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학교, 주일학교를 (비교적)합리적인 이성의 눈으로 바라보는 연구자들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을까. 기독교‘교육학’ 관점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주일학교의 문제점은 첫째, 교회학교의 교육과정이 디지털 시대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교회학교에 오거나, 올 것으로 기대되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에게 적합하지 않다. (본문 중)

신하영1)

 

교회학교를 이야기하는 여러 목소리‘들’

 

새로운 교회학교의 두 번째 이야기는 교회학교가 지금 처한 현실에 대해 다룬다.2) 교회학교의 현실을 다루는 데는 크게 네 관점 혹은 접근을 두었다. 교회학교는 교회 안에 있는 학교 혹은 교회가 담당하는 학교의 기능이라는 점에서 특정한 영역 혹은 공간으로 존재한다. 때문에 교회학교가 처한 현상적 특질에 주목하면, 학교를 바라보는 이들과 교회를 바라보는 이들의 관점을 빌려오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 글에서는 교회학교를 바라보는 네 주체 혹은 네 관점을 언론, 연구, 교회, 학생 당사자로 두었다. 이외에도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이 교회학교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많이 접하는 ‘큰 목소리’를 먼저 다루었다.

 

<그림 1>교회학교라는 현상을 둘러싼 주요한 목소리들

 

언론이 이야기하는 교회학교의 지금

 

언론은 교회학교를 어떻게 이야기할까. 언제부터 이야기했고, 얼마나 많이 자주 이야기하고 있을까. 물론 이때 언론은 사회 언론, 세속 언론과 기독교 언론으로 나누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 언론의 교회학교, 주일학교 관련 기사는 위기론 일색이다. 주로 ‘충격적’인 통계 자료를 보이며, 이를테면 2030년에는 대부분의 주일학교가 없어질 것이라 (최대한의)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언론 보도 사례>

○○뉴스, [기획] ② 주일학교 부흥…예산 늘리고, 교회와 가정 연계해야, 2021년 4월 보도

○○일보, “2030년에 주일학교의 90%가 사라질 것” 비관 전망, 2022년 2월 보도

○○신문, 통합 충격 예측, “한국 교회 주일학교, 2030년에 90% 사라질 수 있다”, 2021년 3월 보도

 

물론 이런 접근은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접근, 언사는 어쩐지 기시감이 든다. 이 목소리들이 인구 절벽 문제, 저출생을 다루는 한국 언론 전반의 논조와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몇 년 후면 지도에서 한국이 사라진다느니, 국가 경제의 엔진이 꺼질지도 모른다느니 대부분 아이들이 없다는 이야기는 ‘망국론’으로 이어진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적인 언사가 난무한다. 메시지가 힘이 들어가 있다.

 

흔히들 메시지와 메신저를 구별하라고 한다. 이 말은 자신이 선호하거나 불호하는 메신저로 인해서 메시지를 곡해하지 말라는 맥락에서 쓰인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역발상을 제안해 보고 싶다. 교회학교 절망편을 이야기하는 언론의 자료는 대부분 건조한 통계나, 교회학교를 직접 지도하기보다는 교회학교가 포함된 ‘교회’를 이끄는 담임 교역자, 교단의 유력 인사들에게서 나온다. 기독 언론들이 마이크를 쥐어 주고, 지면을 기꺼이 내어 주는 메신저들이다. 교회학교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어떤 존재들인지, 어떤 사람들이 교회학교에 여전히 아이를 보내는지, 어쩌다 더 이상 아이를 교회학교에 보내지 않게 된 이들은 누구인지 궁금해했어야 한다. 교회학교의 현상을 다루는 언론의 목소리 중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거나, 너무 작았다. 그저 숫자로 박제된 아이들의 규모만 남아 있다.

 

해당 글과 관련없는 이미지 입니다.

 

학계에서 이야기하는 교회학교의 현주소

 

교회학교는 기독교교육학이라는 분과 학문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연구 분야이다. 기독교교육학뿐 아니라 목양과 선교 여러 분야에서도 교회학교는 중요한 방편 혹은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 핵심적인 교회 내 기관 혹은 기능으로 여겨진다. 국내로 한정해서 정리하면, 교회학교 혹은 주일학교를 다룬 국내 학술 논문은 3천여 건이 넘고, 석사 및 박사학위 논문도 700여 건이 넘는다. 방대한 양의 학술적 논의가 진행되었음을 방증한다. 발행 연도의 스펙트럼도 넓다. 1970년대 초기 연구부터 시작해서 2023년에 기독교 계열의 대안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연구까지, 연구의 주제와 방법론도 다양하다.3)

 

학계에서 교회학교와 주일학교를 연구하는 이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고 참고하는 논문을 확인하면 다음과 같다. 가장 많이 발견되는 연구 간 연결고리, 공통된 주제어 노드(node)는 교육과정 개발에 관한 것이다. 학술적인 가치를 가지면서도 현장에서 효용을 가지는 실천 중심적인 연구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상당수의 연구는 교회학교 교사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있는지, 교사들을 위한 영성, 리더십 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탐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주요 연구 키워드 분포는 교회학교 활성화 방안에 대한 연구로 옮겨가고 있다.4) 기독교교육학 분야 연구자들이 교회 사역과 연구 분야에 동시에 몸담은 경우가 많다 보니 교계가 느끼는 위기의식이 연구 대상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논문 관계도 분석 결과-피인용 순>

교회학교 교사교육 비교분석 및 교사양성 교육과정 개발: 대한예수교 장로회 주요 세 교단을 중심으로

교회학교 유치부 교사양성 교육과정 개발 연구

예전적 기독교교육 연구: 예전적 상상력을 중심으로

전통화 모델을 활용한 교회학교 활성화에 관한 연구

교회학교 영아의 신앙교육을 위한 성경오감놀이 프로그램 모형 연구

 

교회학교, 주일학교를 (비교적)합리적인 이성의 눈으로 바라보는 연구자들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을까. 기독교‘교육학’ 관점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주일학교의 문제점은 첫째, 교회학교의 교육과정이 디지털 시대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교회학교에 오거나, 올 것으로 기대되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5)에게 적합하지 않다. 둘째, 교회학교의 교육 내용이 현대 사회의 변화와 가치를 반영하지 못해서 청소년과 어린이가 접하는 현실 세계와 간극이 너무 크다. 그리고 주일학교 교사들이 구사할 수 있는 교육 방식이 정규 학교에서 학생들이 경험하는 세속 교사의 교수법에 비해 제한적이고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들 연구에서는 빈번하게 세속학교, 교회 밖 학교 특히 한국의 공교육 학교 교육이 비교 대상으로 설정된다.

 

반면 ‘기독교’교육학 관점이라고 분리할 수 있는 연구들은 문제의 진단을 달리한다. 교회학교가 원천적으로 세속 교육과 구별되는 성경, 기독교 가치, 기독교 세계관을 교육의 내용으로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오히려 주일학교 교육이 형식화되고 중심을 잃은 것에 주목한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이상적인 주일학교의 모습은 현대적인 교육 방법론을 적용하되, 단순히 지식 전달의 장소가 아니라 신앙인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특히 이들이 제시하는 이상적 교사의 모습은 교수자(teacher)보다는 동반자(companion)의 모습에 가깝다. 동반자로서 주일학교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 성장하며 신앙 여정을 함께하는 교회 커뮤니티의 일원이다.6) 최근 교수법에서 장기적 학습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 기대하는 교사의 모습으로 제시되는 지식의 중재자, 촉진자(facilitator) 모델이 각광을 받는 것과는 분명 구별되는 지점이 있다.

 

교회 당사자의 목소리 1: 교역자

 

교회학교 현장 내부에서 고군분투하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빼놓을 수 없다. 바로 교역자들이다. 교육자는 물론 담임 교육자 여부, 전임 여부, 교육 부서 담당 여부에 따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다음 세대의 교육을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는 주요 이해 관계자들이다.

 

2022년 8월 전국의 교회 담임 목사 434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목회 환경과 목회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목회자들이 다음 세대 교육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교회학교와 가정과의 연계 교육’(48%)이었다. 그 밖에도 자녀 신앙 지도를 위한 부모 교육을 실시하거나 가정 예배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으로 교육자들의 우선순위가 나타났다.

 

출처: 목회데이터연구소, “기독교 통계(169호)-한국교회 목회자의 2023년도 목회 전망”, 2022. 11. 22.

 

1순위에서 3순위로 나타난, 교역자들의 교회학교 현실에 내린 ‘처방’은 앞서 언급한 연구자들의 처방과 사뭇 다르다. 연구에서 나타난 교육 콘텐츠와 프로그램 강화, 교사 교육 등에 대한 내용은 상대적으로 후순위에 머물렀다. 교역자들은 가정을 강조하고 있고, 이를 분석한 목회데이터연구소는 “교회→가정→학생의 삼각 연계”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교회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가정의 역할, 교회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서 다시 가정으로 ‘보낸’ 후의 지속에 관심을 가진다고도 할 수 있겠다.

 

마지막, 어쩌면 가장 중요한 당사자의 목소리를 기대하며

 

앞서 <그림 1>에서 제시했던 교회학교라는 현상을 둘러싼 네 관점 중에서 세 관점, 즉, 언론과 학계 그리고 교회 내 당사자들의 목소리들을 정리해 보았다. 기독교 언론이 이야기하는 위기론, 학계가 이야기하는 교육 내용과 방식의 개선, 혹은 교회학교 교사의 새 모델, 교회 내 교육자가 이야기하는 가정(부모)과 교회 간 메시지 통일의 중요성은 모두 각자의 정의(justice)와 치열한 현실 인식을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의 마지막 한 조각, 또 다른 당사자 어쩌면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교회‘학교’의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기회는 여전히 적고, 목소리는 턱없이 작다. 언론뿐 아니라 연구에서도 변화하는 교육과정 속, 변화하는 교사의 모습에 비해서 학생들의 ‘학습 경험’, ‘신앙의 성장 체험’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았다. 교역자들은 여전히 오롯한 영성을 지닌, 주체적 존재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어린이-청소년을 바라보기보다는 그들을 교회에 ‘보내는’ 그 뒤의 가정(부모)에 무게를 둔다. 교회학교 교사와 부교역자 역시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줄어든 교회 안 청장년층 중에서도 더 많은 헌신이 요구되지만, 충분한 지원은 따르지 않는다.

 

교회학교의 현실을 손에 잡히는 실재(reality)로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마지막 한 조각, 어쩌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는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모아져야 하고, 이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야 한다. 위기는 맞지만, 위기의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가 변화할 필요가 있다.

 

교회학교는 진공 상태로 존재할 수 없다. 소수의 기독교 대안학교 학생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동 청소년은 교회와 세속을 함께 경험하며 자라난다. 변화하는 세대는 ‘학습자 중심 교육’,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이 공교육의 기조로 자리 잡은 학교를 다닌다. 부모 세대와도 수평적이고 ‘친구 같은’ 관계를 구축하며 성장한다. 청장년 교사 세대도 마찬가지다. 영포티(Young 40s)부터 MZ세대에 이르기까지 지금의 청장년들은 자신이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대의, 거대한 의미 부여 구조로는 설득되거나 ‘동원’되지 않는다. 이들이 느끼는 희망과 절망, 불안과 기대를 들여다보기에 더 늦지 않았기를 바란다.

 


1) 세명대 교양대학 교육학 교수,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상임집행위원.

2) 첫 번째 글은 다음을 보라. 신하영, “<새로운 교회학교①> 교회 안 교육을 이야기하기”, 「좋은나무」, 2023. 4. 26.

3) 출처: 한국교육학술정보원>표제어 검색> “주일학교”, “교회학교”>학위논문/ 학술논문 검색 결과, 최종인 출 날짜: 2023. 09. 05.

4) 출처: 한국교육학술정보원 “SAM학술관계분석서비스” 활용도분석>피인용 순 “교회학교” 관련 논문 관계도 분석.

5) 디지털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세대로, 모국어를 사용하듯이 디지털 기기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디지털 환경에 적응할 필요가 없는 특정 세대를 의미함. 강승훈, “디지털 시대의 신인류,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s)”, 「LG경영연구원」, 2004. 8. 27.

6) Nikijuluw, N. P. (2022), “Sunday School Teachers’ Stewardship for Children’s Faith Growth in The Community of Shalom at XYZ Church in Tangerang”, EDULEAD: Journal of Christian Education and Leadership, 3(2), 182-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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