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중 자행된 민간인 학살은 약 30년이 지난 1999년 국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비로소 공론화되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정부에게 베트남 전쟁은 ‘애국’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한국군이 저지른 폭력과 학살을 정부 차원에서 공론화하거나 인정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진보 정권에서도 ‘마음의 빚’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긴 했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진상 규명, 책임 인정, 혹은 피해자에 대한 사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본문 중)
백재예1)
2023년 4월 7일,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베트남 전쟁 중 한국군에 의한 퐁니·퐁넛 민간인 학살 피해자인 응우옌티탄(Nguyễn Thị Thanh)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가배상소송 1심 선고 공판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원고 측이 제출한 증거와 증언을 바탕으로 해당 학살 사건에 대한 원고 주장을 사실로 인정했으며, 그러한 행위가 불법 행위에 해당함을 적시하면서 원고의 배상 청구권을 인정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에게 3천만 100원과 이에 대한 지연 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여기서 원고인 응우옌티탄 씨가 경험한 퐁니·퐁넛 민간인 학살사건은 무엇일까? 이 사건은 베트남 전쟁 중이었던 1968년 2월 꽝남성 디엔반 현 퐁니, 퐁넛 마을에서 일어났다. 당시 대한민국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1대대 1중대 소속 군인들이 마을 주민들 70여 명을 학살했다. 당시 해당 부대 소속 참전 군인이 4차 변론 기일에 증인으로 참석해 증언한 바에 따르면, 이 사건에서 부녀자와 노인들을 비롯해 어린이들도 학살의 피해를 입었다. 당시 8살이었던 응유옌티탄 씨 또한 퐁니 마을 자신의 집 주변에서 옆구리에 총을 맞았다. 다행히 수술로 목숨은 건졌지만 지금까지도 후유증을 앓고 있다. 그녀는 이 사건을 통해 가족 5명을 잃고 오빠는 큰 부상을 당했다.
베트남 전쟁 중 자행된 민간인 학살은 약 30년이 지난 1999년 국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비로소 공론화되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정부에게 베트남 전쟁은 ‘애국’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한국군이 저지른 폭력과 학살을 정부 차원에서 공론화하거나 인정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진보 정권에서도 ‘마음의 빚’2)에 대한 ‘유감’3)을 표명하긴 했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진상 규명, 책임 인정, 혹은 피해자에 대한 사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견고한 정치적 외면을 돌파하기 위해 피해자들에게 소송은 주요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2020년 공식적인 소송이 제기되기 이전인 2018년, 한국의 시민사회와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함께 시민 평화 법정을 개최했다. 구속력이 있는 공식적 재판은 아니었지만, 민간 법정의 과정과 승소라는 결과는 피해자들과 관련 사회 운동 참여자들에게 중요한 경험이었다. 좁게는 해당 사건의 증거와 증언들을 취합하고, 가해국의 책임에 대한 법적 쟁점을 검토하여 해당 사건을 다시 한 번 공론화할 수 있었고, 넓게는 법적 주체로서 법과 재판을 자신의 권리와 회복을 위한 도구이자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바로 이 경험이 2020년 공식적으로 한국 재판소에 국가 손해배상 소송 제기하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소송이 중요한 도구로 인식·활용되기 시작했다고 해도, 그것이 곧 법과 재판이 전후 정의 실현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리라 확신한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익히 일본군 ‘위안부’ 제도와 강제 노동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다양한 소송들을 통해 알고 있듯이, 법원은 역사적으로 (현재의) 국경을 넘어 일어난 억압과 폭력에 대해 자신의 관할권을 최대한 소극적이고 보수적으로, 국가의 자주권은 최대한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정은 가해 당사국의 재판소에 제기한 소송에서만이 아니라, 피해자 소속된 국가, 그리고 보편적 관할권4)에 의거한 제3국 재판부에서도 나타나며, 타국의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최소한으로만 인정되어 왔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재판부의 퐁니·퐁넛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이해와 국가 배상 책임에 대한 결정은 기존 판결의 한계들을 극복하는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판결이 과연 전후 정의의 결과라 할 수 있을까? 정치가 아닌 사법이 지닌 대안적 자원으로서의 의미, 승소라는 결과가 피해자들에게 줄 심리적 영향, 그리고 전후 정의 노력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이 전후 정의의 전부이자 최종 결말이라고는 할 수 없다. 기존 사회 질서를 내재하고 또 유지하고자 하는 경향이 큰 법과 재판의 특성을 고려하면, 소송을 통한 전후 정의 구현은 법이 허용하는 틀 속에서 피해를 서술하고, 요구 사항을 구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는 이번 재판 결과를 받아들이고 피해자에게 사죄하거나 회복에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항소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를 지적하고 전후 정의 실현에 적극 참여할 것을 촉구하는 시민사회의 요구도 여전히 제한적이다.
다시 말해, 소송의 과정과 판결은 전후 정의의 결과가 아니라 시작이다. 재판부의 판단 결과만큼 중요한 것은 퐁니·퐁넛 민간인 학살 사건과 같은 복잡하고 다층적인 피해 경험에 대해 피해자의 말을 끊임없이 경청하고, 기억하고, 또 반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동반되지 않으면, 이와 같은 피해를 만든 사회적 구조는 여전히 우리 속에 똬리를 틀고 머무를 것이며, 망각과 부정을 통해 피해자들의 고통을 심화시키고 또 다른 피해를 용인하는 문화를 영속시킬 것이다. 이 익숙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관심이 재판의 결과가 승소냐 패소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형식을 이용해 피해자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를 듣고 이해하려는 데까지 나가야 한다.
1) 매사추세츠 주립대학교 정치학과 박사과정 수료.
2) 손제민, “김대중 “미안” 노무현 “마음 빚”…한국 대통령 세 번째 ‘사과’”, 「경향신문」, 2018년 3월 23일.
3) 성연철, “문 대통령 “불행한 역사 유감”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과”, 「한겨레」, 2018년 3월 23일.
4) 보편적 관할권(Universal Jurisdiction)이란, 반인도 범죄, 전쟁 범죄, 고문과 같은 행위에 대해서는 가해자가 소송을 담당하는 해당국의 국적자가 아니라도, 범죄가 다른 나라에서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재판할 수 있다는 국제법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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