지므로 숲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그동안 써 오던 종이봉투 대신 이 비닐봉지가 도입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도입된 비닐봉지가 이제는 자연을 파괴하는 주범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비닐을 플라스틱과 구분하여 분리수거하기에 서로 다른 줄 알지만 다 같은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에는 PE, PP, PVC, PET 등 다양한 종류가 있고, 종류에 따라 딱딱한 플라스틱이나 비닐봉지와 같은 부드러운 플라스틱이 있는 것이다.

 

플라스틱은 대부분 석유(원유)로부터 만들어진다. 가스 성분인 LPG(액화석유가스)를 제외한 원유는 탄소 5개에서 40개 정도가 연결된 다양한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정유 공장에서 이 원유를 증발시켜 탄소 개수에 따라 분류한다. 즉, 탄소 개수가 적은 분자는 가벼워 더 낮은 온도에서 더 높이 증발하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정유 공장의 높은 증류탑은 원유를 위에서부터 가벼운 휘발유, 등유, 경유, 중유, 그리고 맨 아래 무거운 아스팔트 순으로 분리한다. 이 중에서 탄소 5~12개 정도 되는 석유를 묶어 나프타라 부르는데 석유화학산업의 주원료가 된다. 이 나프타에 열을 가해 분해하면 비닐봉지 폴리에틸렌의 원료가 되는 에틸렌 등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에틸렌에 압력을 가한 상태에서 촉매 물질을 넣으면 수천 개에서 수십만 개의 에틸렌이 연결되어 폴리에틸렌이라는 플라스틱이 만들어진다. ‘폴리’라는 말은 ‘폴리머’를 의미하는데, 분자량이 아주 큰 고(高)분자를 말한다. 에틸렌의 분자량은 28인데 비해 폴리에틸렌의 분자량은 5만에서 100만에 이른다. 탄소 수천 개에서 수십만 개가 연결되어 한 개의 분자를 이룬다는 말이다. 이 분자는 탄소(그리고 수소)로 이루어져 아주 가볍고 그 틈으로 물도 새지 않을 정도로 촘촘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여러 용도로 사용하기에 아주 좋다. 다만 너무나 많은 탄소가 한 분자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분해가 아주 어렵다. 미생물도 쪼개어 먹을 수 없을 정도라 썩지도 않는다. 이것이 플라스틱의 장점이면서 동시에 단점이다.

 

 

폐비닐에서 기름을 뽑는 기술은 기름에서 플라스틱을 만드는 반대의 과정이다. 높은 온도를 가하거나 촉매 물질을 넣어 이 길고 긴 고분자를 끊어 다시 탄소 5~12개 정도의 석유로 만드는 것이다. 석유에서 만든 플라스틱을 다시 석유로 되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기술을 ‘도시 유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폐기된 전자기기나 폐배터리에서 광물을 다시 뽑아내는 것을 ‘도시 광산’이라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 이 기술은 긴 탄소 고리를 끊어야 하기에 많은 에너지가 든다.

 

현재 다양한 폐플라스틱 재활용 방안이 제안되고 있지만 아직 눈에 띄는 획기적 대안은 없는 형편이다. 첫째, 물질 재활용이라 하여 폐플라스틱을 선별하고 이물질을 제거하고 세척한 후 분쇄하여 플라스틱 재료로 재사용하는 것이다. 이 재료로 섬유나 의류나 신발을 만드는 것이 그 예이다. 이 재활용은 현재 새 플라스틱 재료를 사용하는 것보다 비용이 많이 들고 품질도 떨어져 기업의 친환경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주로 시범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정도다. 물론 폐플라스틱을 별다른 공정 없이 그대로 재사용할 수 있는 방안이 있으면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 것이다. 두 번째는 화학적 재활용으로, 폐플라스틱의 화학 구조를 변화시켜 의약품이나 각종 화학제품의 원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 또한 비용과 품질 면에서 아직 큰 매력은 없지만 꾸준한 연구 개발이 이루어지고는 있다. 세 번째가 연료로 재활용하는 것이다. 잘게 쪼개고 뭉쳐 폐플라스틱 연료(RPF, refuse plastic fuel) 혹은 폐기물 재생 연료(RDF, refuse derived fuel) 등으로 재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고형 연료 외에 가스화한 기체 연료나 액화한 액체 연료로 재활용도 가능하다. 해외에서 폐플라스틱으로부터 천연가스를 뽑아냈다거나 액체인 석유 연료를 뽑아냈다는 최근 뉴스가 이런 경우를 말한다.

 

플라스틱은 현재 지구를 오염시키는 가장 심각한 물질 중 하나이다. 가장 큰 이유는 엄청난 사용량 때문이다. 매년 4억 톤 정도의 플라스틱이 생산되고 있으니 80억 인구로 나누면 1인당 매년 50kg 정도를 사용하는 셈이다. 플라스틱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1950년 이후 이 지구상에 누적된 플라스틱은 90억 톤 정도 되고, 그중에서 불과 7억 톤 정도만 재활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사용한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비율이 9% 정도라고 한다. 나머지 50%는 매립, 22%는 무단 투기, 그리고 19%는 소각한다고 한다. 바다에 버려지는 해양 폐기물의 80%가 플라스틱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많이 배출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쓰레기 분리수거에서 모범 국가라는 점이다. 플라스틱 회수율이 68%에 육박하여 독일 다음으로 높다. 그러나 이렇게 분리 수거된 플라스틱이 실제로 재활용되는 비율은 분명하지 않지만 수거된 플라스틱의 50~60%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많이 잡아도 전체 플라스틱의 40% 정도만 재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폐플라스틱의 마땅한 재활용 방안이 없는 가운데 나온, 폐플라스틱에서 기름을 추출한다는 이번 뉴스는 이런 점에서 관심을 가질 만하다. 이런 기술은 막대한 이득을 내는 첨단 기술과 비교하면 경제적으로는 그다지 큰 가치는 없다. 따라서 폐플라스틱에서 뽑아낸 기름이 경제성까지 가지기 위해서는 정부와 민간의 다양한 지원과 협조가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기술이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이 땅의 생태계를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여, 더 좋은 결실을 맺도록 작은 분리수거에서부터 도울 일이 있으면 적극 돕는 일이 필요하다.

 


1) “한국에서 기름이 난다니. 세계가 탐낸 역대급 기술!” <YTN>, 2022년 0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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