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수많은 사람이 사망하고 나서야 오펜하이머는 핵무기가 소련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합의에 의해 조심스럽게 관리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구체화한다. 오펜하이머의 고뇌가 사후적이었다는 것은 그 당시의 문제지만, 이는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우려 사항이다. 오늘날 많은 과학자와 공학자가 자신의 연구 개발 노력이 미치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충격에 상대적으로 무감하다. (본문 중)

손화철(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기술철학)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하되자 이미 패색이 짙었던 일본은 연합군에 항복했고, 그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었다. 우리나라에는 해방의 계기가 되었지만, 핵폭탄은 오늘날까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한 무기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그 핵폭탄을 만든 천재 과학자의 이야기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명성에 흑백과 컬러 화면을 번갈아 배치하는 특이한 편집, 실제 폭약을 터뜨려 재현한 핵폭탄 실험, 3시간의 상영 시간 등 주변 이야기도 많았지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과 함축적 대사의 맛을 느끼게 하는 좋은 영화였다. 그러나 포항에서의 마지막 상영일 밤에 텅 빈 영화관에서 나올 때의 느낌은 감동보다는 피로와 약간의 우울감이었다.

 

우선 이 영화는 오펜하이머라는 한 개인에게 초점을 맞출 것을 강요한다. 그는 천재 물리학자요 카리스마 있는 리더이면서 다소간의 여성 편력이 있었고, 고뇌하는 이상주의자요 애국자면서 매카시즘의 피해자였다. 영화는 이 모든 지점을 하나하나 들추면서 복잡하고도 기구한 한 인간의 생애와 그 내면을 보이려 애쓴다. 또, 핵폭탄의 원리와 제조 과정을 일반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최대치로 설명하고, 핵폭탄 개발을 목표로 하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위해 미국 뉴멕시코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 모여든 당대 최고 과학자들의 일상과 협력, 갈등의 일화를 나열한다. 영화의 상당 부분이 핵폭탄 투하로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냉전 상황에 할애된다. 오펜하이머는 핵폭탄을 국제 사회가 관리할 것을 주장하고 수소 폭탄 개발에 반대하다가 공산주의자로 몰려 고생한다.

 

문제는 이야기의 초점을 오펜하이머 개인의 경험과 생각, 고민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이 모든 것의 결과, 즉 수십만 명에 달하는 일본 민간인 살상의 극악함은 몇 마디 대사로 처리되고 만다는 점이다. 일본이 저지른 이전의 악행과 연합국의 승전을 빌미로 조용히 덮고 넘어간 민간인 살상이라는 전쟁 범죄는 이렇게 해서 다시 암묵적인 면죄부를 받는다. 물론, 핵폭탄 투하와 시체가 나뒹구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처참한 장면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오펜하이머라는 한 개인의 의미심장한 고뇌는 너무 무겁게 다루고, 수많은 핵폭탄 희생자의 목숨과 고통에는 눈감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일단 핵폭탄을 둘러싼 똑똑한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혹은 모르면 은근히 무시당하는 느낌을 들게 하는), 자기 잘난 맛에 살던 과학자들이 비밀 연구소에 모여 다투고 협력하면서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을 해내고야 마는 성공 스토리가 펼쳐지는 것이다. 물론 영화에는 물리학과 대량 살상 무기가 만나는 데 협조할 수 없다며 맨해튼 프로젝트에의 참여를 거부하는 절친한 친구와 일본에 핵폭탄이 투하된 후 밖에 나가 구토하는 과학자의 모습도 나온다. 하지만 이야기의 초점은 독일이 핵폭탄을 만들기 전에 먼저 핵폭탄을 만들어야 한다는 시대적인 절박감에 몰린 천재 과학자들의 노력에 맞춰진다.

 

영화 <오펜하이머> 스틸컷.

 

종전 직전 히틀러의 자살로 핵폭탄을 만들어야 하는 당위는 사라졌지만, 과학자들은 전쟁의 관성을 이길 수도, 이길 의사도 없었다. 프로젝트 처음에 군복을 입었던 오펜하이머가 과학자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다시 평복으로 갈아입는 장면이 있다. 그러나 핵폭탄 개발 후 정치인, 군인과 함께 앉아 일본에 폭탄 투하를 계획하면서 최대한의 희생자가 생기게 할 방안을 논의하는 장면은 그가 담당했던 역할의 애매성을 잘 보여 준다.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많은 과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나중에 노벨상을 받는 등 세계 과학계의 주역이 된 이 사람들은 당시에 자신들이 핵폭탄을 제조한 것이 일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 것이라 생각했던 듯하다. 핵폭탄의 투하를 결정한 것은 정치인들이니 살상의 책임은 면하고, 핵폭탄이 결과적으로 전쟁 종식을 불러온 것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입장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 정치인들이 투하를 결정한 것은 맞지만, 폭탄이 없었다면 투하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일본에서 수많은 사람이 사망하고 나서야 오펜하이머는 핵무기가 소련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합의에 의해 조심스럽게 관리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구체화한다. 오펜하이머의 고뇌가 사후적이었다는 것은 그 당시의 문제지만, 이는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우려 사항이다. 오늘날 많은 과학자와 공학자가 자신의 연구 개발 노력이 미치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충격에 상대적으로 무감하다. 첨단 기술의 시대가 계속되고 획기적인 기술 개발이 이어지면서 기술의 진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념을 정치적 탄압의 도구로 삼는 치졸한 술수의 희생양이 된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축이다. 관객은 핵폭탄을 생각하며 영화관에 들어가지만, 영화는 오펜하이머에게 공산주의자의 누명을 씌우려 했던 그 시절의 정치 공작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독일과 일본을 염두에 두고 핵폭탄을 제작했던 맨해튼 프로젝트의 과학자들과 달리 미국 당국은 당시부터 이미 소련과의 대립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그것은 현실이 된다. 오펜하이머는 당대의 많은 지식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공산주의 이론에 매력을 느끼고 공산주의자와 가까이 교류했다(그의 부인도 한때 공산당원이었다). 그런데 전쟁 후 이것이 빌미가 되어 원자력 위원회의 내부 청문회에서 원자력 비밀 취급 인가 갱신을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이 청문회의 녹취록이 나중에 공개되어 이 영화에 반영되었는데, 오펜하이머와 함께하던 이들 중 몇몇이 자기의 이해관계와 입장에 따라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는 이 사건을 당시 원자력 위원회 의장이었던 루이스 스트로스라는 정치인의 사적인 악감정과 긴밀히 결부시키지만, 당시 미국을 지배하던 소위 매카시 열풍의 영향이 더 컸을 것이다. 문제는 그 70년 전의 이야기가 오늘날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념의 이름으로 생각이 다른 이들을 공격하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에서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가 오펜하이머에게 “당신은 이제 미국의 프로메테우스가 된 것”이라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름대로 선한 의지를 가지고 핵폭탄을 만들었으나 엄청난 고뇌와 탄압을 경험해야 했던 오펜하이머에게 어울리는 별명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사람에게 신의 불을 훔쳐 가져다줌으로써 문명을 탄생하게 했지만, 그 죄의 대가로 오랫동안 고문의 고통을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의 행위가 인류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 그의 결단이 일회적이었으며 자기도 예상한 형벌을 받았다는 점에서 그 비유는 적절하지 않다. 오펜하이머는 번영이 아닌 멸망의 도구를 인류에게 소개했고, 그가 더 많이 고민해야 했던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은 지금도 모든 과학자에게 계속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펜하이머가 자기를 고용한 이들에게 받았던 비난과 탄압이 핵폭탄을 만들라고 종용했던 권력자들에게서 나왔다는 사실도 프로메테우스의 경우와는 궤를 달리한다.

 

그리하여 영화 <오펜하이머>는 가장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할 것 같은 과학기술이 복잡다단한 인간사에서 한 치도 떨어져 있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교실에서 논하던 이론이 전쟁의 광기에 섞여 민간인 살상에 동원되고,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자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되며, 눈을 감든 말든 야비한 정치적 술수에 어김없이 노출된다는 답답하고도 씁쓸한 현실. 첨단 기술 사회의 현실을 드러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하면서 계속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훌륭하다. 그러나 영화가 적나라한 현실을 보이는 것을 좋아할지는 취향 문제다. 그냥 권선징악의 폭력 영화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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