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도 사면권은 심심치 않게 논란거리가 되었다.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특별사면이다. 일반사면은 특정한 종류의 범죄를 정하여 그 범죄를 범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특별사면은 특정한 범죄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특혜 시비가 생기기 쉽다. 게다가 특별사면은 비교적 빈번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주 논란을 일으킨다. (본문 중)

천윤석(변호사, 기윤실 모두를위한정치운동 전문위원)

 

근대 입헌주의는 절대 왕정으로부터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다. 절대 군주는 신성한 존재로서 제한되지 않는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시민 계급이 성장하고 시민의 권리에 대한 개념이 발전하면서 군주는 신성한 지위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시민은 헌법이라는 규범적 틀을 만들고 왕의 권력을 헌법 안에 가두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법치국가원리는 점차 발전해 가며 헌법의 중요한 원리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국가 원수의 권력이 법의 아래에 있다는 것은 상식으로 통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군주제의 잔재 중 하나가 여전히 목숨을 부지한 채 헌법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바로 국왕의 은사권(恩赦權)에서 유래하는 사면권이다.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다.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시민 혁명의 역사를 장식한 국가들의 헌법도 사면권을 인정하고 있다. 물론 사면권은 단순한 은사권이 아니라 의회에 대한 국왕의 견제 수단의 의미를 포함하며, 그 때문에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국가 원수가 사면권을 행사하여 사법부의 판결을 간단하게 무력화하는 것은, 헌법상 법치국가원리의 관점에서 볼 때 쉽사리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면권은 심심치 않게 논란거리가 되었다.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특별사면이다. 일반사면은 특정한 종류의 범죄를 정하여 그 범죄를 범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특별사면은 특정한 범죄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특혜 시비가 생기기 쉽다. 게다가 특별사면은 비교적 빈번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주 논란을 일으킨다. 민주화 이후 출범한 정권들은 임기 동안 평균적으로 7번가량 특별사면을 실시하였는데, 일반사면은 김영삼 대통령 집권기 단 한 차례 단행하였을 뿐이다.

 

역대 정권의 사면 연혁을 살펴보면, 당대의 정치적 상황을 추지할 수 있다. 시국 사범을 양산했던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각각 25회, 20회나 특별사면을 실시했다. 3당 합당으로 집권한 김영삼 정권 하에서는 5공, 6공 인사들이 대거 처벌되었다가 사면·복권되었다. 노무현 정권에서는 대북 송금에 대한 사법 처리를 놓고 갈등이 발생하였는데, 이때 처벌되었던 김대중 정권의 인사들이 다수 사면·복권되었다. 친기업적 성향을 드러낸 이명박 정권에서는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이 두드러졌다.

 

이처럼 사면의 연혁에 정치 상황이 반영되어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면은 기본적으로 법원의 사법적 판단을 무력화하는 속성이 있다. 그런데 사면권을 행사하는 과정은 지극히 정치적 판단에 의하여 좌우된 것이다. 즉, 사면권이 사법적 판단에 대한 정치적 개입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민주화 이후 오히려 사면권 행사가 더욱 왜곡되어 정치적 거래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있다. 강압적 통치가 사라진 민주화 이후 사면권을 활용할 정치적 수요가 증가하였고, 정권이 정국을 타개하거나 야당과 거래를 하기 위한 카드로 사면권을 활용한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역대 정권들에 비하여 이례적으로 빈번하게 특별사면을 남발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은 소위 시행령 통치, 차관 통치를 통해 헌법이 예정하는 일반적인 정치의 과정을 무력화하고 있는데, 이러한 정권의 특징이 사면권 행사에도 드러난다. 간편한 권한인 사면권을 통해 정치적 목적을 우회하여 달성하려 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2023. 8. 14. 정권 출범 후 1년 3개월 만에 세 번째 특별사면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특히 판결 확정 후 3개월밖에 되지 않은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이 사면되어 논란이 되었는데, 역시나 대통령실은 이에 대한 비판을 간단하게 일축했다.

 

보다 나은 미래는 상상력에서 나온다. 기존 제도에 대한 관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헌법이 지금까지 계속하여 사면권을 규정했고 다른 나라 헌법이 사면권을 인정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은 사면권이 존재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사면권에 대한 헌법의 규정은 합법성의 근거일 뿐 정당성의 근거는 아니다. 이제는 사면권의 존재 이유에 대하여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해야 할 때이다.

 

참고 문헌

강민국. 2012. “대통령 사면권의 문제와 개선방안”. 경남대학교 대학원.

이영주, 승재현, 김성배, 서보건. 2014. “사면권 행사 방법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 한국형사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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