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성 선생은 우리말에 맞는 점자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일본인 몰래 ‘조선어점자연구회’를 만들어 한글 점자를 만들고자 힘썼다. 당시는 일본인들이 조선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던 시절이라 일본인들의 눈을 피해야 했다. 7년간의 연구와 노력 끝에 마침내 여섯 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한글 점자가 만들어졌다. (본문 중)

최지혜(바람숲그림책도서관 관장)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열림과 닫힘, 그리고 각 층수를 알려주는 숫자를 보면 글과 숫자 옆에 오돌토돌 튀어나온 점들이 있다. 보통은 무심히 지나쳐 버리지만 숫자를 막 알아가는 아이들은 이 점이 뭐냐고 묻곤 한다. 바로 시각 장애인을 위한 언어인 점자이다. 나라마다 그 나라의 언어가 있듯이 점자도 각 나라의 언어 특징에 맞게 다르다. 우리나라도 우리만의 고유한 점자를 가지고 있다.

 

지난 11월 4일은 ‘한글 점자의 날’이었다. 우리나라의 한글 점자는 누가 만들었을까? 바로 박두성이라는 분이다. 그는 1926년 11월 4일 시각 장애인을 위한 우리 글로 된 한글 점자를 ‘훈맹정음’이라고 명명하고 널리 반포했다. 이날은 480년 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날이기도 하다.

 

한글 점자를 창안하신 박두성 선생은 어떤 분일까? 박두성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해 일본의 지배를 받던 시절에 삶을 사셨다(1888. 4. 26.~1963. 8. 25.). 박두성 선생은 강화도 서북쪽에 있는 교동도라는 섬에서 태어났다. 섬과 섬을 이은 교동도 다리를 지나면서 왼쪽 바다를 향해 가다 보면 옛 교동교회가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교동교회 가까이에 있는 야트막한 산 아래 그의 집이 있었으며, 그의 집안은 신실한 기독교 집안으로 박두성 선생은 교동교회에서 봉사하며 성실하게 유년 생활을 보냈다.

 

어른이 되어 초등학교 교사가 된 박두성 선생은 조선총독부 제생원으로 발령을 받아 가게 되면서 평생을 시각 장애인을 위한 삶을 살게 된다. 그가 발령받은 제생원은 일본인들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면서 서울에 만든 시각 장애인 학교인데, 그 당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한국인이었으나 일본 교사가 일본 점자를 가르쳤다. 앞이 안 보이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가기가 힘든데 그곳의 학생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일본어로 된 일본 점자를 배우고 있었으니, 박두성 선생이 보기에 안타깝고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박두성 선생은 그런 상황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모국어를 가르치지 않으면 이중의 불구가 될 텐데, 눈먼 아이들이 벙어리까지 되란 말인가? 이 아이들이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우리 한글 점자가 필요해!

 

박두성 선생은 우리말에 맞는 점자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일본인 몰래 ‘조선어점자연구회’를 만들어 한글 점자를 만들고자 힘썼다. 당시는 일본인들이 조선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던 시절이라 일본인들의 눈을 피해야 했다. 7년간의 연구와 노력 끝에 마침내 여섯 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한글 점자가 만들어졌다.

 

그는 점자는 누구나 배우기 쉬워야 하고, 가능한 점의 개수가 적고, 글자끼리 서로 헷갈리지 않아야 됨을 염두에 두고 오랜 연구 끝에 한글 점자를 창안한 것이다. 훈맹정음은 ‘눈먼 이들을 위한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이처럼 훈맹정음은 우리 한글의 뿌리를 살려서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6점식 점자로 여섯 개의 점은 가로 2개, 세로 3개로 이루어져 있다. 여섯 개의 점 가운데 어떤 위치에 있는 점이 볼록 튀어나왔느냐로 글자를 구분하게 되어 있다.

 

훈맹정음을 만든 후에도 박두성 선생은 낮에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꾸준히 점자로 된 책을 만들었다. 박두성 선생은 시각 장애인도 보통 사람들처럼 문화도 누리고 밝고 맑은 삶을 살기를 바랐다. 그는 앞이 안 보이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공부를 많이 해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라. 눈뜬 사람보다 행동이 똑발라서 그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라.

 

박두성 선생의 훌륭한 업적은 무엇보다도 신약성경을 점자로 만든 일일 것이다. 마음이 우울하여 힘들어하는 시각 장애인들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따스하게 보듬어 주는 일이 그가 꼭 해야 할 소명인 것처럼, 오랜 세월(무려 10년이나 걸렸다) 신약성경 점자책을 만들었다. 이러한 박두성 선생의 끈질긴 노력으로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은 마음에 빛을 안았고 당당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박두성 선생은 본인은 잘 보면서 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어떻게 평생을 한결같이 살 수 있었을까 생각하며 존경의 마음으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누구나 쉽게 갈 수 없는 길을 굳세고 끈질기게 걸었던 박두성 선생께 박수를 보낸다.

 

최지혜 글, 엄정원 그림, 『훈맹정음 할아버지 박두성』(천개의 바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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