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0차 개헌논의의 핵심은 소위 87년 체제 즉 1987년에 9차 개정된 현재의 헌법이 여러 가지로 손 볼 게 많다는 주장이다. 소위 제왕적 대통령제라 비판받고 있는 현행 권력 구조의 개편뿐만 아니라 시기에 따라 지방 분권, 국민 소환/발안, 중대선거구제, 연동형 비례대표제, 결선 투표, 5·18 민주화 운동 전문 수록, 등 다양한 제안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본문 중)

백종국(경상국립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헌법이란 무엇인가

 

제74회 제헌절(制憲節)을 맞이하여 대한민국 헌법의 통치 하에 있는 민주 시민 여러분께 축하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헌법(憲法, constitution)이 특정한 공동체를 다스리는 기본적인 규범체계를 의미한다면, 한국의 현 헌법은 한반도 거주민들이 반만년 동안 겪어온 다양한 공동체의 규범들 중에서 가장 발달되고 이상적인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국 시대나 고려시대의 부실한 율령 체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비교적 발달된 형태였던 조선 시대의 경국대전조차도 현재의 헌법이 보여주는 이상의 고매함과 체계의 정교함에 있어서 감히 비교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역사에서 나타나는 헌법들에 두 가지 공통적 요소가 있음을 지적했다. 첫째는 해당 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이상에 대한 서술이다. 둘째는 해당 사회를 통치할 권력 체계를 특정하는 서술이다. 헌법을 결정하는 주권의 소재, 즉, 주권자가 왕이냐, 귀족이냐, 인민이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헌법은 인민 주권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자유주의, 법치주의, 복지주의를 폭넓게 수용하고 있다. 더불어 권력 분립, 지방 자치, 평화 통일 등 한국적 특성과 비전을 잘 드러내고 있다. 공정성과 실적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정교한 통치 기구 구성도 제3세계 국가로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한국의 헌법이 이처럼 빠른 발전을 보여준 것은 서양으로부터의 적극적인 제도 수입에 힘입은 바 크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말기의 극심한 혼란과 일본 제국주의의 가혹한 수탈로 인해 과거 봉건주의와의 고리가 거의 완전히 끊어졌다는 점 또한 서구 사상과 제도를 자유롭게 수입할 수 있는 여건이었다. 헬레니즘 사상에 바탕을 둔 서구의 ‘컨스티튜션’(constitution)이라는 개념이 일본에서 ‘헌법’(憲法)이라는 한자어로 번역이 되어 한국에 수입되었다. 실제로는 미국의 헌법을 기초로 영국과 일본과 독일과 프랑스와 소련에서 발달된 개념들을 여기저기 차용하다 보니, 1948년 7월의 제헌헌법은 당시 사회에서 매우 이상적인 헌법으로 나타났다. 마치 1917년 멕시코의 혁명헌법이 당시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헌법이 된 것과 유사하다. 대체로 이론이 현실보다 앞서가는 법이다.

 

10차 개헌 논의의 성격

 

한국인들은 지난 70여 년 동안 자신들에게 알맞은 헌법이 어떤 것인지를 끊임없이 탐색하는 중이다. 정치계 일각에서 진행 중인 소위 ‘10차 개헌논의’가 그 사례 중 하나이다. 권력 구조의 개편이 중심 주제인데 현재의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고치든지, 대통령제를 의원내각제로 고치자는 주장에서, 분권형 대통령제, 책임총리제, 이원집정제 등 다양한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1948년에 제정된 이래 아홉 번이나 손을 본 헌법이지만 여전히 고칠 게 있는가 보다. 물론 1950년에 제정된 후 105회나 개정한 인도 헌법에 비할 수야 없겠지만.

 

이번 10차 개헌논의의 핵심은 소위 87년 체제 즉 1987년에 9차 개정된 현재의 헌법이 여러 가지로 손 볼 게 많다는 주장이다. 소위 제왕적 대통령제라 비판받고 있는 현행 권력 구조의 개편뿐만 아니라 시기에 따라 지방 분권, 국민 소환/발안, 중대선거구제, 연동형 비례대표제, 결선 투표, 5·18 민주화 운동 전문 수록, 등 다양한 제안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주로 대통령들이 임기 말에 제안하면 주요 후보자들이 반대하고, 자신이 당선되면 진행하겠다고 공약하지만 당선되면 다시 흐지부지해 버리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당선된 대통령들이 개헌으로 인해 자신의 임기나 권력이 희생되는 상황을 꺼리기 때문이다.

 

설혹 현 대통령이 희생적으로 권력 구조 개편의 개헌에 동의한다 해도 내각제로의 권력 구조 개편은 추천할 만한 일이 아니다. 이 문제를 유권자 여러분께 좀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 휘장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모든 제도에는 장단점이 있다

 

헌법 전문가들이 말하는 바처럼, 모든 제도에는 장단점이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원리를 되새겨야 한다. 대통령제는 권력의 안정성과 효율성이 보장되는 반면에 자칫 독재로 흐를 가능성이 크고 대통령의 자질에 따라 극심한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의원내각제는 권력을 둘러싼 갈등이 적고 책임 정치가 구현되는 데 반하여 권력의 안정성과 효율성이 약해진다. 의원내각제의 시행 초기에는 빈번한 정권 교체로 인해 극심한 정치적 불안정이라는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해야 할 가능성도 크다.

 

모든 제도에는 역사적 구조가 있다. 의원내각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다수의 선진국들이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 국가들은 대부분 제국주의 시대에 왕정을 유지하였던 본국에 해당한다. 현재의 정치 체제도 왕정이거나 공화정을 혼합한 왕정이므로 의원내각제가 더 잘 어울리게 되어있다. 반면에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았던 식민지에서는 이전의 왕정이 소멸되었다. 이들은 독립 이후에 순수한 공화정을 수립할 수밖에 없었으며 새로운 권위의 주체를 형성한다는 차원에서 대통령제를 선호하고 있다. 반드시 미국을 추종하기 때문이 아니다.

 

공동체 내 세력 균형의 문제

 

한국의 경우에 권위의 부재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에는 왕이 없다. 조선 말기의 극심한 혼란, 가혹한 일제의 통치, 비극적 분단과 전쟁, 그리고 성공적인 토지 개혁으로 인해 과거의 정치경제적 권위체들은 모두 분쇄되었다. 영적인 권위를 점유했던 유교와 불교도 서구에서 수입된 기독교의 급속한 성장으로 말미암아 그 영향력이 대폭 줄어든 처지이다. 아직 새롭고 보편적인 권위체는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도 과거의 권위주의 정권들이 끼친 폐해가 여전히 정상적인 권위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대통령의 존재는 만들어진 권위체로서 유용하다. 특히 세계의 최강대국들이 한국을 둘러싸고 각축을 벌이는 동북아의 정세를 볼 때 정치적 권위의 확보는 매우 중대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재벌 중심의 양극화 경제 구조도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다. 지난 한 세대 동안 진행된 재벌 중심의 산업화로 말미암아 한국의 경제 구조는 극심한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재벌주도의 산업화는 급속한 성장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가까운 미래에 이 경제적 양극화는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적 양극화로 번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 주권의 민주 정치에서 몇몇 재벌들이 실질적으로 주권을 행사하는 과두정치로 타락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의원내각제는 이 양극화에 쉽게 부화뇌동할 수 있다. 이미 사회에 팽배한 정치 불신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도 크다. 시민들의 주권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강력한 권력으로 정치경제적 양극화의 부작용을 차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대통령제를 유지할 뿐 아니라 시민 단체를 적극 육성하여 균형을 잡아야 한다. 사회적 세력 균형을 위해 대통령의 역할이 기대되지만, 그가 정치적 편의성 때문에 재벌과 동조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헌법이 선언하는 바와 같이 주권의 주체인 시민들의 능동적인 역할이 필수적이다. 다수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중요하다. 다행히 한국은 지난 세대 동안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시민 단체들을 육성하고 보유한 사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민 단체들의 한계를 고려한다 해도 역시 공적 이익을 목적으로 조직된 시민 단체야말로 사회적 세력 균형 회복에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까?

 

헌법의 권위를 위해 헌법을 자주 개정하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헌법 본문은 유지하고 수정조항을 첨부하여 변화된 상황에 대응하는 미국의 지혜를 참조하자. 무엇보다 먼저 제도 운용의 오류를 제도 자체에 전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제도 운용의 오류는 많은 경우 하위법의 개정, 신설 혹은 시민 의식의 개선으로 해결할 수 있다. 꼭 필요하다면 단순히 권력 구조 개편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논의되어 온 여러 가지 이상적 제도의 현실화로서 시도해 볼 만하다. 그러나 이조차도 국회의원 2/3의 동의라는 문턱 때문에 보수 양당의 정파적 이익 거래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하는 것도 주권자인 국민들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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