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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지난 세기 그린벨트 지정과 해제의 과정이 있었기에, 그린벨트 논의의 방향은 그린벨트를 해제할 것인가 보전할 것인가라는 양자택일의 문제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그린벨트 해제가 지금 꼭 필요한 것인지, 필요하다면 어떤 기준과 절차로 필요성을 검증할 것이며, 부동산 투기와 같은 부작용을 어떻게 예방할 것인지, 1‧2등급지 해제 후 새로운 1‧2등급지 그린벨트 지정에 대한 예산 확보 등 구체적인 계획안을 사회적 공론장에 투명하게 공개한 후 토론과 합의를 통해 보존과 해제의 황금 비율을 찾아내야 한다. (본문 중)
이성영1)
지난 2월 21일 울산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그린벨트 해제 기준을 20년 만에 전면 개편하겠다고 발언하였다. 국토교통부는 구체적으로 ‘지역 전략사업’에 포함되는 부지는 지역별 그린벨트 해제 총량을 적용하지 않고, 개발이 원칙적으로 불가했던 환경평가 1‧2등급지도 그린벨트에서 해제해 주겠다고 발표했다. 산지가 많은 울주군이 포함되어 있는 울산광역시는 행정구역의 25.4%가 그린벨트 지역이며, 그린벨트 지역의 81.2%가 1‧2등급지라 그린벨트로 인한 도시 개발이 어렵다는 지역 민원을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전격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지방 그린벨트 해제 발언이 나온 후 얼마 되지 않은 3월 6일, 서울시 역시 개발제한구역 제도와 지정 현황 등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는 ‘개발제한구역의 효율적 관리‧활용 방안 마련’ 용역 착수 계획을 밝혔다. 1971년 그린벨트 제도 도입 이후 서울과 지방의 그린벨트 모두 거대한 변화 앞에 서 있다.
개발제한구역 해제의 역사
우리나라의 개발제한구역은 영국의 그린벨트(green belt) 제도를 근간으로 하여 1971년 제정되었다. 한국의 개발제한구역은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 방지, 도시 주변의 자연환경 보전을 통한 도시민의 건전한 생활 환경 확보, 안보 강화라는 목적을 위해 도입되었다(도시계획법 제21조).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면 주택 건설, 산업 단지 등 개발제한구역 지정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개발 행위가 제한되므로 개발제한구역 내 토지 소유자의 재산권의 침해가 심각한 만큼 토지 소유자들의 반발도 극심할 수밖에 없다. 1971년부터 1977년까지 전 국토의 5.4%를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는 권위주의 정부인 박정희 정권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정부가 재산권을 제약한다고 반발하기에는 엄혹한 시절이었다.
민주화 이후 사회 각계각층의 눌려 있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개발제한구역 역시 재검토되지 않을 수 없었다. 1998년 헌법재판소는 ‘개발제한구역 제도는 합헌이지만 개발제한구역의 지정으로 인해 일부 토지 소유자에게 가혹한 부담이 발생하는 예외적인 경우에 대해 보상 규정을 두지 않은 것에 대해 위헌성이 있다’는 취지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후 개발제한구역 거주민 주거 환경 개선 및 토지 협의 매수 등 거주민 지원‧보상과 함께 개발제한구역의 해제가 본격화되었다.
박정희 정권에서 개발제한구역을 대규모로 지정한 이후 김대중 정부 이후 개발제한구역의 해제가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1999년 김대중 정부는 ‘선 환경평가 및 도시계획 후 해제’라는 원칙 아래 성장 관리가 필요한 수도권‧부산권 등 7개 대도시권은 부분 해제,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 가능성이 낮은 춘천권‧청주권‧여수권 등 7개 중소 도시권은 전면 해제하였다. 2000년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하여 전국 7개 대도시권에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할 수 있는 해제 가능 총량 342.8㎢를 지역별로 배분하여 각 지역은 지역별 해제 가능 총량 내에서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후 지자체들의 추가적인 해제 요청으로 공공 주택 건설, 일자리 창출 목적의 산업 단지 조성 등 공익적 목적의 개발 수요에 부응한다는 명분으로 2008년 188㎢의 개발제한구역 추가 해제가 허용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공공 주택 공급 사업인 ‘보금자리주택’은 대부분 서울의 그린벨트를 해제하여 대규모 주택을 공급한 사례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공급 계획을 발표한 3기 신도시 역시 토지의 90% 이상이 그린벨트 지역으로 대부분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한 지역이다. 사실상 수도권에서 대규모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땅은 그린벨트 외에는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 역대 정부는 그린벨트를 해제하여 대규모 주택을 공급해 왔다.
번갯불에 콩 볶는 것이 아닌 숙의 민주주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린벨트 해제의 변천사를 돌아보면 박정희 정부에서 지정했던 그린벨트를 민주화 이후 여러 정부들이 도시의 발전 상황에 따라 해제하여 공익적 필요를 위해 사용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압축적 산업화‧근대화‧도시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그린벨트 지정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살려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린벨트의 대규모 지정과 적절한 방식의 해제를 통한 주택 공급 등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도시 인구 증가와 도시의 성장에 대응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지난 세기 그린벨트 지정과 해제의 과정이 있었기에, 그린벨트 논의의 방향은 그린벨트를 해제할 것인가 보전할 것인가라는 양자택일의 문제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그린벨트 해제가 지금 꼭 필요한 것인지, 필요하다면 어떤 기준과 절차로 필요성을 검증할 것이며, 부동산 투기와 같은 부작용을 어떻게 예방할 것인지, 1‧2등급지 해제 후 새로운 1‧2등급지 그린벨트 지정에 대한 예산 확보 등 구체적인 계획안을 사회적 공론장에 투명하게 공개한 후 토론과 합의를 통해 보존과 해제의 황금 비율을 찾아내야 한다.
1999년 그린벨트 대규모 해제 과정을 돌아보면 그린벨트에 대한 전문성과 경험이 많은 영국 등 해외의 학자들이 개발제한구역 해제 검토 연구에 참여하고, 여러 국책 연구원들이 개발제한구역 해제에 대한 환경 평가 기준을 만드는 연구를 진행하고, 각 도시의 시가지 확산 압력과 환경 여건을 분석하는 등 촘촘한 연구 과정과 입법 공청회 등을 통해 전문가들의 합의와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충분히 거친 후 그린벨트를 해제하였다. 이러한 ‘선 환경평가 및 도시계획 후 해제’의 원칙이 세워졌기에 이후 그린벨트 해제가 난개발, 부동산 투기 등의 부작용이 없이 진행되었다. 기존에 아무런 사회적 숙의 과정도 없이 관료들의 책상 서랍에서 끄집어낸 계획안만으로 총선을 앞두고 지역 민원 해소 차원에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처리할 과제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린벨트 해제 발언을 한 울산광역시의 경우 △울산 체육공원 △율현지구 도시개발사업 △남목 일반산업단지 조성 △성안·약사 일반산단 조성 등 개발제한구역 및 절대농지를 해제해야 진행될 수 있는 지역 현안들이 있기에 울산 지역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 활력 제고를 위해 그린벨트 해제가 필요할 수 있다. 지역의 필요에 따라 해제를 하더라도 그린벨트 제도의 취지를 무력화하는 수준으로까지 가서는 곤란하다. 지역별 그린벨트 해제 허용 총량 거래제를 도입하는 등 그린벨트 규모와 제도의 취지를 살리면서 지역별 개발을 할 수 있는 방안이 없지 않다.
과거 쓸모없다고 여겨졌던 갯벌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것처럼, 기후 위기가 심각해질수록 녹지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다. 지역 활력 제고와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필요한 지역은 그린벨트를 해제할 수도 있겠지만 그린벨트 제도 전체 얼개를 무너뜨려서는 곤란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그린벨트 해제 발언이 구체적인 연구 자료나 검토 보고서 없이 총선을 앞두고 나온 발언이라 설익은 밥을 내놓는다는 인상을 피할 수 없다. 설익은 밥은 체하고 끝이지만 한번 훼손된 자연환경은 수십 년이 걸려도 복구가 쉽지 않다. 새만금의 실패는 한 번으로 충분하다.
1) 전 희년함께 토지정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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