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곤충이 노래하는 것 역시 종족 번식이라는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라고만 생각해 버리기 쉽습니다. 과학적으로 확인 가능한 것만을 진리로 믿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노래하는 자체를 목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지요. 파브르는 곤충이 노래하는 가장 큰 이유를 생을 즐기고 생의 기쁨을 나타내는 것이라 합니다. (본문 중)

성영은(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기온이 올라가고 낮이 가장 긴 하지가 지나면 매미가 노래를 시작합니다. 매미는 비교적 사랑을 많이 받아 온 곤충 가운데 하나입니다. 전에는 시골에서나 볼 수 있었지만 이제 도시에서도 어디서나 매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도시에 나무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도시가 나무 수액을 먹고 사는 매미에게 살기 좋은 곳이 된 것이지요. 아침부터 아파트 단지에 매미가 요란하게 울어대는 일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야간의 아파트 단지나 자동차의 강한 조명 때문에 심지어는 밤에도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댑니다.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이제는 소음 수준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측정해 보면 매미 소리의 크기는 70~80데시벨(dB) 정도로 도로나 철로가의 소음 수준에 해당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매미가 참매미, 말매미 등 14종 정도가 산다고 합니다. 최근에 외래종 꽃매미가 들어와 피해를 주고 있기도 합니다. 매미는 종류에 따라 땅속에 사는 애벌레(굼벵이) 기간이 4, 5, 7, 13, 17년 등으로 나뉩니다. 우리나라는 5년과 7년 매미가 가장 많습니다. 시계도 없는데 매미의 애벌레는 그렇게 긴 기간을 어떻게 알고 정확히 정해진 때에 땅 위로 올라오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매미는 이렇게 긴 기간을 땅속에서 애벌레로 산 다음 땅 위로 올라와 우리가 아는 그 모습으로 몇 주 살다 죽습니다. 깜깜한 땅속에서 수년 동안 나무뿌리의 수액 채취 등 힘든 일을 하고, 햇볕 아래에서 한 달여 동안 즐기는 셈입니다. 이것이 매미의 일생입니다.

 

매미는 수컷만 노래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과학은 이 노래가 짝짓기를 위해 수컷이 암컷을 부르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매미의 노래뿐 아니라 다른 동물의 노래(울음)도 대부분 이렇게 해석합니다. 평생 곤충을 관찰한 파브르(Jean Henri Fabre, 1823~1915)는 매미나 곤충들이 왜 노래를 하는지 이리저리 자세히 관찰하고 실험했습니다. 왜 매미가 우는지에 대한 파브르의 대답은 우리의 신앙에 생명을 더 깊고 넓게 보는 시각을 제공해 줍니다.

 

 

파브르는 먼저 매미의 미친 듯한 승리의 노래를 비난하지 말자고 말합니다. 수년 동안 깜깜한 어둠 속에서 흙투성이의 더러운 옷을 입고 땅을 파면서 힘들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진흙투성이의 땅 파는 일꾼이 이제는 멋있는 옷을 입고, 맛있는 음료를 마시면서 더위에 취하고 이 세상의 최고의 기쁨인 빛을 넘치게 받게 되었습니다. 땅속 어둠 속에서 그렇게 힘들게 오랜 시간을 보내고 이제서야 밖으로 나와 짧지만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으니 그런 행복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파브르는 수컷 매미의 노래가 암컷을 부르는 호소라는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의 관찰에 따르면 매미의 수컷과 암컷들은 서로 가까이에 섞여서 모두 머리를 위로하고 플라타너스 나무의 매끈매끈한 껍질 위에 나란히 줄지어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암컷과 수컷이 그렇게 서로 가까이 붙어 있는데, 그렇게 큰 소리로 구애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한 것입니다. 수컷과 암컷이 나란히 앉아 있는데도 수컷은 쉼 없이 큰 소리로 노래합니다. 그러나 파브르는 수컷이 요란하게 울어댈 때 암컷이 그에게로 가는 것을 단 한 번도 관찰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원하는 암컷이 가까운 이웃에 있는데 구혼자가 무엇 때문에 끝없는 고백을 해야 할까요? 파브르는 이런 의문을 가지고 계속해서 매미를 관찰합니다. 그리고 이런 수컷의 노래를 듣는 암컷들에게서 그 어떤 만족의 표시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수컷이 아주 큰 소리로 울며 구애를 할 때 암컷들이 몸을 떤다거나 가볍게 흔드는 행동을 하는 것을 결코 보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파브르는 매미 외에 노래하는 곤충인 메뚜기나 귀뚜라미 등 여러 곤충을 살펴보고 비슷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더구나 짝짓기를 끝낸 이 곤충들의 수컷들이 다시 울기 시작하는 걸 봅니다. 이미 자신의 정낭을 암컷에게 주어버린 수컷이 암컷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계속해서 노래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종족의 보존을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게 되었는데도 수컷들은 계속해서 노래를 합니다. 그렇다면 끈질기게 노래하는 목적이 사랑의 호소에만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또 여치붙이는 암수가 모두 소리 나는 기관을 가지고 노래합니다. 여치붙이의 경우 수컷이 암컷을 위해서만 노래한다는 주장은 맞지 않을 것입니다.

 

파브르는 매미나 다른 곤충들의 요란한 울음소리가 사는 기쁨, 즉 각각의 동물들에게 제 나름대로 생명을 찬양하기에 적합한 수단이라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매미들이 자기가 화려한 옷을 입고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해 요란스러운 악기를 연주한다는 자신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냐고 반문합니다. 그도 물론 짝짓기를 통한 종족 번식도 곤충들의 음악 연주의 목적 중 하나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짝짓기도 삶의 일부이니까요. 그렇지만 이 목적은 부차적인 목적이라 합니다. 주목적은 생 자체를 노래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시대는 실용적인 이유를 추구합니다. 이웃 사랑도 결국 나에게 혹은 나의 생존에 이익이 되기에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이라든지 보이지 않는 이유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곤충이 노래하는 것 역시 종족 번식이라는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라고만 생각해 버리기 쉽습니다. 과학적으로 확인 가능한 것만을 진리로 믿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노래하는 자체를 목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지요. 파브르는 곤충이 노래하는 가장 큰 이유를 생을 즐기고 생의 기쁨을 나타내는 것이라 합니다. 그러면서 짝짓기는 그에 따라오는 부차적인 이유임을 과학적 관찰과 실험을 통해 증명합니다. 곤충과 같은 미물일지라도 생명의 존재 이유가 종족 번식, 더 크게는 생존 경쟁(투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을 기쁨을 노래하는 것이라니 신기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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