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계묘년은 한국 개신교가 온전한 복음으로 새 출발을 하는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먼저 교회 내에서 구원의 확신과 함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의 실천을 모색하는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사회적 양극화, 가난과 소외로 피곤하고 지친 사람들이 잠시라도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가 되도록 힘을 합칩시다. (본문 중)
백종국1)
2023년 계묘년 새해를 맞이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헌신하는 모든 동지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듬뿍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영혼과 육체의 강건함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까지도 하나님 나라를 향한 성장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공중 권세 잡은 악한 영의 유혹을 극복하는 그리스도의 지혜와 권능이 여러분과 함께하시리라 믿습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세계가 놀랄 만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습니다. 전후 제3세계에서 보기 힘든 산업 구조의 고도화와 민주주의 체제 확립, 그리고 세계 수준의 문화 창달을 이루었습니다. 보통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 교체의 정착은 이제 한국이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공동체가 되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눈부신 발전의 이면에 지금까지의 모든 성과를 파괴할 만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농지 개혁으로 조성되었던 자영농 중심의 평등 체제가 재벌 중심의 양극화 체제로 악화되었습니다. 30년 이상을 지속해온 개인 독재와 군사 독재가 심어 놓은 이데올로기 투쟁과 지역감정 경쟁의 여파는 아직도 국민들의 통합을 해치는 암적 존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민주화는 되었지만 민주 체제의 바탕이 되는 민주 시민의 교양은 극히 취약합니다. 무엇보다 한반도 평화를 해치는 권력자들의 불장난이 우리의 존립과 성취를 잿더미로 만들지도 모르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지난해를 돌이켜 보면, 아쉽게도 한국 개신교는 이러한 위험 완화에 공헌하기보다 도리어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근대화와 민족 독립, 민주화의 선도 역할을 했던 바와 달리, 이제는 사회의 지탄을 받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지난해 말의 주요 여론 조사들은 한국 개신교에 대한 한국인들의 급속한 신뢰도 하락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수십만 명의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으며, 특히 젊은이들의 대규모 이반이 발생했습니다. 소수의 정치 목사들이 이끄는 교회 연합체들의 권력 지향적 정치 행동 탓으로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체들의 대표성을 그대로 용인한 한국 개신교가 원초적 책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2023년 새해에는 온전한 복음으로 교회를 되살리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선 성장제일주의라는 사탄의 유혹을 뿌리쳐야 합니다. 천지 만물의 주인 앞에서 모든 피조물들은 티끌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성공의 지표로 삼는 모든 것은 무한하신 절대자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먼지와 다름없습니다. 그런데도 사탄은 우리에게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고 속삭입니다. 하늘의 그물이 성글어 보이지만 절대 빠뜨림이 없다는 사실을 애써 감추려 합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했던 자들, 예컨대 야곱과 다윗이 겪었던 하나님의 징벌과 고난을 잘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는 그의 자녀들이 이 땅 위에서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행하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하면서 혐오와 불공평과 거짓을 행하는 자들은 사실상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마 7:21). 간혹 복음 전파 혹은 교회 성장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정당화된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미 사탄의 유혹에 빠진 자들입니다. 세상의 일과 달리 그리스도의 일은, 그리스도의 길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혹시 주변에 미혹된 분들이 있으시다면, 속히 그 무리에서 벗어나도록, 그리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실천하려면 장기간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분단과 전쟁, 그리고 독재의 긴 세월 동안 비윤리적 성공제일주의가 삶의 지침으로 정착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조차도 이러한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습니다. 몇몇 중대형 교회들에서 자행되는 목회 세습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세습 교회의 교인들 상당수가 교회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서라면 하나님의 교회를 인간의 소유물로 만드는 것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는 구원의 확신만을 강조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의 실천은 무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표현에 따르면, “반쪽짜리 복음”에 물들어 있습니다. 김세윤 교수가 지적하는 바대로 “한국 개신교의 구원파화”가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2023년 계묘년은 한국 개신교가 온전한 복음으로 새 출발을 하는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먼저 교회 내에서 구원의 확신과 함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의 실천을 모색하는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사회적 양극화, 가난과 소외로 피곤하고 지친 사람들이 잠시라도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가 되도록 힘을 합칩시다.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주님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물론, 새 하늘과 새 땅이 오기 전까지 완벽한 실천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는 그날이 올 때까지 끊임없이 시도하고 반성하고 또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새해는 한국인들에게 여느 때보다 더 위험하고 사나운 해가 될지도 모릅니다. 날이 저물고 있는데 갈 길은 아직 멉니다. 그 와중에 한국 개신교가 더 이상 사회의 혼란을 부추기는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역사의 죄인으로 낙인찍힐 수 있습니다. 한국 개신교의 대표를 자임하는 단체들이 복음 전파의 장애물이 되도록 방치해서도 안 됩니다. 한국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선물로서의 삶을 소중하게 즐길 뿐 아니라 자신을 선물로 주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부디 우리 한국 교회가 새해에는 반쪽짜리 복음이 아니라 온전한 복음으로 새롭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1) 경상국립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기윤실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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