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과 관련된 또 하나의 거대한 착각은 WYSIATI(What You See Is All There Is), 즉 ‘보이는 것이 전부다’라는 착각이다. 사고는 너무나 많은 요소들이 너무나 우연한 조합을 이루어 발현된다. 예측도 불가하고 설명도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띄는 잘못된 것들만을 가지고 ‘선명한 설명’을 만들어 내려는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그것은 전체적 사실일 수 없다. (본문 중)
윤완철(카이스트 명예교수)
전 국민의 애통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죽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제빵 공장에서 철도 현장에서 화학 플랜트에서, 그리고 이름 없는 작은 건설 현장에서 매년 800명 넘는 성실한 가장들이 목숨을 잃는다. 우리 사회는 선진국이 되어 가며 안전에 민감해졌지만 안전 시스템은 아직 올챙이 티를 벗지 못한 어린 개구리의 꼬리처럼 못다 한 변화를 채근하고 있다.
우리가 안타까이 여기고 종종 분노하는 것은, 안전이란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세계 1위의 생산성을 가지는 것은 도전할 만한 일이고 어려운 일인 반면, 안전을 지키는 것은 기본적인 일이고 당연해져야 하는 일이라 여겨진다. 따라서 사고는 누군가가 기본을 안 지켜서 일어났다고 믿는다.
그런데 여기서 기본적인 것이 곧 쉬운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쉬운 것을 하지 않는다고 무조건 현장을 질타하는 것은 오만이다. 비극이 줄어들지 않는 근원 중 하나는, 늘 그렇듯이 위쪽의 무지이다. 안전이 쉽다는 사람의 비율이 높고 그들 손에 권한이 들어가 있다면 안전을 향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사실 안전은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총체적인 시스템의 문제일 뿐 아니라, 마음과 문화의 문제이다. 효율 1등의 기업이 되는 것보다 안전 1등의 기업이 되는 쪽이 훨씬 스마트한 경영과 조직적 지능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몇 가지 공통적인 심리적 착각을 가지고 산다. 눈의 착시 현상과 비슷하다. 그중 하나가 후견지명이라는 것으로, 뭐든 지나고 나면 뻔해 보인다는 것이다. 사고가 난 후에는 누구에게나 원인은 자명하고 관련자의 행동은 한심해 보인다. 그럴 때 우리는 용서할 수 없다는 느낌과 ‘또 인재다’하는 개탄에 합심한다. 그러나 사고 전에는 결코 그렇게 자명하지 않았음을 외부인은 모른다. 설사 그것이 규정 위반이라고 할지라도, 편의상 늘 반복하던 수많은 ‘안전한’ 습관 중의 하나인 것이다. 오직 사고 후에만 그것에 서치라이트가 비치고 도드라져 보인다. “그것도 생각 못 했느냐?”, “나라도 그렇게는 안 한다” 같은 추궁자들의 언사에는 거의 언제나 진실성이 없다. “왜 그랬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사람은 정말 뭔가 모르는 것이다.
사건의 조사라는 것은 드러난 문제에서 원인을 찾고 극복하려는 사회적 반성 행위이다. 그런데 우리는 후견지명에 의해 쉽게 실패와 실패자를 특정한다. 또, 복수심에 사로잡히거나, 때로는 나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안심하기 위해 그를 사실보다 심하게 매도하려 한다. 그래서 안전 후진국일수록 사고 조사는 수사의 형태를 띠고, 책임 추궁은 처벌과 제거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당사자들은 잘못은 숨기고 상황은 포장하여 진실이 드러나지 않으니 개선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음이 통하지 않는 차가운 사회는 배우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이다. 이런 오류는 판단자의 입장이 아니라 당사자의 입장에서 정직하게 생각하기를 함으로써 완화된다. 사람에 대한 역지사지적인 이해, 그리고 정직성이 사실을 바로 파악하는 기본이며 모든 조사 기법에 우선한다.
안전과 관련된 또 하나의 거대한 착각은 WYSIATI(What You See Is All There Is), 즉 ‘보이는 것이 전부다’라는 착각이다. 사고는 너무나 많은 요소들이 너무나 우연한 조합을 이루어 발현된다. 예측도 불가하고 설명도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띄는 잘못된 것들만을 가지고 ‘선명한 설명’을 만들어 내려는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그것은 전체적 사실일 수 없다. 누구나 성공하기 위하여 일하지 실패하기 위하여 일하는 일은 없으며, 이건 어느 사고 당일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사고를 이해하려면 평소의 성공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현장의 사람들을 실패나 사고의 원인으로만 부각시켜왔다. 그러나 사고보다 훨씬 더 많은 성공적인 날들 역시 바로 사람에 의해서 성취된 것임을 잊고 있었다. 성공 못 한 특정 경우가 사고가 된 것이니, 왜 평소의 성공이 그때는 안 되었는지 물어야 한다. 그래서 조금만 들여다보면 평소 최고의 안전 요인도 역시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다. 수많은 불완전한 요소들이 시스템 내에서 덜컹거리며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유연한 인간의 마음은 그 모든 간극에 반응하고 조정해 내는 최고의 안전 충전재로 기능한다. 따라서 압제되고 기계화된 작업자가 아니라, 긍지 있고 자율적이고 열의가 있는 작업자가 훨씬 안전한 시스템을 만든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에서 거듭 확인된 바 있다.
시스템 안전의 전문가들은 이렇게 이해를 발전시키며 안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해 왔다. 1980년 이후엔 후견지명 편향을 벗어나 사람의 행위와 그 환경을 이해하여야 안전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인식이 보편화되고, 그 기반 위에 소위 3세대 안전의 시대가 열렸다. 또, 2000년대 이후에는 시스템의 평소 운영과 인간의 평소 활동을 파악하고 증진해야 시스템 수준의 안전을 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출발하여 4세대 안전으로 불리는 안전-II의 패러다임 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안전과 사고의 진실에 접근하는 것은 사람을 판단하는 마음이 아니라 깊이 이해하고 서로의 경험에서 배우려는 겸손으로만 가능하다. 일하는 사람은 판단되고 압제되지 않고 자율적이고 능동적일 때 안전의 최대 성공 요인이 된다. 이것이 제도와 문화에 반영될 때 기업은 안전을 위한 마음을 가지고 참된 지능을 가진다. 안전의 기반은 인간을 존중하는 마음이고, 사람은 어디서나 안전의 시작이요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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