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심판론 거셌다…기독교 정당정치 당위성 의문
‘與 참패·野 압승’ 국정기조 전면 쇄신 필요
자유통일당 ‘0석’…국민 80%, 목사 정치참여 반대
민심의 심판은 냉혹했다. 윤석열 정부 집권 3년 차에 치러진 4·10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정부 힘싣기’ 대신에 ‘정권 심판’을 선택했다. 국민의힘은 지역구와 위성정당 비례대표를 합쳐 110석에도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다. 집권여당이 이처럼 크게 패배한 것은 역대 총선 사상 처음이다. 여권의 잇따른 실기로 결국 22대 국회는 21대보다 더 강화된 여소야대(與小野大) 지형을 맞았다.
尹정부 ‘국정동력 약화’ 관측
국민의힘이 2016년 20대, 2020년 21대에 이어 22대인 이번 4·10 총선까지 ‘총선 3연패’에 빠졌다. 임기가 3년이나 남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 과제 추진을 뒷받침해야 하는 국민의힘은 의회 운영에서 21대 국회만큼 험난한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개표가 완료된 11일 민주당은 지역구에서 161석,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서 14석 등 총 175석을 석권했다. 국민의힘은 지역구 90석, 비례정당 국민의미래 18석 등 총 108석에 그쳤다.
국민의힘은 총선 참패로 인해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까지 전국 선거 ‘2연승’으로 중앙 및 지방 정부 권력을 탈환한 기세를 몰아 의회 권력까지 되찾아 오려던 계획에 급제동이 걸렸다.
개헌 및 탄핵 저지선이자 대통령 거부권 행사 시 재의결 법안 부결 요건인 101석 이상은 간신히 지켜냈지만, 남은 임기 3년간 야당의 협조 없이는 연금·노동·교육 등 ‘3대 개혁’을 비롯한 국정과제 실현은 엄두도 내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특히 범야권이 전체 의석의 5분의 3에 해당하는 ‘180석 이상’을 차지하면서, 야당이 추진하려는 각종 법안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돼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되고, 윤 대통령이 거부권으로 맞서는 ‘힘 대 힘’의 대결 구도가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민주당은 대선과 지방선거 등 앞선 전국 단위 선거 2연패의 고리를 끊어내고 2년 뒤 지방선거, 3년 뒤 대선을 앞두고 유리한 의회 지형을 확보하게 됐다.
민주당은 내달 30일 개원하는 22대 국회에서 과반 의석을 토대로 국회의장은 물론 주요 상임위원장직을 차지하며 법안·예산 처리를 주도할 수 있다. 국무총리·헌법재판관·대법관 임명동의안 등도 민주당이 키를 쥐게 된다. 국무총리·국무위원·법관 등에 대한 탄핵소추 의결도 가능하다.
민주당은 또 패스트트랙 지정과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종결 등으로 입법 속도전을 밀어붙일 수 있게 됐다. 당장 윤 대통령이 이미 거부권을 행사한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대장동 50억 클럽 의혹)과 이태원 특별법, 노란봉투법, 양곡관리법 등 법안들을 여당을 ‘패싱’하고 재추진할 수 있다. 각종 특검법과 국정조사도 의결해 정부·여당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여갈 것으로 전망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정권심판론이 바람이 아닌 태풍이었고 어떤 전략도 다 무용지물이었다”며 “윤석열 정권을 향한 심판을 넘은 응징의 표가 이번 총선 결과에 그대로 드러났다”고 진단했다.
총선 이후 산적한 과제…교계, “통합·합심 우선”
총선은 끝났지만 이번 총선이 남긴 상처와 과제들은 적지 않다. 표심만 염두에 둔 정치가 편가르기를 조장하면서 총선 과정에서 국민 분열이 더 심각해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투사 정치’가 양극화된 한국 총선을 지배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까지 나올 정도였다.
교계 역시 이번 총선을 통해 여러 과제를 안았다. 무엇보다 기독교 정당정치의 당위성에 대한 질문을 남겼다.
자유통일당과 기독당은 이번에도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창당해 현재 고문으로 있는 자유통일당은 대표로 장경동 대전중문교회 목사를 내세웠지만, 2.26% 득표율에 그쳤다. 정당 투표에서 3% 이상 득표한 정당만 비례대표 의석을 받을 수 있는 데 1석도 얻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목회자의 정치 참여가 교회에서나 사회적으로나 에너지 낭비”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교계 원로는 “목회자들이 정치 전면에 나서면서 진영 논리가 교회 속에 광범위하게 파고들었다”며 “기독 정당은 그동안 총선 때마다 반짝하고 나타났다. 오히려 교회의 부정적 인식만 키우는 건 아닌지 점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대형교회 장로도 “이번 총선에서도 기독교 정당의 필요성을 증명해 내지 못했다”면서 “되려 신앙과 이데올로기가 융합돼 선동하는 모양새를 보여준 꼴이 됐다. 목회자가 교인들을 대상으로 특정 정당을 강조하거나 비판한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닌 정치 파당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지금까지 기독교 정당이 선거를 통해 의석을 획득한 적은 1945년 조선민주당을 제외하면 없다. 또한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 5명 중 4명이 목회자의 정치 참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목회자들의 정치 참여나 정치 발언에 대해 대다수 국민들은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일상생활과 사회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기독 시민의 참모습이다. 정치에 있어 교회들의 균형 있는 참여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저출산 극복과 고령사회 대응, 의료 개혁 문제 등 총선 이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더미인 가운데, 국가적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도 요구되고 있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대표총회장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는 “우리나라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정치와 사회, 경제, 외교 등 여러 분야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가 있다”며 “무엇보다 국가 소멸의 위기를 불러올지도 모를 ‘저출생 문제’에 대해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한다. 새로운 국회는 장차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 갈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해 주고, 결혼·출산·양육 등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어 “이번 총선을 계기로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지 말고 모두 힘을 합해 문제를 해결하자”며 “복잡하고 힘겨운 현안들을 새롭게 선출된 22대 국회가 정부와 더욱 긴밀히 협력해 슬기롭게 극복해 주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