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신학은 이런 구체적인 시대적 상황에서 태동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고통받는 피조물의 처절한 신음에서 출발한 것이다. 성서의 하나님은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이들의 삶을 결코 묵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깊은 연민을 느끼고 응답하며 심지어 개입하는 분으로 묘사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피조물들의 신음에 반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본문 중)

김기중(목사, 조직신학자)

 

고통받는 동물들의 현실

 

2018년 이스라엘 바이츠만 과학연구소와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의 공동 연구자들이 “지구 생물량 분포”(The Biomass Distribution on Earth)라는 논문을 미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했다.1) 연구원들은 생물의 탄소량을 이용하여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들의 생물량(biomass)을 계산했다. 연구 결과, 현재 육지에 사는 포유류 중 인간이 차지하는 비율이 36%였고, 그 인간을 먹여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가축은 60%를 차지했다.2) 그렇다면 야생 동물은 몇 퍼센트였을까? 계산은 어렵지 않다. 고작 4%인 셈이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들어 왔던 코끼리, 늑대, 여우, 곰, 코뿔소, 등 야생 동물들이 인간과 가축에 비해 매우 적은 고작 4% 수준인 것이다. 조류도 마찬가지다. 70%가 인간이 키우는 닭이나 오리 같은 가축이고, 야생 조류는 30%밖에 되지 않는다. 현생 인류의 출현 이후 육지 동물 포유류의 생물량은 무려 1/7로 줄어들었다.

 

야생 포유류의 생물량이나 생물 다양성 감소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수많은 가축들이 말할 수 없는 고통 중에 있다는 사실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히브리대학교 교수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현대의 공장식 축산이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범죄”라고 단언한다.3) 현재 공장식 축산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은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기는커녕 주어진 삶을 다 살아 내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오로지 인간의 입맛과 수익을 위해 기계처럼 생산되고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가축화된 포유류는 역사상 가장 번성했을지 몰라도 가장 비참한 동물이 되고 말았다. 농장에서 살아가지 않더라도 고통스러운 건 피차일반이다. 잔혹한 실험을 겪은 후 안락사되거나, 오락적 여흥 거리를 위해 동물원에 평생 갇혀 있거나,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밀렵으로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

 

동물신학은 이런 구체적인 시대적 상황에서 태동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고통받는 피조물의 처절한 신음에서 출발한 것이다. 성서의 하나님은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이들의 삶을 결코 묵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깊은 연민을 느끼고 응답하며 심지어 개입하는 분으로 묘사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피조물들의 신음에 반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당신의 손으로 창조하고 직접 언약까지 맺은 사랑의 관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서구의 철학과 신학은 동물의 문제를 쉽게 간과해 왔다. 13세기 서구의 지배적인 사상의 틀을 형성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동물에게 이성이나 정신이 없기에 그들을 마음껏 지배할 권리가 인간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상은 수 세기 동안 기독교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근대에 이르러는 동물이 감각 혹은 지각 자체가 없다는 주장까지도 제기되었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네 데카르트도 동물은 사고하지 않는 그저 정교하게 만들어진 기계일 뿐이라고 선언했다. 물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처럼 동물을 인간의 형제이자 자매라 칭하며 자연과 동물을 보호하고 사랑할 의무가 인간에게 있다고 설파한 성인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이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며 주류 기독교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고통받는 동물들을 위한 앤드류 린지의 신학적 도전

 

다행히 1960년대 이후 서구권에서 동물의 처우에 대한 철학적, 신학적, 윤리적 성찰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전례 없는 인간의 착취와 억압, 잔인성을 더 이상 묵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동물이 같이 살아가야 할 동료로서 다시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 성공회 신부이자 옥스퍼드 동물윤리센터 (Oxford Centre for Animal Ethics)의 설립자인 앤드류 린지(Andrew Linzey)는 현대 신학에서 동물신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린지는 호주 출신의 공리주의 철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의 철학 교수였던 톰 리건(Tom Regan)과 함께 동물에 대한 인간의 학대와 착취에 반대하는 강력한 윤리적, 철학적, 성서적 근거를 고찰해 왔다. 오랜 시간에 걸쳐 서구의 사상 속에 형성되어 온 도구주의적 관점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고, 동물을 그저 인간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치부하는 왜곡된 시각을 비판하고 저항한 것이다.

 

린지는 싱어의 공리주의 입장을 비판하고, 톰 리건과 협력하면서 동물권 신학을 전개해 왔다. 동물권이란 인간에게 인권이라는 기본권이 있듯이 동물에게도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만이 권리 개념을 지닐 수 있다는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로부터의 벗어나는 것이며, 생명을 유지하고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권리 개념이 반드시 요구된다는 주장이다. 그렇기에 리건도 린지도 동물은 상품, 기계, 노예와 같은 수단이 아닌 고유적 가치를 지닌 삶의 주체로서, 풍성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4) 다만 린지는 기독교 신학자로서 동물권(animal rights)이란 용어 대신에 ‘신적 권리’(theos-rights)라는 용어를 채택한다.5) 신적 권리란 말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복잡한 뜻은 아니다. 쉽게 말해 그 어떤 인간도 동물에 대한 완전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피조물에 대한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영으로 충만하고 피와 살로 이루어진 피조물은 하나님께 고유한 가치를 지닌 대상이며 결국 동물은 인간에게 도덕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6)

 

그러나 린지는 권리 담론에서 머무르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최악의 상황을 막아 내고 어느 정도 살 권리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권리론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개념이지만, 권리 개념 자체가 기독교 신앙이 추구하는 사랑과 희생의 정신을 증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린지는 가장 약하고 취약한 존재들에게 도덕적 우선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관대함의 원칙’(the principle of generosity)을 이야기한다. 관대함의 원칙은 도덕적 경계 밖에 있는 이들이 인간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님의 피조물이기에 더 큰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피터 싱어의 ‘이익 동등 고려의 원칙’(the principle of equal consideration of interest)과 엄연히 다르다. 린지는 평등의 패러다임이 아닌 관용의 패러다임을 추구한다. 예수의 주권이 섬김으로 드러나듯 인간도 동물을 위한 사랑과 희생의 섬김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린지의 관대함의 원칙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기독교 역사의 오랜 전통이라 할 수 있다. 칼 바르트 신학의 핵심 부분이기도 하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the preferential option for the poor)을 표방하는 해방신학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동료 피조물과 평화를 이루기

 

동물신학의 기틀을 마련해 온 앤드류 린지의 신학적 작업은 지금도 유효하지만 그의 책 『동물신학』(Animal theology)이 나온 지도 거의 25년이 지났다. 이화여대 장윤재 교수가 번역한 『동물신학의 탐구』(Creatures of the same God)도 이제는 꽤 널리 알려진 듯하다. 하지만 동물의 참혹한 현실은 결코 개선되지 않았다. 최근 한국 사회와 교회가 그나마 이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는 생태계 파괴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인간에게 돌아오며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음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피해가 돌아오기 때문에 동물과 자연 세계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고는 너무나 이기적이다. 우리는 동물이 ‘물건’(things)이 아닌, 같은 하나님의 동료 피조물임을 다시 깨달아야 한다. 린지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물과 평화를 이루는 것이 인간중심주의적 신학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여는 통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동물과 평화를 이루려는 시도는 우리가 먹는 음식, 입는 옷, 사는 제품, 생활 방식마저도 바꿔야 하는 아주 불편한 선택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동물의 권익을 위해 사회적 인식과 법 제도를 바꾸는 것은 더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사야서 11장이 증언하듯,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살고 암소와 곰이 벗이 되며 어린아이가 그들을 이끄는’ 세상은 결국 그리스도인들이 지향하고 장차 맞이해야 할 세상임이 틀림없다. 린지가 30여 년의 세월 동안 동물신학의 기초를 닦아 놓았다면 이제 그의 관심은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1) Bar-On, Y. M., Philips, R. & Milo, R. 2018. The biomass distribution on Earth.

2) 주로 소와 돼지를 말함.

3) Harari, Y.N. 2015. Industrial farming is one of the worst crimes in history. The Guardian.

4) Regan, T. The case for animal rights. (UCP, 1983: 243-48).

5) Linzey, A. Creatures of the same God (Lantern Books, 2009: 56).

6) Linzey, A. Christianity and the rights of animals. (Wipf & Stock. 2016: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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