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남한 사람은 북한 이탈 주민이라고 하면 무언가 어색한 패션, 화장에 아직 북한 말투가 남아있고, 한국 생활을 여전히 낯설어하며, 쉽게 자립하지 못하고 외부 조력에 의존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북한 출신 청년들의 경우 외모와 말투로 구분이 어렵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학교에서 공부 중이거나 사회에서 일하며 자립의 길을 걸어가는 경우가 많다. (본문 중)
이창현(한반도평화연구원 사무국장, 이음과배움 대표)
“그 학생은 요즘 맨날 바쁘다네요. 예전에는 그렇게 의지하더니….”
북한이탈주민 정착도우미로 북한 출신 청년을 돕던 어느 교회 권사님이 아쉬운 마음을 담아 이야기하신다. 1년 전 그 청년이 하나원을 나와 처음 지역에 정착할 때, 권사님은 한국 생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의 손을 붙잡고 통장 개설, 버스카드 충전, 휴대폰 장만, 주민센터 방문 등 하나하나를 도와주었다. 북에 있는 가족, 탈출 에피소드, 진로 고민 등등 모든 이야기를 듣고 상담해 주었는데 어느새 슬슬 피하고 있다고 서운해하신다. 사소한 것까지 물어보았던 예전의 순수했던 모습은 어디 가고 한국물이 다 들어 변했다고 안타까워하신다.
그런데 북한 출신 청년은 다른 입장에 서 있다. 1년 전 첫 정착에서 시시콜콜 도와주셨던 권사님의 도움에 물론 고마운 마음이 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감사함만 있는 건 아니다. 휴대폰을 처음 개설할 때 권사님 권유대로 요금제와 약정을 선택했는데 지금 보니 자신에게 맞지 않는 선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휴대폰 매장 점원의 상술에 넘어가셨던 듯. 이 청년은 자신의 맘에 드는 새로운 휴대폰을 다시 장만했고, 요금제도 알뜰 요금제로 변경한 상태다.) 권사님이 청년을 너무 잘 아시는 것도 조금 부담스럽다. 처음 만났을 때 권사님께 가정사를 말했던 것이 조금은 후회스럽다. 늘 만날 때마다 북에 있는 아빠 건강을 물어보시는데 마음이 너무 심란하다. 대학 준비로 바쁜 요즘, 권사님은 이 청년을 만날 때마다 무조건 취직이 잘되는 학과를 선택하라고 하신다. 그도 취업이 제1 순위 목표이나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반복적인 충고가 아니라 실제적인 조언이다. 이제 권사님 도움은 괜찮다고 솔직히 말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 청년은 권사님을 점점 피하게 된다.
북한 이탈 주민 중 상당수는 젊다. 한국 도착 당시 나이를 기준으로 30대 이하 비율은 72%에 달한다.1) 따라서 이들의 적응은 빠르다. 수없는 고민 속에서 한국행을 택하고 새로운 시작을 결단한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대충 살지 않는다. 또래 남한 친구들에 비해 늦었다고 생각하기에 더더욱 속도를 내어 적응하고 전진하고자 애쓴다. 초기 3년 동안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나 이들을 처음부터 도왔던 남한 사람들은 이 변화를 그만큼 감지하지 못한다. 처음 만나 교제했던 모습에 주로 머문다. 여전히 서툴고 제한적일 것이라 짐작하고, 계속해서 그의 삶 깊숙하게 영향을 주려 애쓴다.
갓 한국에 온 북한 이탈 주민에게는 위 사례의 권사님처럼 언제든 달려가고, 충분한 시간을 보내며 도움을 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정착 도우미로서 권사님은 자신을 모두 내어 섬기셨고 그 덕분에 청년은 첫발을 잘 디딜 수 있었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면 이 청년은 새로운 관계를 원한다. 생활 정보를 넘어 자신의 진로에 대해 더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멘토를 기대한다. 적절한 정서적 거리를 두고 만남을 지속하면서 천천히 자신을 오픈하며 가까워지는 것이 가능한 관계를 바란다.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데려오거나 그들에게 돈을 부칠 수 있도록 자신의 커리어를 관리하고 괜찮은 재테크를 시작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네트워크에 뛰어들고자 한다. 지금은 장학금, 도서 상품권, 밀키트 등을 지원받으며 뒤처진 공부를 보완하고 편의점이나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지만, 동시에 주식이나 코인, 부동산 거래로 돈을 벌었다는 주변 사람들 성공 노하우를 좇으며 자신의 대박을 기원한다. 북한 출신 청년들도 남한 출신 청년들처럼 치열하게 경쟁하고 걱정 속에 불면의 밤을 보내며 미래에 조바심을 낸다.
그런데 왜 이런 청년들이 잘 보이지 않을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우리 주변에서 주로 전형적인 북한 이탈 주민들만 그려왔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남한 사람은 북한 이탈 주민이라고 하면 무언가 어색한 패션, 화장에 아직 북한 말투가 남아 있고, 한국 생활을 여전히 낯설어하며, 쉽게 자립하지 못하고 외부 조력에 의존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북한 출신 청년들의 경우 외모와 말투로 구분이 어렵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학교에서 공부 중이거나 사회에서 일하며 자립의 길을 걸어가는 경우가 많다.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이탈 주민들이 대거 들어온 지 25년이 지났기에 북한 출신 청년 중에서는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와서 일반 중고등학교를 경험한 경우도 상당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북한 이탈 주민이라고 하면 ‘최근에 사선을 넘어온 사람들’만 그린다. 갓 입국한 사람들의 어색한 외형만 떠올리고, 5년, 10년을 거치며 북한 이탈 주민들이 어떤 삶의 경로를 밟아왔는지 축적된 기간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북한 출신 청년들을 계속 보지 못할 것이다.
둘째, 많은 북한 출신 청년들이 자신의 고향을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때때로 무시와 차별, 동정을 경험하면서 탈북 배경 청소년, 청년들은 자신의 과거를 밝히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 스며들지 못하고 지원책에 의존해 연명하고 부유하는 부모를 보며 부끄러움과 무력함을 느끼고, 자신의 고향이나 가정 배경이 노출되어 편견 가득한 시선을 받을까 싶어 자신의 옛 시절을 철저하게 감추는 청년들도 많다. 출신 배경 하나만으로 자신을 재단하여 ‘너는 통일 선교의 주역’, ‘먼저 온 통일’이라고 치켜세우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탈북민 예배에 가지 않고 청년 대학부 예배에 나가고, 통일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고 자신의 취미에 맞는 소모임에 나가면서 그저 평범하고 자유로운 삶을 찾아 한국에 온 것이라 강조하는 청년들도 있다. 우리가 출신지만 특별히 강조하여 청소년, 청년을 보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북한 출신 청년들과 깊은 관계에까지 들어가는 구조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사례를 소개한다. 필자는 지난 8년간 남북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매월 한 권씩 책을 읽고 토론하는 독서 모임을 운영해 왔다. 이 모임에서는 남북한 배경에 매이지 않고 그저 독서에만 집중한다. 자기소개 없이 그저 책을 읽은 감상을 나누고 서로 책 내용과 해석을 두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책을 매개로 생각을 나누다 보면 오히려 자연스레 자신의 삶이 드러나고 서로의 인생이 더 깊숙이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매개체나 구조를 통하지 않고 그저 남북 출신지, 상호 통합에만 집중하여 직진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남북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독서 여행을 기획했었다. 행사를 마치고 나서 한 참가자가, ‘남북한 청년들이 만나는 귀한 자리였는데 가급적 독서토론 책도 남북 관계에 대한 도서로 선정하고, 여행 방문지 또한 통일을 생각하는 의미 있는 곳을 선택했다면 더 좋았겠다’고 의견을 주었다. 귀한 생각이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남북의 청년들이 함께 만나 분단과 통일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문학을 두고 삶을 토론하고, 자전거 동호회 활동을 같이하며 취미를 공유하고, 서로 자연스럽게 같은 위치에서 공통 관심사를 나누는 소통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북한 이탈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온 지 25년, 이제 한국 사회에서는 다양한 모습의 북한 출신 청년들이 존재한다. 부모를 따라 어렸을 때 한국에 왔던 북한 출신 어린이들은 겉으로 구분은 안 되지만 여전히 정체성 문제를 고민하는 청년으로 성장했다. 코로나 이전 입국했던 북한 청년들은 일반 국민과 동일하게 힘든 코로나 시기를 보내며 자신의 길을 찾고 분투하였다. 지금도 제2의 인생을 꿈꾸며 목숨 건 탈북과 한국행을 감행하는 청년들은 새로운 고민 속에 빠른 적응을 시도 중이다. 우리가 우리의 시선을 변화시키지 않고 고정된 프레임으로만 북한 이탈 청년을 보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 북한 출신 청년들은 멀어지고 보이지 않는다.
1) 2023년 6월 통일부 발표 기준으로 한국에 도착한 북한 이탈 주민은 총 33,898명이며, 이 중 30대 이하는 24,461명이다. (출처: 통일부 홈페이지 주요 사업 통계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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