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심이 깊었던 조지 5세의 재임 시절인 1927년 잉글랜드축구협회(FA)가 주관하는 FA 컵에는 새로운 전통이 생긴다. 당시 축구협회 회장이었던 알프레드 월이 조지 5세가 사랑하던 찬송가 “Abide with Me”(나와 함께 하소서)를 결승전 식전 행사에 도입한 것이다. (본문 중)

이정우(스포츠 스토리 텔러)1)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할아버지였던 조지 5세는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다스렸던 군주다. 하지만 그러한 그도 20세기 초반 유럽의 군주제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영국 왕실을 지켜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조지 5세가 왕위에 오른 1910년, 영국 왕실의 가문 명은 작센코부르크고타였다. 이 가문 명은 하노버 왕조의 빅토리아 여왕이 사촌이자 독일인 앨버트 공과 결혼하며 생긴 것이다. 그러나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영국 내에서는 반독일 감정이 생기게 된다. 이에 왕실의 생존을 위해 조지 5세는 가문 명을 윈저(House of Windsor)로 개명할 수밖에 없었다.

 

형인 앨버트 왕자가 갑자기 사망하여 왕위 계승권자가 되기 전까지 조지 5세는 해군 장교였다. 검소한 삶과 군인으로서의 습관이 몸에 배었던 그는 해군 시절 바다에 나갔을 때부터 매일 성경을 읽었다. 이렇게 성경에 기초한 믿음을 중시했던 조지 5세는 1936년 삶이 끝날 때까지 매일 밤 성경을 한 장씩 읽었다. 작년에 타계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신앙심도 할아버지 조지 5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신앙심이 깊었던 조지 5세의 재임 시절인 1927년 잉글랜드축구협회(FA)가 주관하는 FA 컵에는 새로운 전통이 생긴다. 당시 축구협회 회장이었던 알프레드 월이 조지 5세가 사랑하던 찬송가 “Abide with Me”(나와 함께 하소서)를 결승전 식전 행사에 도입한 것이다.

 

“Abide with Me”는 삶과 죽음을 통틀어 하나님이 화자와 함께 계시기를 바라는 기도다. 이 찬송가는 1912년 타이태닉호가 북대서양에서 침몰하던 당시 선상 밴드가 연주했고, 기독교인의 장례식에서도 가장 많이 불리는 노래 중 하나다. 1947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필립공과 결혼할 때도 이 곡이 연주됐었다.

 

1927년 FA 컵 결승에서 만난 아스널과 카디프시티 경기 전 행사에 도입한 이후 지금까지 “Abide with Me”는 매년 FA 컵 결승전에 앞서 불리고 있다. 밴드의 연주와 함께 초대 가수가 선창하면 팬들은 이를 따라 부른다. 신앙심이 깊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이 시간만은 특별한 믿음의 순간이다. 이 찬송가가 울려 퍼질 때 눈물을 보이는 관중도 종종 볼 수 있다. 유튜브에 이와 관련된 영상이 꽤 있으니, 한번 찾아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축구에서 시작한 이 전통은 럭비 리그로도 이어진다. “Abide with Me”는 1929년부터 현재까지 럭비 챌린지 컵 결승전에 앞서 연주되고 있다. 필자도 너무 좋아하는 찬송가이지만, 특히 영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이 곡은 2012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도 연주됐었다.

 

Abide with me; fast falls the eventide;

나와 함께하소서. 날은 빨리 저물고

The darkness deepens; Lord with me abide.

어둠이 깊어집니다. 주님, 나와 함께하소서.

When other helpers fail and comforts flee,

다른 돕는 이들 없고 위로는 달아날 때,

Help of the helpless, O abide with me.

도움 없는 이들을 도우시는 주님, 오 나와 함께하소서.

 

Hold Thou Thy cross before my closing eyes;

내가 눈 감을 때 당신의 십자가를 내 앞에 보이소서.

Shine through the gloom and point me to the skies.

어둠을 헤치고 비추셔서 하늘을 보여 주소서.

Heaven’s morning breaks, and earth’s vain shadows flee;

천국의 아침이 밝아오고 땅의 헛된 그림자들은 달아납니다.

In life, in death, O Lord, abide with me.

살 때나 죽을 때, 오 주님, 나와 함께하소서.

 

(찬송가 481장 “때 저물어서 날이 어두니”)

 


1) 경영학 박사,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 <좋은나무> 글을 다른 매체에 게시하시려면 저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02-794-6200)으로 연락해 주세요.

* 게시하실 때는 다음과 같이 표기하셔야합니다.
(예시) 이 글은 기윤실 <좋은나무>의 기사를 허락을 받고 전재한 것입니다. https://cemk.org/26627/ (전재 글의 글의 주소 표시)

 

<좋은나무>글이 유익하셨나요?  

발간되는 글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시려면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여 ‘친구추가’를 해주시고

지인에게 ‘공유’하여 기윤실 <좋은나무>를 소개해주세요.

카카오톡으로 <좋은나무> 구독하기

 <좋은나무> 뉴스레터 구독하기

<좋은나무>에 문의·제안하기

문의나 제안, 글에 대한 피드백을 원하시면 아래의 버튼을 클릭해주세요.
편집위원과 필자에게 전달됩니다.
_

<좋은나무> 카카오페이 후원 창구가 오픈되었습니다.

카카오페이로 <좋은나무> 원고료·구독료를 손쉽게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_

 

 


관련 글들

2024.04.11

영화 : 피해자다워야 할 피해자는 없다(최주리)

자세히 보기
2024.03.13

둑에서 물이 샐 때 일어나는 일들: 디지털 시대의 불법 복제와 기독교 문화의 위기(정모세)

자세히 보기
2024.03.13

웹툰: 다시 탁구채를 들기를(홍종락)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