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유유안은 전투를 하면서 고민한다. 미군들은 방탄복을 입고 있는데 자신들은 무명옷만 입은 채 싸우기 때문이다. 또 적국의 리지웨이 장군은 압록강까지 공산군을 밀고 올라올 수 있었는데 진격을 멈추었다. 무리한 작전으로 수천 명의 목숨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게 주인공을 혼란에 빠트린다. (본문 중)
이정일(목사, 작가)
많은 사람들이 한국전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의 시각으로 쓴 것이 대부분이지만 『중국이 본 한국전쟁』과 『중국 공문서와 자료로 본 6·25 전쟁과 중공군』은 중국의 시선으로 본 한국전쟁을 이야기하고, 『이런 전쟁』은 미국의 시선으로, 『그을린 대지와 검은 눈』은 영국과 호주의 시선으로 한국전쟁을 이야기한다. 한국전쟁을 다룬 책들이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풀어내지만 그게 눈길을 끌지는 못한다.
반면, 소설가 하진의 『전쟁 쓰레기』1)를 읽으면 전쟁 기록물에서 다루지 못하는 게 보인다. 바로 개인이 바라본 전쟁에 대한 시선인데, 그게 꼭 비엣 타인 응우옌의 『동조자』나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읽는 것 같다.
『전쟁 쓰레기』는 허구이다. 헌데 이 소설을 읽다 보면 허구가 사실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바로 통계나 자료가 드러내지 못한 비극의 진짜 원인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전쟁 쓰레기』는 한국전쟁을 포로가 된 한 중국 의용군의 시선을 보여 주는데 주인공 유유안이 중국 공산당을 바라보는 시선이 독특하다.
주인공 유유안은 전투를 하면서 고민한다. 미군들은 방탄복을 입고 있는데 자신들은 무명옷만 입은 채 싸우기 때문이다. 또 적국의 리지웨이 장군은 압록강까지 공산군을 밀고 올라올 수 있었는데 진격을 멈추었다. 무리한 작전으로 수천 명의 목숨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게 주인공을 혼란에 빠트린다(453쪽).
그는 상상해 본다. 인민 의용군 부대가 미군과 같은 상황이라면 지휘관은 어떻게 판단했을까? 마오쩌둥이라면 의용군을 모두 희생시키더라도 밀고 내려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전쟁은 인간들을 숫자로 바꿔 버리고 장군은 전투 결과를 숫자로 평가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미군은 왜 악마여야 하는지 묻게 된다.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한국인들을 돕기 위해 먼 길을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좋든 싫든 우리 중 일부는 그들의 약탈자가 되고 말았고(455쪽), 한국인들이 스스로 전쟁을 시작했다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들처럼 작은 나라는 힘이 더 센 나라들을 위한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었다(454쪽)는 것을.
유유안은 황푸 군관학교를 나왔다. 타이완으로 도피한 국민당 정권이 세운 학교였다. 그런데도 인민 해방군이 들어오자 자발적으로 투항했고 후에는 중국 의용군 행정 장교가 되어 한국전쟁에 참전한다. 포로가 된 후에도 2만 명이 넘는 중국 포로 중 3분의 2가 타이완을 선택했을 때, 그는 중국 본토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지만 조국에선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수치스럽게 포로로 잡힘으로써 중국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노모와 약혼녀 때문에 본토로 돌아갔지만, 노모는 돌아가셨고 약혼녀는 포로 이력이 있는 남자와 결혼하는 걸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선택을 뒤늦게 후회하게 된다.
하진은 세계적인 작가인데 왜 그의 소설이 중국에서 출간되지 못했는지는 분명하다. 작가는 포로 귀환자들은 모두 불명예제대를 했고, 평생 특별 관리 대상으로 살아야 했으며(517쪽), 일부는 배반자나 스파이로 분류되어 감옥에 갔고, 귀환자 자식 중 대학에 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520쪽)는 뼈아픈 사실을 짚어 내기 때문이다.
소설의 끝에서 인민 위원 페이가 하는 말이 인상 깊다. ‘우리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게.’ 포로였어도 끝까지 분투하여 본토로 귀환했지만, 그의 노력은 공산주의 군대 행동 수칙 7조(항복하지 마라. 목숨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포로로 잡히지 마라) 때문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그 억울함을 기록으로 남기라는 한 마디로 대신한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이 진행 중이고 미·중 갈등으로 대만 전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는 알 수 없지만, 작가는 전쟁이 가져오게 될 운명에 대해 분명하게 쓰고 있다. 베트남 전쟁을 다룬 소설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2)에서 팀 오브라이언이 쓴 한 마디가 우리 모두에게 주는 조언 같다.
나는 당신이 내가 느꼈던 것을 느끼기를 원한다. 왜 이야기 속의 진실이 실제로 일어났던 사실보다 때때로 진실한 것인가를 당신도 깨닫기를 원한다. (256쪽)
1) 하진, 왕은철 옮김, 『전쟁 쓰레기』(시공사, 2011).
2) 팀 오브라이언. 김준태 옮김,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한얼미디어,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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