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공동체와 인간 존중의 관계망에 큰 혼란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훈계나 도덕성을 강조하여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수 있는 그런 문제는 더 이상 아닌 것 같다. 현재 드러나는 사회적 현상들은 사회 구조나 시스템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과 관련이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인간 존재의 중요한 영역인 정서의 결핍이나 상실의 문제다. (본문 중)

곽은진 (아신대학교 상담학 교수)

 

최근 발생하고 있는 이상동기 흉악 범죄 사건, 교육 현장의 붕괴와 교사들의 잇따른 자살, 학부모의 왜곡된 자식 사랑과 양육의 태도, 가족 간 살인과 유기 등은 이제껏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심각한 현상임이 틀림없다. 과거에도 일부에서 이런 일들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때는 사회 문제로까지 확대되거나 사회 심리적 병리 현상으로까지 인식될 정도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사회 공동체와 인간 존중의 관계망에 큰 혼란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훈계나 도덕성을 강조하여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수 있는 그런 문제는 더 이상 아닌 것 같다. 현재 드러나는 사회적 현상들은 사회 구조나 시스템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과 관련이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인간 존재의 중요한 영역인 정서의 결핍이나 상실의 문제다. 최근에 나타난 문제들의 원인들을 정서의 상실이라는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 과도한 경쟁적 환경, 소유와 기능 중심의 가치관과 인간관이 만연함.

• 부유층이나 저소득층 모두 자기애성과 반사회적(소시오패스/사이코패스적) 성향이 늘어나고 정서 능력 결핍이나 공감 능력 저하 현상 발생함.

• 긍휼이나 공감 등 정서 능력의 상실로 소통의 어려움 발생.

• 인간 자체도 물질로 이해하고 물질주의적 돌봄 개념으로 인해 정서 학대나 정서적 방임에 대한 이해가 부재하거나 미흡함.

• 성공과 성취 등 결과에만 초점을 두고 과정에는 무관심하여 정서 장애가 증가함.

• 결과 중심 사회에서 감정 조절이나 통제력 관리 등을 배울 기회가 없으며, 사회적으로도 정서의 영역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지 않음.

 

지금 우리가 겪는 문제는 경제력이 있느냐 없느냐, 또는 많이 배웠느냐 배우지 못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 존재의 가치에 대한 믿음과 인간의 기본적인 정서적 능력이 상실됨으로써 공동체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공감과 존중이 무너진 것이다. 정서의 문제는 이성과 논리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인지적으로 우월하다고 해서 정서적으로 성숙한 것은 더욱 아니다. 감정은 느끼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거나 관리하지 못하면 온전한 선택을 할 수 없고, 공감력이 부족하면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도 어렵다. 현실 지각 능력과 상황 대처 능력이 부족해지므로 사회적 문제 해결 능력도 떨어지게 된다. 정서 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의사소통 방식은 관계를 갈등이나 단절로 이끌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들이 곧 사회 부적응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감정은 삶의 의미, 가치, 욕구와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 내 삶에 무엇이 필요한가? 무엇이 중요한가? 무엇이 가치 있는가? 무엇이 의미 있는가? 라는 질문의 답은 이성의 영역이 아닌 감정의 영역에 있다. 감정은 삶의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을 향해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며 걸어갈 수 있게 하는 힘의 근원인 것이다. 반대로, 잘못된 감정 조절과 통제, 정서적으로 왜곡된 자각을 따라 상황을 경험하며 행동한다면, 감정이 가진 긍정적인 힘이 큰 만큼 부정적으로도 영향이 크게 나타날 수 있다.

 

감정은 마음의 상태를 드러내며, 인간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는 결정적 힘이 된다, 감정은 행동 경향성을 지니며 내면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래서 폭행과 살인, 분노, 우울, 자살 등의 행동 뒤에는 이 방향으로 이끄는 조절되지 않은 부정적 정서가 존재한다. 본래 감정은 우리의 상태를 알려서 제대로 상황에 대처하고 문제를 해결하게 하여 생존과 적응을 돕는 것이다. 감정 자체는 인간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감정을 외면하고 무감각과 무감동, 정서적 왜곡과 감정 차단을 반복하게 되면 감정이 잘못된 신호 체계로 작동하여 그 자체가 비극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나는 우리 시대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는 주요한 원인이 정서 능력의 부재와 감정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라고 본다. 정서성을 상실하고 기능과 결과에만 집착하여 스스로를 도구화해 버리고 있는 나 자신과 우리의 모습을 한번 돌아보자. 어쩌면 지금의 혼란은 우리들을 온전한 자기로 돌아오도록 경고하는 정서의 몸부림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우리 사회가 감정에 무관심하고 감정을 잘못 사용하고 왜곡해 온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일지도…. 나는 이 글을 며칠 전 우연히 보게 된 한 글귀로 마치고자 한다.

“동정심을 잃어가는 사람은 미쳐가게 될 것이다.” (18세기 어느 유대교 격언집)

 

* <좋은나무> 글을 다른 매체에 게시하시려면 저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02-794-6200)으로 연락해 주세요.

* 게시하실 때는 다음과 같이 표기하셔야합니다.
(예시) 이 글은 기윤실 <좋은나무>의 기사를 허락을 받고 전재한 것입니다. https://cemk.org/26627/ (전재 글의 글의 주소 표시)

 

<좋은나무>글이 유익하셨나요?  

발간되는 글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시려면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여 ‘친구추가’를 해주시고

지인에게 ‘공유’하여 기윤실 <좋은나무>를 소개해주세요.

카카오톡으로 <좋은나무> 구독하기

 <좋은나무> 뉴스레터 구독하기

<좋은나무>에 문의·제안하기

문의나 제안, 글에 대한 피드백을 원하시면 아래의 버튼을 클릭해주세요.
편집위원과 필자에게 전달됩니다.
_

<좋은나무> 카카오페이 후원 창구가 오픈되었습니다.

카카오페이로 <좋은나무> 원고료·구독료를 손쉽게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_

 

 


관련 글들

2024.04.24

당신의 가족이 오늘 일터에서 죽는다면(손익찬)

자세히 보기
2024.04.22

지방 대학의 현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신하영)

자세히 보기
2024.04.15

사회적 참사와 그리스도인(임왕성)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