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렇게 답이 안 나오는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서로 만난다. 간식을 한 짐씩 싸와서, 다른 사람들이 환대하지 않는 서로의 아픈 이야기를 듣는다. 함께 수다를 떨다 보면, 어느새 우리의 일상에 사실은 얼마나 낄낄댈 일이 많았는지 기억난다. 서로가 얼마나 놀랍도록 건강하게 스스로의 삶을 가꾸고 있는지 배우며 뿌듯해지기도 한다. (본문 중)
박은영1)
연말이다. 연말 파티는 ‘질병과 함께 춤을’(이하, ‘질병춤’) 모임에서 하기로 했다. 질병춤이란 모임은 다양한 몸이 평등하게 어울려 사는 세상을 꿈꾸는 ‘다른 몸들’이라는 단위에 속해 있는 모임의 이름이다. 내가 속해 있기도 한 이 모임은 질병이나 장애와 함께 사는 여성들이 꾸준히 함께 모여 수다 떨고 일을 벌이고 있다. 그러니까 한 해가 기울어가는 촉촉한 겨울밤에 모여 몸 아픈 얘기나 하기로 한 것이다.
아픈 건 죄도 아니고 부끄러워해야 할 것도 아닌데, 아픈 사람은 조용히 사라져야 하는 사회에 아픈 우리를 위한 자리는 너무 좁기만 했다. 그러던 중 2018년, 이 모임을 처음 구성한 조한진희 선생님이 다른 구성원들에게 아픈 사람도 떠들고 돌아다니고 참여하는 사회를 상상해 보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어떻게 설레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일을 벌여보자고 모였지만, 여기저기 아픈 우리가 가진 자원은 한 줌도 되지 않았다. 병원을 들락날락거려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으레 감당하는 양만큼의 노동을 하기 힘든 우리에게 시간적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몸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지거나 병원 일정이 잡히면 모임에 빠져야 했고, 체력이 약하다 보니 한 번에 많은 일을 벌일 수도 없었다.
모임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우리는 아플 때 모임을 빠질 권리, 자신의 에너지에 넘치는 일을 하지 않을 권리를 지키는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모임이 6개월 안에 흐지부지될 거라고 확신했다.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질병춤 모임은 현재 6년째 계속되며, 공저 『질병과 함께 춤을』(푸른숲, 2021)을 내는 등, 여러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우린 어쩌다가 이렇게 오래 만나게 되었을까? 우리는 모두 삶의 어느 시점에 질병을 얻은 여성들이었다. 하지만 질병은 우리의 삶을 끝장내지 않았고, 대신에 변화시켰다. 아픈 우리는 아픈 몸을 관리하며 일을 하고, 가족이나 친구를 돌보고, 쉬는 날 가볼 맛집을 검색하는 삶을 살아간다. 아프기 전보다 스케줄이 더 많아지고 고민할 거리도 늘어났지만, 그래도 나름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산다. 그러므로 우리도 친구들과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우리에겐 맘껏 수다 떨 공간이 별로 없었다.
질병을 더 무서워하는 쪽은 질병을 경험한 사람보다 오히려 질병 세계에 발을 들여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얼마나 공포에 질려있는지 ‘아픈 티를 내지 말라’고 아픈 사람들에게 윽박지른다. 누군가 약을 챙겨 먹는 모습을 보기도 싫어한다. 그들은 질병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으며, 자신이 고통이 큰 만성 질환이 걸리거나 인지증2)을 얻으면 차라리 안락사를 하고 싶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다.
질병춤 모임은 질병인의 이야기와 존재를 지우고 싶어 하는 분위기에 저항하여, 우리의 존재를 지키고 사회 속에 질병인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넓혀 보고자 모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고분고분하게 세상에서 사라져 주지 않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아픈 이야기를 침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질병인들의 질병 경험은 적극적으로 공유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예를 들면, 나는 이십 대 후반부터 전에는 겪어본 바 없는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통증이란 녀석은 나를 떠나지 않고 아예 눌러앉아 버렸는데, 나에게 녀석과 동거하는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에겐 먼저 아픈 사람의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했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아픈 이야기가 절실해지는 순간이 올 것 같기도 했다.
질병춤은 나에게 무엇보다 눈치 안 보고 ‘근황 토크’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병원에 가고 운동을 하다가도 웃긴 일도 벌어지고 짜증 나는 일도 생기는, 말 그대로 우리 질병인들의 일상이지만 질병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자꾸만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비범한 사건으로 처리하고 싶어 한다. 긴장한 사람들이 내뱉는 탄성과 추임새는 대개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하므로, 우리는 질병춤으로 모여 질펀하게 일상에 대한 수다를 떤다.
이를테면 우린 노동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일, 우리의 생계와 관계를 유지해 주는 일을 그만둘 생각이 없지만, 직업을 유지하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건강한 사람들과 똑같은 업무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에 남아있기 위해 우리의 아픈 몸을 밀어붙이긴 하지만, 사실 언젠가는 한계가 올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혼자 버티는 게 얼마간 가능하다 해도 아픈 사람 혼자 소진되는 방식은 정의롭지 않다. 취약한 우리에게 맞춰 노동 조건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재택근무를 해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고백하거나 필요한 기자재를 요청함으로써 노동 조건을 바꾸려는 시도를 한다.
질병춤 모임에서는 일을 그만두라고 조언하는 대신 서로의 노동을 격려하고 노동 조건을 조정해 보려는 시도를 응원한다. 아픈 우리에게 노동자로서의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우리가 노동자로 남아있는 것이 사회에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알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장애인과 질병인의 몸을 고려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사실 우리 쪽에서 건강한 노동자들의 속도에 맞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대부분의 시간 동안 아픈 사람들이 맞춰주고 있건만, 어쩌다 우리 몸에 맞는 기자재나 노동 조건을 요구하기라도 하면 비장애인과 건강인들은 매우 당황스러워한다.
당황하는 이들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우리 몸의 특성을 설명하며 그들을 설득하는 것 또한 우리의 일이다. 이렇게 노동권을 사수하고 나면 나뿐 아니라 다른 질병인이 들어올 자리도 조금은 넓혀 놓은 것 같아 조금은 뿌듯해진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 머릿속에선 계산기가 돌아간다. 병원비와 약값을 포함해 질병이 있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하지만, 돈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건강 상태를 지키기 위해서는 충분한 운동과 휴식이 필수적이며, 우울에 빠지지 않기 위해 주기적으로 기쁨도 재충전해야 질병과 함께 잘 버틸 수 있다. 즉, 건강한 사람보다 더 치밀하게 시간과 에너지, 돈을 계산해야 한다. 한마디로 꽤나 복잡한 인생이다.
질병춤 모임에서 듣는 서로의 이야기는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있고, 함께 머리를 짜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철저히 계산하고 애쓰며 살아도 우리의 몸은 날이 갈수록 늙어갈 것이고, 일터도 사회도 우리의 문제를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답이 안 나오는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서로 만난다. 간식을 한 짐씩 싸와서, 다른 사람들이 환대하지 않는 서로의 아픈 이야기를 듣는다. 함께 수다를 떨다 보면, 어느새 우리의 일상에 사실은 얼마나 낄낄댈 일이 많았는지 기억난다. 서로가 얼마나 놀랍도록 건강하게 스스로의 삶을 가꾸고 있는지 배우며 뿌듯해지기도 한다.
고통과 불면의 밤을 보내고 와서도, 우리는 안락사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질병과 함께하는 삶 역시 반짝이는 의미 있는 삶이라고 꼭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프더라도 죽고 싶기보다는 더 잘 살고 싶어질 수 있으며, 그런 선택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서로 수다를 떨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도 튀어나온다. 글을 연재하거나 발표회를 열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이미 오래 아파온 우리는 여전히 세상과 나눌 만한 반짝이는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연말이다. 별로 내세울 성과는 없지만 올해도 나쁘지 않은 한 해였다. 우리는 올해도 어김없이 아팠지만, 아프면서도 성실히 일하고 놀고 꿈을 꿨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되, 함부로 요약하거나 그 안의 단어들을 함부로 소거하지 않았다. 서로의 끝나지 않는 씨름이 이 사회에 필요하다고 눈빛을 반짝이며 말해주었다. 우리는 절망과 아픔을 딛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절망과 아픔 한가운데를 서로의 옆에서 한 발 한 발 걸었다.
올해가 끝나도 당신의 씨름을 표현하는 복잡한 문장 앞에 내가 계속 앉아있을 수 있기를 바란다. 올해가 끝나도 나의 절망을 성실하게 묘사하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 당신과 계속 함께 아프며 걸을 수 있다면, 내년에도 나는 어린아이처럼 삶에 설렐 것이다. 내년에도 우리는 세상에 계속 건네줄 뭔가를 같이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1) 『소란스러운 동거』(IVP, 2022)의 작가이며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다.
2) 종래 ‘치매’로 불려 온 질환. 치매에 사용되는 한자어의 의미가 ‘어리석음’으로 비하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 최근에는 일본의 사례를 따라 한국에서도 ‘인지증’으로 바꿔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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