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는 북한 정부와 아무런 상관도 없다. 항일 무장투쟁을 한창 하던 시기 그는 민족주의 계열이었으며, 오히려 1921년 러시아 아무르에서 발생한 ‘자유시사변’ 때 공산주의자들의 공격을 받고 많은 동지와 부하를 잃기도 했다. (본문 중)
류대영(한동대 교수, 역사학)
“이번 정권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일본에서 독립한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되는 모양이야.” 가깝게 지내는 직장 동료가 점심을 같이 먹으러 가면서 얼마 전 한 말이다. 안동 출신으로 자신이 독립유공자들의 후손인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분인데, 그는 이번 정부와 여권 인사들이 그동안 일본과 관련하여 한 일련의 언행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표현하곤 했다. 이번 정부 인사들은 우리나라가 독립하지 않고 그대로 일본의 일부분이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라는 그의 말은 마침내 그가 도달한 결론이다.
나는 내 동료가 한 말의 뜻에는 전적으로 동의했지만, 약간 지나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된 사람이 과거 어떤 보수 유튜브 채널에서 한 발언을 언론보도를 통해 들으면서 내 동료의 말이 전혀 과장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가 한 발언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아니 예를 들어서, 대한제국이 존속했다고 해서 일제보다 행복했다고 우리가 확신할 수 있습니까?” 물론 이것 이외에도 그가 그동안 했던 많은 발언이 문제가 되었지만, 이 정도일지는 정말 몰랐다. 나의 무지는 이 정부 들어서 티브이 뉴스를 아예 끊고 살아온 탓도 있겠지만, 그의 발언이 보수적 정부라 할지라도 국방장관 입에서 나오리라고 상식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그를 국방장관 후보로 추천한 사람들, 인사검증 책임자인 법무부 장관,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를 임명한 대통령이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보훈부가 출범하면서 한 일련의 일들은 윤석열 정부의 역사관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좋은 사례다. 예를 들어, 국가보훈부는 백선엽과 관련하여 대전현충원에 기록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백선엽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식 판정한 인물이다. 그는 일본의 식민국가인 만주국 중앙육군훈련처를 졸업하고 장교가 되어 항일 무장세력을 ‘토벌’하기 위해 설치한 간도특설대에서 장교로 복무했다. 그는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라고 회고록에서 인정하기도 했다. 이번에 보훈부가 백선엽 관련 과거 진상규명위원회 결정을 뒤엎은 것은 그런 정도의 부일행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백선엽 관련 결정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그리고 이회영의 흉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한 일이다. 홍범도, 김좌진 등은 항일독립전쟁 지도자들이고, 이회영은 육군사관학교의 역사적 전신으로 평가되는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민족지사다. 이분들의 흉상을 육사에 모신 것은 2018년 삼일운동 99주년을 맞아서였다. 참으로 충격적인 것은, 이분들 흉상 자리에 백선엽 흉상을 대신 세우는 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정부의 이런 결정은 많은 국민을 분노케 했고, 학계와 언론으로부터 크게 비판받았다. 심지어 중국의 한 관영신문이 “항일독립투사를 홀대하는 나라는 어디인가?”라며 비웃는 비판 기사를 싣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항일민족운동에 대한 정부의 생각은 이 일련의 사건이 일으킨 논란 가운데 나온 국방부 설명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국방부는 육사에서 홍범도 흉상을 철거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그의 ‘공산주의 이력’을 이유로 들었다. 즉 ‘소련공산당’에 가입하고 활동한 적 있는 그가 육사의 전통과 정체성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홍범도가 좌익계 민족운동단체에서 일했고 볼셰비키에 입당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강점 시절 사회·공산주의 단체에 가입한 분들은 독립운동이 그 목적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운형, 이동휘, 김규면, 김단야, 양명 같은 분들이 대표적인데, 과거 우리 정부도 그런 점을 인지하고 그분들에게 건국공로훈장을 수여했다. 그런 점에서 주세죽이 건국훈장을 받은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주세죽은 한국 공산주의운동사의 가장 큰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박헌영의 부인이며 동지였다. 물론 사회·공산주의자로 항일독립운동을 한 모든 사람을 독립유공자로 대우한 것은 아니다. 박헌영, 김원봉, 김두봉, 김창준 같은 탁월한 좌익계 항일운동가들은 독립유공자 서훈에서 제외되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이 북한 정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분단 상황에서 아무리 혁혁한 항일민족운동을 했더라도 북한 정권에 참여한 사람들까지 우리 정부가 건국공로훈장을 수여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홍범도는 북한 정부와 아무런 상관도 없다. 항일무장투쟁을 한창 하던 시기 그는 민족주의계열이었으며, 오히려 1921년 러시아 아무르에서 발생한 ‘자유시사변’ 때 공산주의자들의 공격을 받고 많은 동지와 부하를 잃기도 했다. 그가 왜 볼셰비키에 가입했는지, 그리고 가입한 이후 무슨 일을 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연해주 지역 한인 지도자였던 그가 그 지역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볼셰비키에 가입하는 것이 불가피했을 것이고, 과거 그의 이력을 볼 때 항일민족운동을 계속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는 고려인 강제이주정책 때문에 1937년 카자흐스탄 지역으로 강제이주 되어 그곳에서 살다가 사망했다.
정부는 왜 홍범도는 육사의 역사와 정통성에 어울리지 않고 백선엽이 육사 생도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일까? 이 질문과 관련하여 나는 정부 태도에서 두 가지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공산주의에 대한 극도의 적개심이다. 공산주의 이력 여부는 이념적 순도를 판별하는 정교한 혈액검사와 같아서 잠시라도 공산주의와 접촉했던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 불순한 성분이 검출된다고 보는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항일민족운동가라 할지라도 생애의 어느 시기에 어떤 식으로든 공산주의와 관련이 있다면 그는 문제가 있다고 판명된다. 이것은 “용공”이나 “빨갱이” 같은 말을 마구 사용했던 과거 권위주의 정부들을 떠올리게 한다. 극단적 반공주의가 지배하던 시절 이런 용어는 공포와 반감을 즉시 불러왔고, 따라서 정치·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반대자나 경쟁자를 공격하기 위해서 즐겨 사용되었다. “용공”이나 “빨갱이”로 지목된 사람과 단체는 사회적으로 추방되었고, 정부로부터 그런 판정을 받은 경우에는 극심한 물리적 박해를 받곤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반대세력을 공격하기 위해 즐겨 사용하는 “친북”이나 “반국가 세력”이라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공산주의에 대한 이번 정부의 예민한 적개심과 쌍을 이루는 것이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관용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친북은 절대 안 되지만 친일은 괜찮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를 위해 일했다면 강점기의 친일부역 행위는 문제 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얼핏 포용적인 태도로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의 역사적·헌법적 정통성에 정면으로 반하는 태도다. 무엇보다 이런 태도는 대한민국 정부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한 강점기에 진행된 수많은 항일독립운동과 분리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낸다. 현 정부와 여권 인사들이 1948년 8월에 시작된 이승만 정부를 ‘건국’의 시점으로 특정하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대한민국과 항일민족운동을 분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사회·공산주의와 대한민국을 완전히 분리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임시정부를 비롯하여 강점기의 항일민족운동은 그 자체가 넓은 의미의 좌우합작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좌우연합 없이는 제대로 된 항일독립운동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대한민국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분리시키면 좌우연합과 분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 대한민국을 항일독립운동과 분리하면 강점기의 친일부역 이력이 문제되지 않을 수 있다. 현 정부와 그 지지자들이 모범으로 삼고자 하는 인물이나 혈연적·사상적 선조 가운데는 친일부역 전력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다. 그들의 영웅인 박정희가 대표적인 예다. 소학교 교사이던 박정희가 만주(일본)군 장교를 양성하는 만주국 육군군관학교에 지원했다가 낙방하자, “조국(일본)을 위해”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는 편지를 담은 봉투에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이라는 혈서를 써서 다시 지원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아닌가. 따라서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군 장교가 되어 항일무장세력을 토벌하기 위해 싸운 경력 정도는 아예 친일부역 전력에서 지워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 항일무장세력 속에 좌익이 포함되어 있었다면 그런 ‘역사세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셈이 된다.
공산주의와 일본강점기에 대한 이런 관점은 그동안 윤석열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한미일 군사동맹 문제, 후쿠시마 오염수 배출 문제, 야당이나 노동운동을 대하는 태도 등에서 보여준 이해하기 어려운 자세의 이면을 잘 보여준다. 처음에는 국민의 눈치를 보며 조금씩 드러내던 속내가 점점 더 담대해지더니 급기야 조선(대한)을 부정하고 강점기를 긍정하는 사람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했다. 일본 강점기를 긍정한 발언은 그 자체도 충격적이거니와 그런 말을 공개적으로 한 사람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했다는 사실이 더 믿기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친일반민족적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는 사람, 즉 국가의 역사적·헌법적 정체성을 부인하는 사람이 국방장관이 되는 시대에 살게 된 것인가? 진정 이 정부는 일본강점기가 조선보다 더 행복했던 시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어쩌다 반공은 친일마저 덮어주는 가치가 되었는가? 기독 지성들은 도대체 이 시대를 어떻게 통과해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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