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한 사회 속에서 자꾸 속으로 계산기만 두드리게 되고, ‘어느 편이냐?’ 따지는 분위기에 그저 적당한 거리두기가 지혜로운 처세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타이타닉>은 우리가 믿고 있는 우정과 사랑이 최선인지를 묻는다. (본문 중)
성현(필름포럼 대표, 목사)
90년대에 유행했던 만화와 영화가 2023년 2월 대한민국의 박스오피스에서 나란히 1, 2위를 기록하는 일이 벌어졌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라는 일본의 농구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와 1998년 개봉했던 <타이타닉>의 재개봉이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각종 OTT 서비스로 시리즈 전편을 단번에 볼 수 있고, 1.5배속 또는 줄거리만 요약된 유튜브 영상으로 효율적(?)으로 콘텐츠를 즐기는 시대에, 극장에서 개봉한 두 영화의 흥행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극장이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감소를 관람료 인상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관객들의 영화 선택이 까다로워진 것을 감안한다면, 더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지금 90년대에 나왔던 콘텐츠가 다시 인기를 얻는 걸까?
우선, 두 작품의 경우에는 원작 자체가 가진 뛰어난 완성도와 당시의 대중적인 호응이 초석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일본에서 1990년에, 한국에서는 1992년에 연재가 시작돼 1996년에 끝을 맺은 만화 『슬램덩크』가 원작이다. 당시에 『슬램덩크』는 서유기를 모티브로 한 만화 『드래곤볼』과 함께 큰 인기를 얻었는데, 『슬램덩크』의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농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수준 높은 작화는 만화란 아이들이나 보는 콘텐츠일 거라는 선입견을 부수기에 충분했다. <타이타닉>은 <에일리언2>와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통해 기술적 진보를 적극 활용한 SF 영화 제작과 대중적 스토리텔링에 탁월함을 보여 주었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2억 달러라는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만든 대작 영화였다. 이런 무모할 정도의 대담한 시도는 22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매출 성적과 함께 199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비롯한 11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작품성까지 인정받는 결과로 보상을 받았다. 시상식에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영화 속 주인공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의 대사였던 “내가 세상의 왕이다”(I’m the king of the world)라는 대사를 인용하며 자신의 성취를 자축했다. 한마디로, 두 작품은 숨겨진 보석이 아니라 이미 알려진 보석이었던 것이다.
둘째, 좋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토리텔링을 가르치며 유수의 영화사를 경영했던 피터 거버(Peter Guber)는 그의 책 『스토리의 기술』에서 사실만으로는 전할 수 없는 거대한 진실을 환상처럼 보여주는 것이 이야기라고 강조한다.1) 온갖 데이터로 둘러싸인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꿈은 사치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좋은 이야기는 우리에게 현실을 대하는 태도가 순응만 아니란 걸 일깨워 준다. 원작 『슬램덩크』에서는 강백호가,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는 송태섭이, 이야기가 진행되는 만큼 성장해 나간다. <타이타닉>에서는, 재력과 관습의 무게를 견디며 잠잠할 것을 요구받던 로즈와 가난한 화가 잭이 신분과 관습의 벽을 깨고 사랑이라는 영원하고도 보편적인 가치를 향해 담대히 나아가는 이야기와, 생과 사를 가르는 순간에도 약자를 배려하고 자신의 직임을 다했던 사람들의 숭고한 이야기가 배와 함께 침몰하지 않고 남아서 전해진다. 트렌드가 변하고 매체의 형태가 바뀌어도 진실에 밀착한 이야기는 언제나 힘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말해주는 스토리텔러를 갈망한다. 강백호가, 송태섭이, 로즈와 잭이 그런 스토리텔러인 셈이다.
셋째, 오래된, 그러나 새로운 영화다. 코로나19 직후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한 영화가 한 편 있었다. 1986년에 개봉한 영화 <탑건>의 후속작인 <탑건: 매버릭>이다. 본래는 2020년에 개봉하려 했으나, 코로나19 때문에 2년을 미루어 개봉했다. 36년 만에 돌아온 속편은 이제는 중장년이 된 이들에게는 추억의 소환을, 젊은 관객들에게는 매버릭의 회상을 통해 전(前) 서사와의 간격을 지우고, 항공 액션의 쾌감을 느끼게 해 모든 세대를 영화관으로 불러 모았다. 이러한 문법은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했다.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각본과 감독을 맡아, 강백호가 주인공이었던 원작과 달리 송태섭을 주인공으로 삼았고, 북산고와 산왕공고의 경기 하나에만 집중하면서 원작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원작의 서사를 풍성히 하여, 원작을 모르는 세대까지 아우를 수 있는 신작 영화가 되었다. <타이타닉>도 마찬가지다. 2018년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관람하지 못하고 TV나 스마트폰으로만 이 영화를 알던 젊은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 물의 길>의 영화적 체험의 강렬함이 4K HDR로 리마스터링된 <타이타닉>의 관람에도 영향을 미쳤다.2) 젊은 세대에게는 옛것이지만 새것으로 다가온 ‘뉴트로’(New+retro)인 것이다.
『피고석의 하나님』에서 C. S. 루이스는 ‘문명’의 위기를 논하는 사람들에게 문명이 인간 행위의 유일한 목적이 되기 전까지 과연 문명이 심각한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는지 반문한다. 문명의 보존이 가장 큰 목표가 되고 문명의 몰락이 가장 큰 걱정거리가 된 시대, 즉, 문명 자체를 우선시하는 시대에 문명의 위기가 찾아오는 현실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지나간 시대에도 많은 오류와 문제가 있었지만, 그 시대마다 하나님의 뜻, 영광, 개인적인 명예, 교리적 순수성, 정의 등 온갖 것들을 문명보다 더 아꼈다는 말이다.3) 해가 바뀔 때마다 발표되는 새로운 트렌드는 우리에게 그것을 좇아야 한다는 부담을 주고, 챗GPT처럼 인간 고유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는 기술 발전은 일상에서조차 민첩함과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강요한다. 문명이 가져다주는 편리의 빛만큼이나, 문명에서 비롯되는 피로와 불안의 그림자도 짙다. 이런 시대에, 20년도 더 된 콘텐츠들이 세대를 아우르며 유의미한 반향을 일으킨다는 건, 루이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새로운 문물에 열광하고 문명 자체를 우선시하는 시대에도 사람들이 정말로 우선시하고픈 것들이 있음을 알려 주는 단서가 아닐까?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 자꾸 속으로 계산기만 두드리게 되고, ‘어느 편이냐?’ 따지는 분위기에 그저 적당한 거리두기가 지혜로운 처세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타이타닉>은 우리가 믿고 있는 우정과 사랑이 최선인지를 묻는다. 두 영화의 흥행은 그 물음이 구닥다리 질문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가장 잘 대답할 수 있었던 곳이 본래 교회였다. 오늘날 교회에 청년들의 수가 점점 줄고 있다고 걱정하는 걸 보면, 교회가 무슨 얘기를 들려주고 있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1) Peter Guber, Tell to win: Connect, Persuade and Triumph with the Hidden Power of Story, 김동규 역, 『스토리의 기술』(라이팅하우스, 2021), 72.
2) CGV 사이트를 통해 <타이타닉>을 관람한 관객의 연령 분포를 보면, 이 영화를 이미 보았을 40대(15.9%)와 50대 관객(10.4%)보다 20대(34.8%), 30대(20.8%), 10대(18.2%)의 관람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
3) C.S. Lewis, God in the Dock, 홍종락 역, 『피고석의 하나님』(홍성사, 2011), 382-383. (루이스는 이 책에서 문명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든 것으로서,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지만 ‘도덕적으로’ 바르게 사용될 때는 소중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고 주장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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