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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나빠요.” 2004년 개그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끈 이주 노동자 블랑카의 유행어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가 직장에서 경험하게 된 현실의 부조리를 잘 응축해 놓은 이 말 한마디는 많은 시민들의 공감을 샀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이주 노동자 100만 시대, 지금 우리나라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주 노동자의 삶은 어떠할까? (본문 중)

 

최정규(변호사, 법무법인 원곡)

 

“백년대계 비자 정책” 정부가 최근 이민청 신설 등 외국인력 정책을 강조하며 일컫는 말이다. 교육 앞에나 붙었던 ‘백년대계’라는 말을 붙일 만큼 농어촌과 중소기업의 전반적인 인력난, 저출산 인구 절벽, 지역 소멸 등 우리 사회의 난제를 해결할 구원 투수로 등장한 외국인력 정책은 이제 정부의 중요한 정책으로 자리매김했다. 외국인력 도입에 인색했던 일본도 2019년부터 외국인력 정책을 전면 개편하는 등, 전 세계 국가가 ‘선택받는 나라’를 목표로 일손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1).

 

“사장님 나빠요.” 2004년 개그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끈 이주 노동자 블랑카의 유행어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가 직장에서 경험하게 된 현실의 부조리를 잘 응축해 놓은 이 말 한마디는 많은 시민들의 공감을 샀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이주 노동자 100만 시대, 지금 우리나라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주 노동자의 삶은 어떠할까?

 

4년 7개월 일했지만 3년 치 월급을 받지 못한 캄보디아 출신 A 씨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을 임금체불(滯拂)이라고 한다. ‘체불’의 사전적 의미는 ‘마땅히 지급해야 할 것을 미룸’이다. 이 ‘체불’이라는 단어는 지금은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담고 있다.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A 씨는 2015년 6월에 한국에 입국해 한국 정부(고용 센터)가 알선해 준 한 농장에서 4년 7개월 동안 일했다. 그런데 2016년부터 임금체불이 시작되었고 결국 3년 치 임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농장주는 임금을 달라고 요청할 때마다 “땅을 팔아서라도 임금을 지급하겠다”라고 약속했지만, 농장주의 유일한 재산이었던 그 땅은 2017년 7월경 이미 경매가 시작되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상황이었다. 임금 채권 보호를 위해 최대 1,000만 원까지 국가로부터 지급받는 “소액체당금제도”도 근무하는 노동자가 5인이 되지 않는 농ㆍ어업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미루어진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는 A 씨의 희망은 그저 희망 고문이다.

 

더 답답한 것은, 못 받은 임금을 지급받을 때까지 한국에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비자를 받지 못한 임금체불 피해 이주 노동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불법 체류자로 전락한다. 출입국관리법을 준수하지 못한 책임을 이주민에게 전가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왜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했는지는 묻지 않고, 그저 출입국관리법 위반 체류자를 단속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주 노동자 A 씨의 안타까운 사연이 세상에 알려진 지 3년이 지났지만, 바로 그 사업장에 알선하여 피해를 입게 한 한국 정부는 아무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결국 A 씨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가 배상 소송을 제기하여 힘겨운 법적 싸움을 이어 나가고 있다2). 이렇게 A 씨처럼 임금체불을 당했다고 이주 노동자가 신고한 금액은 1,000억 원을 훌쩍 넘었다.

 

일제 강점기 노동력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조선인을 일본 기업 공장에 강제 동원하여 종사하게 한 ‘강제 징용’, 우리는 ‘강제 징용’의 피해 국가다. 그런데 농장과 공장의 노동력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16개국 외국 청년들이 한국 정부가 직접 알선한 사업장에서 노동의 대가인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피해를 입고 있다. 일본의 강제 징용의 피해자인 우리가 이제는 가해자가 되어 외국 청년들의 눈에 피눈물 흐르게 하고 있는 것이 마음 무거운 현실이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 사 놓고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사망한 캄보디아 출신 B 씨

 

2020년 12월 20일, 이주 노동자 기숙사에서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 B 씨는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영하 20도의 한파 경보가 내려진 날씨에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이주 노동자 사망 소식에 많은 시민들이 애도했다. 수년 전부터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를 외친 시민 사회 단체의 목소리를 정부가 묵인한 결과다.

 

세계 주요 외신들이 이 상황을 알리며 비판하자 고용노동부는 부랴부랴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을 기숙사로 제공하는 사업장에 고용 허가를 금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3년 동안 일부 진전이 있었지만 아직도 비닐하우스 숙소를 제공받고 기숙사비를 급여에서 공제당하는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3). 정부의 대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2023년 고용노동부가 지도 점검을 한 사업장은 5,500개, 이주 노동자들이 고용되어 있는 전체 사업장의 10분의 1도 안 되기 때문이다. 관련 법령에는 매년 1회 이상 외국 인력 고용 허가 사업장에 대해 고용노동부의 지도 점검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정부가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사이, 임금체불, 불법 기숙사 강요 등 이주 노동자들은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당하고 있다.

 

‘사장님 나빠요’를 외치던 이주 노동자는 이제 ‘한국 정부 더 나빠요’를 외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의 이웃으로 다가온 이주 노동자들의 외침에 더 이상 눈 감고 귀 닫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낯선 땅에 와서 나쁜 사장님과 더 나쁜 한국 정부를 만나 피해를 당한 이웃의 외침에 귀 기울이고 함께 불의한 현실과 싸워 나가야 하지 않을까? 이주 노동자의 안타까운 현실에 우리의 관심과 행동이 필요하다.

 


1) 채희원, “[취재파일] ‘일본은 외국인 노동자 차별 없나요?’ 질문이 틀렸다. [일손전쟁①] 한국 추월하는 일본…‘선택받는 나라’를 목표로”, 「SBS」, 2023. 11. 24.

2) 이유경, “[집중취재M]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사장님들‥달아나거나 ‘모르쇠’”, 「MBC」, 2023. 2. 16.

3) 이승환, “[단독] 비닐하우스 숙소가 “월 45만 원”…이주노동자 처우 ‘열악’”, 「JTBC」, 2023. 12. 13.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우춘희. 『깻잎 투쟁기: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 교양인. 2022. 05. 13.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최정규, “이주 노동자 정책, ‘우리나라가 수준이 있는데…’ [세상에 이런 법이]”, 「시사IN」, 2023. 11. 12.

최정규, “밀린 임금 받아 돌아갈 수 있을까 [세상에 이런 법이]”, 「시사IN」, 2022. 09. 14.

최정규, “500일 만에 받은 ‘우연한’ 산재 인정 [세상에 이런 법이]”, 「시사IN」, 2022. 0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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