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과연 우리가 소비를 멈출 수 있을까? 우리 삶에 깊이 스며든 소비중심주의를 탈피하는 것이 가능할까? 다행히 소비가 줄어든 세상을 향해 도전하는 이들이 있다. 매키넌의 책 『디컨슈머』 서문에서는 가상으로 ‘세상이 쇼핑을 멈추는 날’을 보도하며 ‘소비하지 않는 소비자’(디컨슈머, 반소비자, 다운시프트)들이 즐겁게 만들어 가는 새로운 문화를 그린다. (본문 중)

더 이상의 소비 멈추기, 『디컨슈머』1)

 

유미호(기독교환경교육센터_살림 센터장)

 

기후 위기가 심상치 않다. 날이 뜨거워진 것을 넘어 지구의 기후 시스템이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크고 빈번해지고 있는 산불은 물론 극지방의 빙하와 빙산이 녹고 동토가 녹으면서 발생하는 해수면 상승, 늘어나는 대형 홍수, 극심한 가뭄, 기록적인 폭염과 폭설 등 기후 위기는 이제 우리의 삶과 지구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우리가 지구를 재생할 수 있는 속도보다 1.7배(한국은 3.5배)나 빠른 속도로 지구 자원을 소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우리가 사용하는 물, 공기, 토양, 자연 자원의 양이 지구가 생태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양을 초과하는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Earth Overshoot Day)이 해마다 점점 빨라지고 있다(국제생태발자국네트워크). 1970년에는 12월 30일이던 것이 1996년에는 3개월 앞선 9월 30일에, 2020년에는 4개월 앞선 8월 22일이 되었다. 2020년 들어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날짜가 전년보다 3주 늦추어지긴 했지만, 일시적 현상이었다. 강제 멈춤으로 경제가 이례적으로 가라앉아 전 세계 탄소 배출량과 삼림 벌채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가 회복되기도 전에 다시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이 앞당겨져 지난해에는 7월 29일이었다(우리나라의 경우는, 4월 2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기후 변화의 마지막 임계점인 지구 온도 1.5℃ 상승까지 남은 시간을 가리키는 탄소시계는 이제 6년 17일 6시간 16분을 가리키고 있다(2023년 7월 5일 현재). 이제 1.5℃까지는 0.4℃ 남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양의 자원이 소비되었고, 또, 많은 쓰레기가 배출됐다. 세계 인구의 20%가 전기, 종이, 고기와 생선, 자동차 사용 등으로 세계 소비의 76%를 소비하고 있으며, 세계 인구의 12%가 전 세계 물의 85%를 소비하고 있다. 단순화하기엔 사회가 복잡한 부분이 많지만, 전 세계 소비 현황은 이렇듯, 지구 북반구에 사는 이들이 남반구에 사는 이들보다 훨씬 많은 소비를 하고 있고, 그래서 가난한 나라, 빈곤층, 그리고 청소년과 다음 세대들이 점점 더 큰 기후 재앙에 노출되고 있다.

 

유엔의 국제자원전문가위원회에 따르면, 새 천 년이 시작될 무렵부터 소비는 인구수를 제치고 가장 심각한 환경 문제로 떠올랐다. 기후 변화, 생물 종 멸종, 독성 오염 등 거의 모든 환경 문제의 중심에 소비가 있다. 그만큼 지금은 우리가 기후 위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때다. 책임이란 물론 태초에 하나님이 인류에게 “지키고 돌보라”(창세기 2:15)고 위임하신 일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생산과 소비 활동에서 ‘생명을 선택하는’ 삶을 살라고 명하신다.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누가복음 12:15)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따른다 하면서도, 우리는 도대체 쇼핑과 소비를 멈추기 어렵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가난한 시민들조차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꺼이 값을 지불하고 싶은 것’을 구매한다고 한다. 우리는 전 세계 45억 명의 저소득층마저도 매년 5조 달러 이상을 지출하는 소비 시장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거대 소비 시장이 성장하면 할수록 기후 재앙의 날을 가리키는 탄소시계는 더욱더 빨라진다.

 

지난 50년간, 인구는 두 배, 육류 생산량은 세 배, 도살되는 돼지는 세 배 늘었고, 우리가 먹는 고기가 매년 1억 톤이 되었다. 그 동물들에게 먹이는 곡물이 전체 곡물 생산의 절반인 10억 톤, 배출되는 축산 분뇨는 3억 톤이다. 해산물 소비도 세 배가 늘었는데, 모든 어류와 식물 종의 4분의 1이 개체 수가 감소했고, 잡은 물고기의 3분의 1은 양식장 물고기의 먹이로 분쇄되고 있다. 비행기 승객은 열 배가 늘어났고, 화석 연료 사용량은 세 배 늘어 현재 매년 350억 톤 이상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고 있다. 그로 인해 지구는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1.1도가 올랐다. 평균 해수면은 10센티미터가 높아졌는데, 절반 정도는 빙하가 녹아 발생한 것이다. 환경적 측면에서 더 이상의 소비 증가는 재앙을 재촉하는 일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소비를 멈출 수 있을까? 우리 삶에 깊이 스며든 소비중심주의를 탈피하는 것이 가능할까? 다행히 소비가 줄어든 세상을 향해 도전하는 이들이 있다. 매키넌의 책 『디컨슈머』 서문에서는 가상으로 ‘세상이 쇼핑을 멈추는 날’을 보도하며 ‘소비하지 않는 소비자’(디컨슈머, 반소비자, 다운시프트)들이 즐겁게 만들어 가는 새로운 문화를 그린다. 이들은 소비의 양을 줄이는 동시에 내재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기후 위기와 생물 종의 멸종 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줄곧 행동한다.

 

사람들이 필요와 욕망을 구분할 줄 알고, 필요만큼만 누리며 만족할 줄 알게 된다면, 아마도 세상은 바뀔 것이다. ‘필요’란 기본적인 육체적 필요(음식, 깨끗한 물, 집, 옷 등)를 만족시키는 재화나 서비스를 말한다. 사람은 필요를 넘어서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항상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필요와 욕망을 혼동하기 시작할 때는 문제가 된다. 시장의 트렌드를 조성하는 광고들로 인해 우리가 ‘욕망’을 ‘필요’라고 느끼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소비 증가에는 많은 요인들이 있다. 예를 들면, 세계적인 인구 증가와 급속한 경제 성장에 따른 소비, 도시화 및 기술 변화에 의해 새롭게 등장한 인간의 필요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소비, 정신적 소외감을 무마하는 방편으로서의 소비 등이 소비 증가에 기여하고 있다. 소비는 인류의 물질적 삶의 기준을 높였으나, 현재의 모습은 지속 가능한 생활 방식은 아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의 경제는 소비, 곧 우리가 시장에서 재화를 소모하는 행위로써 지탱되고 있다. 결국 경제는 탄소 배출을 동력으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소비를 줄여야만 한다. 문제는 ‘소비의 딜레마’이다. 경제학자들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면 경제가 무너진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소비자들이 소비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위기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국가 지도자들은 소비가 줄어들 때마다 ‘나가서 소비하라’고 부추기곤 했다. 그런데 2020년 초,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 소비의 20%가 감소하였고, 말 그대로 경제는 붕괴 직전에 처했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또 다른 면을 보았다. 탄소 배출량의 4분의 1이 줄어들고 자연이 살아났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실제로 줄어든 것은 심각한 경기 침체가 발생했을 때, 즉 세계가 쇼핑을 멈췄을 때뿐이었다. 2020년 초에 코로나19로 봉쇄령이 내려져 소비문화의 문이 닫히자 대부분의 국가에서 탄소 오염이 5분의 1에서 4분의 1가량 줄었고, 탄소 배출 절감 목표에서 몇 년씩 뒤처졌던 국가들이 갑자기 일정보다 몇 년 앞서게 되었다. (『디컨슈머』, 19쪽)

 

사람들이 자신의 욕구와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 하나는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더 적게 원하는 것이다.2) 파타고니아는 2011년 소비 대목인 블랙프라이데이를 앞두고 뉴욕 타임스에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 “필요하지 않은 것을 사지 마세요. 무엇이든 신중히 고민하고 구매하세요”라는 광고를 냈다. 재킷 한 벌이지만, 더 질 좋은 물건을 더 적게 구매하고자 하는 디컨슈머들을 겨냥한 전략이었다. 이와 같은 흐름은 의류 산업이 ‘불필요한 소비 위에 세워져 있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하는 리바이스를 비롯해, 단기적 목표 대신 지속가능성에 중점을 두는 기업들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그 사례들이 종종 뉴스에 올라오고 있다.

 

만약 오랜 안식일 전통에서 이어져 온 것처럼, 사람들이 일요일 하루만 생산이나 소비 활동을 삼간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일 년에 52일이나 되는 일요일에 사람들이 소비를 멈춘다면 약 15%의 소비가 줄 것이고, 그만큼 탄소 배출량도 줄어들 것이다. 현재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 절반을 줄이고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성취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중요한 변화일 것이다.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쇼핑과 소비를 멈추고 친구나 가족과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들의 마음도 고요해지고 보다 더 돈독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 영향력은 결코 적지 않다.

 

일찍이 2년여에 걸친 숲속 생활을 기록해 『월든』이라는 책으로 펴냈던 생태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대로, 우리가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기 위해 애썼다면 어땠을까? 우리가 조금만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려 했다면, 조금만 덜 소비하고 더 나누었다면, 오늘의 지구는 이미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물건이 너무 많으면 특별함이 사라지고, 지나친 참신함은 모든 새것을 무의미하게 만들며, 이 모든 것이 너무 많으면 사람들은 더 이상 행복해하지 않는다. (『디컨슈머』, 331쪽)

 

내재적 가치를 추구하는 활동은 물질주의보다 심리적 욕구를 더욱 잘 충족시키기 때문에, 보통 간소한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와 텔레비전, 음반 소비를 줄이면서까지 내재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간을 늘린다. 소비를 멈춘 세상은 정말로 더 차분한 세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빠른 속도의 삶이 필수처럼 느껴지듯이, 느린 속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간소한 삶이 자기 목소리를 더욱 명확하게 듣는 것이라면, 실제로 풍성한 고요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디컨슈머』, 314쪽)

 

우리 자신뿐 아니라 지구상 모든 존재들이 자기의 필요를 채우며 풍요를 누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삶의 근본 토대를 파괴하기까지 소비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가 사는 방식과 위험에 처한 지구 사이의 인과관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누려 왔고 또 지금 누리고 있는 풍요와 편리가 만들어 낸 심각한 문제를 연관 지어 보고 설명할 수 있다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내가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일들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으로서, 너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는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예레미야 29:11). 주님 주시는 희망과 사랑을 마음에 품고, 지금껏 우리가 더 풍요롭게 살고자 망가뜨린 지구와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바라보자. 소비를 줄이고 현명하게 소비하자. 그러면 끝내는 우리도 “모두가 골고루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 J. B. 매키넌 지음, 김하현 옮김, 『디컨슈머: 소비하지 않는 소비자들이 온다』(문학동네, 2022).

2) 사실 우리는 매년 실제 필요한 옷보다 많은 1천억 벌의 옷을 생산하고, 330억 벌의 옷을 그냥 버리고 있다. 음식물도 마찬가지인데, 전 세계 음식물의 경우 약 5분의 1이 전혀 먹지 않고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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