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 논쟁은 매우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대체로 국익이란 용어는 1648년 웨스트팔리아조약 이후부터 중시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 조약을 통해 유럽에서 소규모 민족 국가들이 나타났고 이 소규모 민족 국가들의 국가 주권을 기반으로 국익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국익 논쟁은 이미 기원전 4세기경 동서양에서 동시에 발생했었다. 이 시기의 그리스 체제와 춘추 전국 체제하에서 공동체적 정체성을 가진 소규모 국가들의 경쟁 체제가 각각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본문 중)

백종국1)

 

윤석열 정부는 왜?

 

2023년 3월에 윤석열 정부는 한일 관계 개선을 목적으로 강제 징용 피해의 제3자 변제 정책을 발표하였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에 의해 15명의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받아야 할 40억 원의 피해 배상액을 피고인 일본 전범 기업들이 아니라 한국 기업들이 대신 납부한다는 정책이었다. 야당이나 시민단체를 비롯한 다수 국민들은 이 정책이 매우 굴욕적이고 매국적이라고 격렬히 성토하였다. 법조계 다수는 이 정책이 현행 헌법의 삼권 분립 원칙에 위배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이 정책이 국익(國益, national interest)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윤석열 정부의 강제 징용 피해 제3자 변제 제안은 역사적 사실에 있어서나 법적 논리에 있어서 매우 문제가 많은 정책이다. 제3자 변제안 발표 이후 윤 대통령은 성명서나 국무회의 발언, 기자 회견 발언 혹은 한일 정상 회담 발언 등을 통해 하나의 일관된 견해를 제시하였다. 한국의 대일 청구권은 1965년 한일 협정에 따른 보상으로 완전히 종결되었으며 한국 피해자에 대한 추가적 배상은 대일 청구권의 혜택을 받은 한국 정부 혹은 기업들이 대신 변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1965년 이후 일본이 지속적으로 주장하던 논리이다.

 

이 일본의 논리에 대해 한국 대법원은 이미 2018년의 확정 판례로서 반론을 정립한 바 있다. ① 1965년의 청구권 협정에서 일본은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강제 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으므로 강제 동원의 위자료 청구권은 청구권 협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② 양국 정부는 1965년 청구권 협정 내용을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내용을 기망하는 논리를 전파하여 피해 당사자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도록 만드는 권리 남용을 범하였다. ③ 1965년 조약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 간의 사항을 다룬 것으로서 한국 측 피해자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된 조약이다.

 

일본 기업의 불법 행위에 따른 한국 피해자 개인의 위자료 청구는 합법적이다. 사실상 일본 법원도 이와 같은 논리로 시베리아 억류 일본인 유족들의 대소 피해 보상 요구를 합법적이라고 보았으며 이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외교적 보호권”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최근에 비밀 해제된 한국의 외교 문서들은 일본 측 협상 대상자들도 개인적 피해에 대한 보상은 따로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 일본이 1965년의 한일 협정에서 식민지 통치의 위법성을 의미하는 배상이라는 용어보다 식민 체제의 합법성을 전제하는 청구권이라는 용어를 적극 주장하여 관철했다는 사실이 이 모든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초법적 조치를 통하여 윤석열 정부가 진정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국익”의 내용에 더 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검찰 총장을 역임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위에서 언급한 법적 사실적 내용을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제12회 국무회의의 모두 발언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 관계 개선을 통한 국익 증진의 절박성을 현황 분석, 경제적 측면, 군사적 측면, 국제 관계, 해외 사례 순으로 정리한 바 있다. ‘현재 한일 관계는 2015년 위안부 합의 파기, 2018년 대법원 강제 징용 판결,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한국의 WTO 제소, 2019년 GSOMIA 종료, 등으로 파국에 처해 있다. 미중 전략 경쟁, 글로벌 공급망의 위기, 북핵 위협의 고도화 등에 있어서 한일 협력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를 보더라도 이웃 국가 간의 화해가 중요하다. 특히 재일 교포의 고통을 고려해야 한다’ 등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익 나열은 많은 논쟁거리를 낳고 있다. 예컨대 양국 간의 갈등으로 지금 경제적 위기가 초래되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경제적 측면에 있어서 양국의 무역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무역 수지의 구조도 큰 변화가 없다. 대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그리고 한국의 WTO 제소는 국가 간에 흔히 있을 법한 갈등으로서 어느 쪽에 특별히 큰 타격을 주지 않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 타격 목표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었지만 실제로는 소재 부문의 한국 측 자립도만 높여 주었다. 문제는 미・중 전략 경쟁 때문에 한일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다. 왜 미・중 전략 경쟁에 한일 협력이 필수적인지도 모호하거니와, 한일 협력을 위해 꼭 강제 징용 피해자의 제3자 변제안을 실행해야 하는지는 더 모호하다. 이제 국익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익 논쟁의 역사

 

국익 논쟁은 매우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대체로 국익이란 용어는 1648년 웨스트팔리아조약 이후부터 중시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 조약을 통해 유럽에서 소규모 민족 국가들이 나타났고 이 소규모 민족 국가들의 국가 주권을 기반으로 국익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국익 논쟁은 이미 기원전 4세기경 동서양에서 동시에 발생했었다. 이 시기의 그리스 체제와 춘추 전국 체제하에서 공동체적 정체성을 가진 소규모 국가들의 경쟁 체제가 각각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대화편 「알키비아데스」를 보면 그리스인들의 국익에 대한 생각을 잘 알 수 있다.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의 민중들이 추구하는 바가 국익이라 보았다. 페리클레스와 마찬가지로 아테네의 번영과 안보를 보장하는 방어 성벽, 삼단노선, 조선소 축조 등이 대표적인 국익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 견해에 제동을 걸었다. 이들은 국익이 아니라 국익의 물질적 결과물이다. 우리가 국가의 자아와 욕구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진정으로 국가가 원하는 바”를 발견할 수 없다. 아테네의 국익은 페리클레스류의 물질적 역량 수립에 있는 것이 아니다. 국내적으로는 우애와 일치를, 국제적으로는 절제와 정의를 확립하는 것이 아테네의 궁극적 국익이라는 게 소크라테스의 주장이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보면 춘추 전국 시대 유가의 맹자가 소크라테스와 유사한 주장을 내놓았다. 당시의 셀럽인 맹자를 맞이하던 양혜왕이 맹자에게 양나라의 국익 증진 방안을 질문하였다. 그러자 맹자는 “왕은 어찌 이익을 말하는가? 오직 인의(仁義)가 있을 뿐이다”라고 질타하였다. 보편적 인의의 실천이 국익의 궁극적 수단이라는 맹자의 주장은 당연히 현실에서 환영을 받지 못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종횡가의 소진은 전국 시대의 국제적 무정부성을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철저한 국력 평가에 기반한 다수 국가의 동맹이 국익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당시 패권국인 진나라의 침략성을 억제하고 각국의 독립성을 유지하려면 나머지 여섯 나라의 동맹으로 세력 균형을 이루자는 합종책을 제시하였다. 이 제안은 실제로 수행되었다. 사마천은 이 합종책으로 인해 피비린내 나는 전국시대에서 15년의 평화가 보장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중세 시대가 끝나고 민족 국가 시대가 열리자 고대의 국익 논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보편성을 주장하던 중세의 대제국들이 몰락하고 자주성을 열망하는 소규모 공동체들이 국가로서 국제적 인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는 고대 도시 국가 때와 달리 국익의 주체와 구조가 명쾌했다. 국가들이 대개 민족(民族, nation) 단위로 독립하여 각자의 영역 내에서 최고의 권리 즉 주권(主權, sovereignty)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이나 주권은 사실상 신화에 가까운 허상이라는 지적이 있으나 현행 국제 규범들 다수는 이 개념들의 실체를 인정하고 있다. 크고 작은 193개국으로 이루어진 국제연합(國際聯合, UN)이 바로 이러한 국제 규범의 대표적 집합체이다.

 

주권을 가진 민족 국가를 인정한다면 현대적 국익의 개념도 명료해진다. 국익은 해당 민족국가가 원하는 바를 의미한다. 민족 국가가 원하는 바란 민족적 주체성 보장과 경제적 풍요이다. 반대로 해당 국가의 민족성이나 주권을 약화시키는 일은 국익을 해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국제화의 증가 추세로 인해 민족의식이나 주권의 약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현실 정세 분석으로서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에 편승하자는 정책은 국익을 해치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정체성과 주권의 약화를 추구하는 자신들의 정책이 국익이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제 이 문제를 조금 더 자세히 논해보자.

 

 

국익의 다차원성

 

주권을 가진 민족 국가라는 국익의 주체가 명백하다 해도 그 국익의 실질적 주체는 서로 다를 수 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권력의 소지자를 중심으로 국가 내의 계급, 정당, 기업, 사회단체, 가족, 혹은 개인의 이익이 국익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절대 왕정 체제에서 국익의 주체는 국왕이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익의 주체는 당연히 자본가이고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당연히 공산당이다.

 

윤 대통령이 나열하는 국익의 측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이 경색된 한일 관계에서 발생하는 한국 대기업들의 불편함 해소이다. 그 불편함도 전체가 아니라 일부분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대기업의 일부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민족 국가의 국익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동원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대기업이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고 국가 경제를 이끌고 있기 때문에 국익의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대기업이 바로 국가나 민족 그 자체라고 우길 수 없다는 점이다. 제3자 변제안으로 말미암아 민족적 주체성이나 국민 주권에 상당한 손상이 가고 있지만 이에 대한 고려가 보이지 않고 있다.

 

국익의 보편타당성이라는 관점으로 볼 때 민주 체제는 독재 체제보다 훨씬 유리하다. 다수 국민이 주권을 공유하는 구조를 가진 민주 체제가 일인 독재자 혹은 독재 정당이 지배하는 독재 체제보다 일단 국익의 보편성을 주장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인 독재자의 판단이 다수 국민의 판단보다 일시적으로 우월할 수 있다. 그러나 인류 역사는 역시 민주 체제가 국익의 실현에 더욱 우세했음을 보여준다. 인간은 그가 가진 정의의 능력 때문에 민주주의가 가능하고, 불의의 성향 때문에 민주주의가 필수적이라는 니버의 격언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국익 논쟁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부분은 국내적 차원과 국제적 차원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다수 주권의 존재를 인정함으로 나타나는 국제적 무정부성(international anarchy)이다. 국내 거래에서 사람을 속이면 사기죄로 처벌받지만, 국제 전쟁에서 상대방을 속이면 공로 훈장을 받는다. 이는 역사상 수많은 종교, 철학, 문학에서 한없이 고민했던 주제이다. 대표적으로 소크라테스는 정의를, 맹자는 인의를 국제 관계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경쟁하는 국가들의 존재로 인한 국제적 무질서가 존재하는 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 현실 전쟁에 있어서 나름의 정의와 인의를 고수하다 대패를 당해 나라를 망쳤던 송나라의 양공과 헝가리의 러요시 2세가 동서양에서 유명한 사례이다. 국민의 삶을 책임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이념 혹은 사상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의 삶을 망치는 자들이야말로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아닐 수 없다.

 

동맹 외교의 득실에 대하여

 

국익의 실현을 위한 교섭 행위를 외교라 하는데, 외교의 꽃은 동맹 외교이다. 역사상 어느 국가도 한 국가 단독으로 그들이 원하는 국익을 완전히 실현한 적이 없다. 서양의 최대 강국으로 꼽힌 로마나 동양의 최대 강국으로 꼽힌 한나라는 당시 국제적 패권국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동맹국들을 얻거나 유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한나라가 흉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왕소군을 보낸 설화가 대표적이다. 소진과 장의, 메테르니히나 비스마르크, 키신저도 모두 강대국의 외교관이었지만 더욱 적극적으로 동맹 관계를 확립함으로써 국익의 최대 구현을 추구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국제 정세는 미국과의 동맹이냐 아니냐가 기준이 되었다. 양차 세계 대전을 통해 유럽의 전쟁 물자 생산기지로서 세계 경제를 장악한 미국은 축적된 경제력으로 세계를 미국 중심의 동맹 체제로 재편하였다. 동맹은 적대국이 있어야 가능하다. 미국은 처음에 소련을, 지금은 중국을 적대국으로 삼고 있다. 미국이 동맹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경제는 미국의 국익 극대화를 위한 거시적 장치라고 보는 게 옳다. 중남미의 종속이론가들이 거론하는 경제적 종속 사례뿐만이 아니라, 전후 30여 회 발생한 미국의 군사적 타국 침략 사례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역사를 볼 때 한미 동맹의 지속은 당분간 불가피하다. 미국은 1945년 이래로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와 북한 침공을 극복하고 독립과 민주주의와 경제 번영을 이룩하는 데 크게 기여한 동맹국이다. 지리적 위치를 보아도 전통적인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외교 원칙과 잘 어울린다. 그러나 이 동맹이 계속될지는 이 동맹이 양국의 국익에 얼마나 기여하는가에 달려 있다. 한국 내에서 한미 동맹을 하나의 이념으로 신봉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조선의 사대주의가 조선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큰 해악을 미쳤었는지를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한다.

 

역사상으로 강대국들의 무장 충돌은 양 세력의 경계선에서 발생하였다. 양차 세계 대전의 출발이 발칸반도였던 것처럼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발생한다면 그 경계선은 한반도나 대만 혹은 남사군도 정도가 될 것이다. 한국이 한미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초토화하는 선택을 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한국으로서는 국제적 동맹 관계에 신중히 접근하지 않을 수 없다.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나 1950년 애치슨 선언 또는 2023년 한국 대통령실 도청 사건에서 보듯이 국제 정치에서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안은 그가 실용 외교가 아니라 이념 외교에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일본은 한국의 동맹국도 아닐뿐더러 제3자 변제안은 역사적 사실과 법적 논리에 있어서 모두 취약한 정책이다. 추가로 제시된 제안 이유들도 대체로 모순적이거나 근거가 희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이 제안을 밀고 나가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그가 곳곳에서 반복하였듯이, “자유, 인권, 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윤 대통령의 이념적 인식이다. 이에 덧붙여 그는 “한국이 선제적으로 걸림돌을 제거해 나간다면 분명 일본도 호응해 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공식적으로 토로하였다.

 

윤 대통령의 대일 이념 외교는 두 가지 점에서 한국의 국익에 손해를 미칠 수 있다. 첫째는, 한국과 일본이 진실로 자유, 인권, 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느냐는 문제이다. 한국은 30여 년의 군사 독재로 유명했던 나라이고 일본은 봉건적이고 비민주적인 1.5 정당 정치의 사례로 자주 인용되는 나라이다. 두 나라에서 자유, 인권, 법치의 전통은 희박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제3자 변제안이라는 윤석열의 “정치적 결단”이 법치주의를 무시하고 있다. 둘째는, 설혹 양 국가가 위에서 언급한 보편적 가치를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다 해도 이러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국익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일본이야말로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역사적 본보기이다. 전후 시대에 일본은 이념과 사상을 초월하여 오로지 국익만을 추구하는 “경제적 동물”(economic animal)로서의 국제적 명성을 누리고 있다.

 

양국의 관계 개선을 위한 한국의 선제적 양보에 일본이 호응할 것이라는 윤 대통령의 기대는 일본의 외교적 기반에 대한 몰이해에서 출발하고 있다. 많은 일본 연구가들은 일본 문화가 죄의식보다는 수치심을 더 중시한다고 보고 있다. 과거사 문제를 대하는 독일과 일본의 차이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독일은 나치의 죄악을 인정하지만, 일본은 군국주의의 죄를 인정할 수 없다. 일본에 있어서 죄의 인정은 수치스러운 일이며, 인정하는 순간 현인신(現人神)으로 추앙되는 일왕의 전범 책임이 부각되어 일본의 정체성이 큰 혼란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일본이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일본 군국주의의 죄를 부인하는 외교를 벌여 온 이유이다. 윤 대통령의 제3자 변제안이 일본에서 일본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한국의 항복 선언으로 여겨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복음과 국익 사이

 

복음과 국익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 복음이 무한하고 영원한 것이라면, 국익은 유한하고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속성이고, 국익은 세속 정부의 속성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두 국가의 이중적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마땅히 이 둘의 관계를 잘 알고 언제나 신중히 처신해야 한다. 교회가 특정한 국익에 얽매이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경각심을 유지해야 한다. 복음은 지상에서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실천으로 나타나지만 보편성을 유지할 때만 의미가 있다. 무정부적이고 냉정한 국제 체제에서 이러한 모습은 송양공의 인이라는 무분별함으로 결말지어질 수 있다.

 

과거 서양 제국주의 시절에 신앙과 국익이 완전히 일치하는 정교 유착의 시기가 있었다. 기독교 선교사들은 제국주의 함대에 실려 식민지로 파견되었다. 기독교 선교사들의 오만함과 공격적 선교가 때로 선교 현지인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로 인해 현지인들의 선교사 공격이 발생하면 서양 제국주의자들은 이를 해당 지역의 식민지화 명분으로 사용하였다. 이는 전형적인 정교 유착이었으며 사실상 복음 전파라 하기도 어려웠다. 정교분리가 일반적인 현대에 와서 복음과 국익은 나름 잘 분리되어 있으나 아직도 정교 유착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종교 지도자들도 존재하고 있다.

 

복음과 국익이 잘 어울릴 수 있는 분야도 있다. 종교의 자유나 인권 보장, 민주주의 실현 등은 공유 가능한 가치이지만 각 국가의 형편에 따라 받아들이기를 저어할 수 있다. 군비 축소나 평화 협정은 참여하면 분명히 국익을 증진시키지만 국가 간의 신뢰 부재로 말미암아 도리어 군비 증강이 진행되는 게 현실이다. 자유 무역과 투자 협력은 적대 국가들 사이에서도 가능하다. 복음과 국익이 가장 잘 어울리는 분야는 문화 교류와 환경 보호이다. 문제는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크든 작든 국익의 고려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화 교류는 국익을 초월할 것 같지만 실제로 중국은 사드 배치를 핑계로 한한령(限韓令)을 내린 바 있다. 국제적 투자 협력의 상징인 다국적 기업도 미국의 세계적 패권이 약화되는 순간 현지 국가(host country)의 국유화 공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국제화 혹은 세계화의 기대들은 냉정한 국익 우선의 논리 앞에서 언제나 맥없이 무너지기 마련이다.

 

복음과 국익을 위해 무엇을 할까?

 

복음과 국익의 조화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순간이다. 핵심은 시야를 넓히는 노력이다. 인간은 좁은 시야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도 다양한 학습으로 시야를 넓히면서 살아간다.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계속 성장할 것인지는 각자의 노력에 달려 있다. 인애와 공평과 정직은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실천 목표이다. 그 실천의 방법은 무수히 많고 어떤 방안은 다른 방안보다 바람직하다. 우리 앞에 주어진 정답은 여러 개이다. 우리의 시야가 넓을수록 더 풍성한 가능성을 누리게 된다.

 

윤석열 정부의 국익 논쟁도 제3자 변제안이라는 협소한 선택 때문에 발생했다. 과거사 문제에서는 강경책을 유지하고 안보 문제에서 동맹국인 미국의 체면을 살려 주는 선택을 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가 과거사 문제에서 강경책을 유지해도 일본으로서는 마땅한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윤 정부가 먼저 양보함으로써 국내의 분열과 해외의 경멸을 초래하고 말았다. 지금 윤석열 정부 외교의 문제는 일본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이다.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심대한 타격을 받을 공산이 크다. 연미경일친로협중(聯美警日親露協中)의 실용 외교가 절실한 때이다.

 


1) 경상국립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기윤실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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