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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랫동안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라는 말을 진리인 것처럼 받들어 왔다. 문제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우리가 전쟁을 준비하면 상대도 전쟁을 준비한다는 점이다. 전쟁 준비, 군비 경쟁의 악순환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풍이 불면 한 톨의 불씨가 온 산을 태울 수 있다. 그래서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평화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충분조건은 “평화를 원하거든 평화를 준비하라”이다. (본문 중)

 

배기찬(평화문명원 원장)*

 

지금부터 3,700여 년 전에 공포된 『함무라비 법전』에 “사람이 눈을 멀게 하면 제 눈을 멀게 하고, 이를 부러트리면 제 이를 부러트려라”라는 조문이 있다. 똑같이 보복한다는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이다. 같은 맥락에서 모세오경에는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갚으라고 규정하고 있다. 받은 것을 똑같이 되돌려 주는 것이 인간 사회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아이작 뉴턴은 1687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서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라는 3대 법칙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3대 법칙은 물질세계만이 아니라 인간관계 및 사회 현상, 국제 관계에도 적용되는 듯하다. 특히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은 ‘물체 A가 다른 물체 B에 힘을 가하면, 물체 B는 물체 A에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인 힘을 동시에 가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오늘날 한반도의 남북 관계에도 그대로 작용하고 있다.

 

첫 번째 사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이다. 2024년 들어 지금까지 북한은 ‘화살’, ‘불화살’이라는 이름이 붙은 순항 미사일을 다섯 차례나 발사했다. 북한은 순항 미사일을 개발해 한국이 북의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하는 미사일 방어 체계(KAMD)를 무력화하려 한다. 북한이 지난 1월에 시험 발사한 고체연료추진 극초음속 미사일과 신형 잠수함발사전략순항미사일(SLCM)은 북한의 핵·미사일을 선제적으로 타격하는 한국의 킬체인(Kill Chain)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에 주력했는데, 이는 한미 양국의 대량 응징 보복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한미 동맹은 북한의 남침 위험에 연합 전력으로 대응했고, 북한은 ‘한미연합군의 군사력’이라는 작용에 ‘핵·미사일’로 반작용했다. 그리고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라는 작용에 한미는 ‘3축 체계’(KAMD, Kill Chain, KMPR)로 반작용한다. 한국의 ‘3축 체계’라는 작용에 북한은 다시 ‘3축 체계 무력화 능력’으로 반작용한다.

 

두 번째 사례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긴장의 고조이다. 1953년에 체결된 정전협정은 육상에서의 군사분계선(MDL)과 비무장지대(DMZ)를 명시했지만, 해상의 분계선은 명시하지 않았다. 휴전 뒤 유엔군 사령관은 NLL을 설정했는데, 이후 이를 둘러싸고 여러 차례 남북 간 해전이 벌어졌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10‧4 선언”을 통해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 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에 합의했지만, 후속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우리 국가의 남쪽 경계선이 명백히 그어진 이상, 불법 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영토, 영공, 영해를 0.001mm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 도발로 간주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어서 2월 14일 지상대해상 미사일 시험에서, “이제는 우리가 해상 주권(해상 국경선)을…실제적인 무력행사로, 행동으로 철저히 지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2월 16일 지상작전사령부에서 “적이 군사분계선과 NLL 이남에 대해 도발하면 ‘즉각, 강력히, 끝까지 원칙’으로 단호하게 응징하고, 도발 세력과 지원 세력 모두를 완전히 초토화하라”고 지시했다.

 

세 번째 사례는 통일과 관련된 문제다. 1945년 분단 이후 남과 북은 각각 자기중심으로 무력 통일론, 북진 통일론, 남조선 혁명론, 흡수 통일론, 연방제안, 연합제안 등을 주장했다.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은 최초로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합의는 이후 구체화되지도, 준수되지도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취임 후 첫 통일부 업무 보고에서 “통일부는 헌법 제3조와 제4조를 실현하고 구체화하기 위한 부처라는 인식을 우선 명확히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2023년 1월 통일부 연두 업무 보고에서 이를 더욱 구체화해 “우리 헌법은 우리가 현재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지 않은 북한 지역을 우리 대한민국의 영토로 규정하고 있고, 따라서 북한지역에 사는 우리 북한 주민을 우리 국민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그동안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오랫동안 판결해 온 것처럼,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국가가 아니라 “반국가단체”이며(헌법 3조), 통일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헌법 4조)가 북한에 확장되거나 이에 북한이 흡수되는 형태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김정은은 2023년 12월 3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한국 정부의 통일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김정은은 “[한국은] 우리 공화국과 인민들을 수복해야 할 대한민국의 영토이고 국민이라고 거리낌 없이 공언[하고]…대한민국 헌법이라는 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조선 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버젓이 명기”되어 있고, 한국 정권이 10여 차례 바뀌어도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통일’ 기조는 추호도 변함없이 그대로 이어져” 왔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평가 위에서 김정은은 “우리 당이 내린 총적인 결론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제도에 기초한 우리의 조국 통일 노선과 극명하게 상반되는 ‘흡수 통일’, ‘체제 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고 단정했다. 김정은은 이것을 더욱 구체화해 2024년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조선 헌법’에 주권 행사 영역을 명시하고, 전쟁 발생 시 목적(한국 편입)을 명기하며, 통일 및 동족 관련 표현을 삭제하는 등 변화된 대남 정책 및 통일 정책을 반영할 것을 제안했다. 나아가 ‘조국통일 3대헌장기념탑’ 등 통일 관련 상징물을 모두 철거하고, 경의선 북측 구간을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끊어 놓을 것을 지시했다.

 

네 번째 사례는 ‘적’과 ‘평화’에 대한 인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기인 2022년 1월, SNS에 “주적은 북한”이라는 글을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그리고 『2022 국방백서』에 “북한군과 북한 정권은 우리의 적”이라는 문구를 6년 만에 부활시켰다. 이러한 ‘작용’에 대해 북한도 ‘제1 주적론’으로 반작용한다.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21년 10월, 국방전람회에서 김정은은 “우리의 주적은 전쟁 그 자체이지 남조선이나 미국 등 특정한 그 어느 국가나 세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윤 정부 등장 뒤인 2022년 8월 11일, 김여정은 “남조선 괴뢰들이야말로 우리의 불변의 주적”이라고 했고, 2024년 1월 김정은은 “대한민국 족속들을 우리의 주적으로 단정”하고, 헌법에 한국을 “철두철미한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명기하도록 지시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군비 증강에 열을 올리는 적대국”에 대해 “자위적 국방력과 핵전쟁 억제력을 강화”하고, 전쟁이 일어나면 “대한민국을 완전히 초토화해 버릴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정상회담은 쇼”라고 비난하고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했다. 그는 2021년 새해 업무 보고에서는 “상대방의 선의에 의한 평화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가짜 평화”이므로 “힘에 의한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후 대화와 합의로 평화를 이루려 한 종전 선언 추진을 ‘반국가세력들’의 “허황된 가짜 평화 주장”으로 맹비난했다. 이를 받아 신원식 장관은 “응징이 억제이고, 억제가 평화”라고 하면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완벽한 가짜”이고, “잘 짜인 한 편의 사기극”이라고 극언했다. 신 장관은 2024년 신년사에서도 “말과 종이, 헛된 망상이 아닌 오직 ‘강한 힘’을 갖췄을 때 ‘진짜 평화’를 유지”할 수 있기에, ‘힘에 의한 평화 구현’에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했다. 윤석열 정부의 이러한 주장은 북한에 대한 반작용이지만, 북한은 윤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또다시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인 힘’, 곧 반작용을 가한다. 일찍이 선군정치를 주장한 김정일은 “평화는 오직 힘에 의해서만 담보된다”라고 하면서 ‘법’과 ‘선언’으로 평화가 지켜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정은도 2019년 5월, “강력한 힘에 의해서만 진정한 평화와 안전이 보장된다”라고 말했고, 2024년 인민군 창건일 행사에서는 “평화는 구걸하거나 협상으로 맞바꾸어 챙겨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라는 말을 진리인 것처럼 받들어 왔다. 문제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우리가 전쟁을 준비하면 상대도 전쟁을 준비한다는 점이다. 전쟁 준비, 군비 경쟁의 악순환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풍이 불면 한 톨의 불씨가 온 산을 태울 수 있다. 그래서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평화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충분조건은 “평화를 원하거든 평화를 준비하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쟁 준비·군비 경쟁이라는 ‘관성의 법칙’을 이해해야 하고, ‘가속도의 법칙’에 따라 적대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더 큰 평화의 힘을 가해야 한다.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평화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평화를 알지 못하면 평화를 준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평화는 전쟁의 부재가 아니다. 평화는 각자 자유롭게 어울려 사는 것이다. 평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노력이 없다면, ‘작용과 반작용’, ‘동태 보복의 원리’는 악순환적으로 증폭되어, 오늘날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보복처럼 10배, 100배의 보복으로 나타난다. 나아가 2012년 포격을 당한 연평도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한 것처럼 ‘백배 천배의 보복 다짐’으로 나타나 전쟁 위기는 증폭된다. 예수님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셨다. 작용과 반작용의 악순환, 증폭되는 보복의 악순환을 주도적으로 끊으라는 것이다.

 


*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 대통령 비서관, 저서 『코리아 생존전략』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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