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노동자는 기계인가 사람인가
기윤실 좋은 사회 포럼 “불의한 제도에 관심 없는 이웃 사랑은 가짜”
[뉴스앤조이-엄태빈 기자]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공동대표 정병오·정현구·조성돈·조주희)이 12월 12일 서울 동대문구 기윤실 사무실에서 좋은 사회 포럼을 열고, 이주민이 계속 늘어나는 다문화 사회 속에서 한국교회가 이주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논의했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인구 감소에 대비해 2024년에만 외국인 16만 5000명을 고용하겠다며, 지속적으로 외국인 노동 인력 규모를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법무부는 ‘인구 재앙’을 막고 외국인 노동 시장의 ‘컨트롤타워’인 출입국·이민관리청(이민청) 신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발제자로 나선 김혜령 교수(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는 정부가 이주 노동자의 권리와 처우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필요한 외국인만 판단해 받아들이고, 불법 체류자를 더 강력히 단속하는 등 정부가 관리하고 통제하겠다”고 한 것은 이주 노동자들의 존엄성을 무시한 채, ‘국익’만을 따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주민 노동자 환대의 윤리적 전략’으로 발제한 김혜령 교수는 먼저 이주 노동자에게 적용하고 있는 고용허가제라는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현재 이주 노동자들은 노동할 수 있는 장소조차 고를 수 없는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 이 사업장 변경 제한 정책은 국내외 인권 기구로부터 폐지를 권고받아 왔다. 그러나 외국인력정책위원회(방문규 위원장)는 7월 5일 지역 소멸 위기를 이유로 ‘지역 이동’까지 제한했다. 이에 이주민 인권 단체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김혜령 교수는 ‘어느 누구의 삶도 임시적으로 지속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먼저 공유돼야 이주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을 받거나 비닐하우스에서 살지 않아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이주 노동자들이 사회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조사와 허위 정보를 해소하는 연구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주 노동자의 노동력과 재생산력, 소비력 측면을 강조한다면 인구 문제로 위기인 우리 사회에 환영받는 존재가 될 거라 본다. 또한 이주민에 대한 막연한 위기감과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데이터들이 제공돼야 한다. ‘일자리가 부족해진다’, ‘이주민이 범죄를 많이 저지른다’는 거짓 정보와 편견이, 이주민 범죄율이 높지 않다는 실제 데이터 등 바른 정보로 수정돼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교회의 역할도 언급했다. “현실적으로 이주 노동자를 향한 ‘무조건적 환대’가 어려울 수 있지만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 본 기독교인이 이주 노동자 문제에 앞장서야 한다”며 “끊임없이 고통받는 사람이 생겨나는 불의한 제도에 관심 없는 이웃 사랑은 가짜다. 약자에게 가장 유리한 합의를 할 수 있게 수준을 높여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주노동자노동조합에서 수석부위원장을 맡고 있고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등 여러 영화를 연출한 섹알마문 감독이 ‘이주 노동자의 실태와 과제’를 주제로 발제했다. 그는 1998년 부모와 함께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이민을 왔다. 본국에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었지만 그저 방글라데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섹알마문 감독은 ‘이주민들은 무조건 돈 때문에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들을 차별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섹알마문 감독은 “대한민국은 이주 노동자를 사람이 아닌 기계로 생각한다. 차별은 이주 노동자들이 가난해서 이주한다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이주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을 주는 것도 ‘가난한 나라에서 왔으니 이만큼만 주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에 기반한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살고 싶고, 그래서 이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허가제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아직도 사업주 동의 없이는 회사를 바꿀 수 없다. 문제가 있으면 말하고 다양한 요구를 할 수 있어야 되는데, 할 수가 없는 구조다. 어렵게 사업장 변경을 신청해도 3개월 내 일을 구하지 못하면 비자를 잃는다. 이주 노동자의 임금 체불은 계속 발생하고 기숙사도 매우 열악하다. 사업주가 숙소를 제공할 의무는 없지만 처음 입국하는 이주 노동자가 방을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수십 년 전부터 문제가 제기됐는데, 결국 2020년 포천 비닐하우스에서 살던 캄보디아 노동자 속헹 씨가 영하 20도의 날씨에 사망했다”고 말했다.
섹알마문 감독은 고용허가제를 하루빨리 철폐해야 하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다만 그 과정 중 교회가 나서 이주 노동자들을 환대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달라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 퇴직금을 못 받아서 누군가 대신 나서 줬을 때, 내가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있음을 느끼고 그제서야 숨 쉴 수 있었다. 이주 노동자들에게 한국인 친구 한 명만 있어도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이주 노동자는 언어와 출신국이 다를 뿐 같은 노동자다. 이주 노동자들에게 먼저 손 내밀고 친구가 되어 달라”고 말했다.
기윤실 홍천행 간사도 “한국인 친구 한 명이 있는 게 이주 노동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이주 노동자인 친구가 일하다가 6~7m에서 떨어져 허리뼈가 부러졌는데 산재를 안 해 줘서 나에게 연락을 했다. 절대 안 해 주겠다던 사업주가 주변에 한국인이 있다는 걸 알자마자 산채 처리를 해 줬다”고 말했다.
기윤실 좋은사회운동본부장 이상민 변호사(법무법인 에셀)는 “요즘 한국에는 이주 노동자가 굉장히 많다. 특히 농촌은 이주 노동자가 없으면 일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들은 한국에서 그만큼의 대우를 못 받고 있다. 예수의 삶을 볼 때 기독교는 누구보다도 나그네의 삶을 환대해야 하는데 사회의 다른 어떤 집단보다도 이주민에게 적대적이고 차가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에 반성하게 된다”며 참석자들에게 앞으로 약자를 위한 정의 실천을 함께하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