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은 주일학교 교사인 내가 몇몇 학생과 교감할 수 있는 희귀하고도 소중한 접점이다. 같이 <빌드업>을 보는 학생에게 지금까지 쓴 얘기를 몇 문장으로 간추려 카톡으로 ‘간증’했더니 평소보다 훨씬 긴 (어떤 답변에 비하면 정확히 여덟 배나 긴) 답변이 돌아왔다. (본문 중)
홍종락(작가, 번역가)
얼마 전, 심각한 위기가 닥쳤다. 평소 중요하게 생각하던 자립심이나 독립적 삶의 자세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절박한 기도가 터져 나왔다. 도움이 필요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경지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르지만, 나로서는 그 경지에 가장 근접한 듯한 기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일을 하다가도 틈틈이, 뭔가에 몰입하던 상태에서 벗어날 때면 어느새 어김없이 길을 보여 달라고, 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으니까.
그 와중에도 일상은 꾸려갔다. 나의 일상에는 웹툰 감상도 들어 있다. 어릴 때부터 줄곧 만화는 내 삶의 일부였으니, 시대의 변화와 함께 웹툰이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한편의 웹툰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웹툰의 제목은 <빌드업>. 주인공 강마루는 통통한 몸에 빵셔틀에 시달리는 ‘루저’였지만, 축구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품고 있었다. 오랜 괴롭힘과 잦은 빵셔틀 과정에서 익힌 폭넓은 시야와 상황 판단력, 신속한 움직임에다 꾸준한 드리블 연습으로 마루의 축구 내공은 상당한 수준에 있었다(이런 설정은 무협지와 비슷하다).
마루가 여러 난관을 뚫고 축구부에 들어가면서부터 만화의 매력과 재미는 빛을 발한다. 작품의 전체적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내 눈을 사로잡은 장면으로 넘어가 보자. 마루가 속한 하자고는 최강팀 세운고와 대결 중이다. 여러 강팀을 이기고 올라온 하자고였지만 세운고의 전력은 압도적이었다. 하자고의 공격 시도가 번번이 막히고 선수들은 고전을 면치 못한다.
마루는 벽 앞에 선 느낌을 받는다. 옆으로도 위로도 끝이 보이지 않는 벽이다. 한 주 전, 그런 벽 앞에서 두 손을 대고 머리를 숙이는 마루의 뒷모습이 마지막 컷이었다. 벽에 직면한 느낌. 앞이 꽉 막혀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상황. 내 모습 같았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올라온 만화는 마루가 어릴 때 비슷한 벽에 부딪혔던 일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코찔찔이’ 마루는 레고로 집짓기를 하다가 절망했던 기억이 있다. 어린이집 다른 친구들은 어렵지 않게 해냈는데, 마루는 도무지 잘 되지가 않았다. 집에 가져와서 만들어 보려 했지만 안 되기는 마찬가지. 결국 마루는 레고 조각들을 집어던지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빠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본다. 레고로 집을 만들 수가 없다고, 친구들은 쉽게 해냈는데 자기는 못 해서 속상하다고 대답한다. 아빠는 마루가 잘하는 다른 것들을 떠올리게 해주며 격려한다. 그러고 난 뒤 잘 못하는 일을 만날 때는 기뻐해야 한다고, 이제 그것까지 잘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거라고 말해 준다.
그리고 만화는 다시 벽 앞의 장면으로 돌아와 고개를 숙인 마루의 얼굴을 보여 준다. 그런데 뜻밖에도 마루의 얼굴은 절망과 눈물로 일그러져 있지 않다. 오히려 기대에 찬 표정이다. 그런 마루의 모습 옆에 아빠의 말이 큰 글씨로 찍힌다. “벽을 만났을 땐 기뻐해도 좋아. 다음 단계로 올라설 때가 왔다는 소리니까.” 마루는 씨익 웃는다. 그리고 마루의 앞에 있던 벽이 마치 계단처럼 구부러지는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마루가 말한다. “가자, 다음 단계로.”
물론 상황을 다르게 본다고 해서 문제가 별안간 술술 풀리지는 않는다. 세운고는 정말 강하니까. 마루가 다시 수비에 완전히 막혀 쩔쩔맬 즈음, 레고 집 만들기의 난관을 어떻게 풀어냈는지 보여 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마루는 자존심을 꺾고 친구들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마루가 혼자 해결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고 지켜만 보았던 친구들은 흔쾌히 나서서 도와주었다. 고등학생 축구 선수 마루는 그때의 교훈을 떠올리며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동료들의 도움에 힘입어 한 단계 도약하는 마루의 멋진 모습이 펼쳐진다.
이 장면에서 나는 두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 벽 앞에 선 마루의 대사가 나를 위한 것 같았다. 물론 지금 나의 외모는 마루보다는 마루 아빠와 비슷하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마루 아빠도 충분히 멋지다. 그는 마루에게 긍정적이고 겸손한 태도를 가르친 멘토이고, 자신도 그런 태도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훌륭한 어른 아닌가. 마루는 내 앞을 막아선 것이 정말 벽이냐고 묻고 있었다.
둘째, <빌드업>의 이 장면은 내게 기도 응답처럼 느껴졌다. 길을 보여 달라고, 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던 내게 이 장면은 주눅 들지 않고 상황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후 며칠 동안 나는 향후 내 일의 중요한 요소가 될 구상을 하게 되었고 그 구상은 작은 결실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루가 그랬던 것처럼 자존심을 꺾고 주위에 도움을 청했고 얼마 후 도움의 손길을 경험했다. 한마디로 벽이 계단으로 바뀌는 것 같은 경험을 한 것이다.
웹툰은 주일학교 교사인 내가 몇몇 학생과 교감할 수 있는 희귀하고도 소중한 접점이다. 같이 <빌드업>을 보는 학생에게 지금까지 쓴 얘기를 몇 문장으로 간추려 카톡으로 ‘간증’했더니 평소보다 훨씬 긴 (어떤 답변에 비하면 정확히 여덟 배나 긴) 답변이 돌아왔다.
“감명 깊게 보셨군요.”
그랬다. 나는 웹툰을 보며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받은 감명의 희미한 빛이나마 전해지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내가 경험한 감명을 독자와 공유하고 싶었다.
물론 이번 글에서 다룬 것처럼 웹툰으로 ‘찐한 은혜’가 주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개는 한 스푼의 감동, 깨달음, 활력이 잠깐 스쳐 가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나 귀한가. 현실의 압박에서 잠시 벗어나 주어진 상황과 현실을 조금 다르게 보고, 용기와 미덕을 되새기고, 자기를 넘어서는 인물들이 구현하는 변화와 공생의 가치를 생각하고, 그 모든 귀한 것의 근원을 떠올릴 수 있다면 참으로 감사한 일이겠다. 앞으로 내게 그런 순간들을 안겨준 웹툰의 장면들을 하나씩 이야기해 볼까 한다. 부족한 시도에 빛이 주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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