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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하게 말하자면, 사회적 참사의 유가족들이 진상 규명과 안전 사회 건설을 세우기 위해 싸우는 이유는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진상을 규명한다고 해서, 책임자를 처벌한다고 해서 죽은 가족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진상 규명을 위해 매달리는 것은 아직 살아 있는 누군가는 절대 자신들과 같은 비통함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문 중)

 

임왕성1)

 

또다시 4월입니다. 뒤늦은 꽃샘추위까지 다 털어버린 4월이면 완연해진 봄기운에 사람들은 나들이 준비로 분주하겠지요, 하지만 그 4월이 지독히도 괴로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4·16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입니다. 아니 비단 그분들만이 아니라 10년 전 2014년 4월 16일 하루 종일 미디어를 통해 그 거대한 배가 수많은 생명들을 품고 서서히 침몰해 가던 광경을 지켜보았던 모든 이들의 기억 속에 있는 4월의 트라우마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렇게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무엇 하나 명쾌하게 설명되지 못한 그 세월호 참사의 10년 위에 연달아 쌓인 참사의 기록들입니다. 2017년 3월 31일 우루과이 인근 남대서양에서 선원 24명을 태운 초대형 광석 운반선인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해서 22명이 실종되었습니다. 2022년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축제 중 밀집 지역에서 159명이 사망하는 ‘10·29 참사’가 있었습니다. 또 2023년 7월 15일,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는 인근 제방이 터지면서 강물 범람으로 14명이 사망했습니다.

 

혹자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발생한 이런 일들을 참사로 규정하고 국가의 책임을 묻는 것은 심정적으로는 이해하나 과도한 대응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10·29 참사’가 발생했을 때, 정부는 전국 행정기관에 ‘참사’가 아니라 ‘사고’라 쓰고, ‘희생자’가 아니라 ‘사망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라고 지침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가슴 아픈 일지는 모두 명백한 ‘사회적 참사’의 기록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비단 여타의 사고보다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규모 측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 일의 발생이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요인으로 인해 발생했고, 그로 인한 고통과 슬픔이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로 확산되어 커다란 사회적 고통과 슬픔을 야기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이 모든 사회적 참사에 대한 대응과 해결은 마땅히 진상 규명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며, 그에 대한 사죄와 책임자 처벌, 배상, 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 대책 마련 등이 사회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사회적 참사는 당사자의 비극이 아닌 사회 전체의 비극이기에 그것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똑같은 참사는 언제든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10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진상규명조차 해내지 못한 세월호 참사의 비극이 서서히 잊혀 가고 있던 차에 우리는 이태원에서 발생한 ‘10.29 참사’로 생때같은 청년들을 또다시 잃었고, 그 청년들이 세월호 참사의 세대들이라는 사실에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2014년에도, 2022년에도 제도와 법은 한없이 허술했고, 위기 대응 능력은 마비 상태였고, 그 수많은 죽음에 대해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올해로 세월호 참사는 10주기를 맞고,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은 7주기를 맞습니다. ‘10·29 참사’ 유가족들은 여전히 서울시청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두 참사 해결의 시작인 진상 규명조차도 못 한 채, 유가족들은 사망한 자녀·형제들에게 무능한 죄인의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원통한 유가족들이 도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수백 번 다짐했던 우리의 기억마저 희미해져 가고 있는 이때에도 사회적 참사의 유가족들은 ‘의문사’로 기록될 가족들의 영정을 놓지 못한 채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종교를 불문하고 유가족들은 참담한 죽음이라는 무력한 현실 앞에서 가장 먼저 종교계를 찾아 도움을 호소했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 주는 종교계가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곁을 지켜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사회적 참사의 유가족들이 진상 규명과 안전 사회 건설을 세우기 위해 싸우는 이유는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진상을 규명한다고 해서, 책임자를 처벌한다고 해서 죽은 가족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진상 규명을 위해 매달리는 것은 아직 살아 있는 누군가는 절대 자신들과 같은 비통함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적 참사 진상 규명과 해결을 위해 우리가 함께해야 하는 것은 곧 나와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제주 4·3 항쟁, 제주 해군 기지 건설 등으로 큰 아픔을 겪은 제주에서 ‘평화 신학’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 보고자 ‘제주평화신학포럼’을 준비해 가던 중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제주는 전국에서 기독교 인구 비율이 가장 낮은 지역입니다. 제주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들로부터도 실제 제주도 내에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얼마나 심한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에 대한 지금의 반감이 시작된 것은 제주 4·3 항쟁 이후로부터라고 합니다. 4·3 항쟁 당시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영문을 알지 못한 채 죽임을 당했습니다. 고립된 섬 안에서 벌어진 참사에 살아남은 자들은 어디에 도움을 구해야 할지, 누구에게 이 억울함을 호소해야 할지 몰랐고, 그때 희생자 가족들이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이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들의 방문을 거절했습니다. 그 억울하고 비통한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답니다. 결국 교회로부터 외면당한 제주도민들은 마을에 있는 심방(무당을 의미하는 제주 방언)들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제주도에서 심방의 영향력이 절대적이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는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니요? 하나님은 억울하게 죽은 아벨의 호소를 외면치 않으셨고, 그 억울한 죽음에 대한 책임을 가인에게 분명하게 물으시고 마땅한 벌로 처벌하셨습니다.

 

오늘 또다시 비통한 죽음을 당한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이 도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울어주는” 이들이 그리스도인들이라 믿고 함께 해 달라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안산 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기도회와 예배를 이어온 정경일 원장(심도학사)은 지난 10년의 예배 팀 기록을 “고통받는 이들에게 절실한 건 연민이 아니라 연대다”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연민을 넘어 연대가 필요한 때입니다. 세월호 참사,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10·29 참사’ 유가족과 연대해 주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이름으로 함께 해 주시면 가족들은 더없이 힘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가 내어 준 그 작은 곁을 통해 그분들은 신(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하며, 그 신(하나님)이 억울한 이들의 편이라 믿을 것입니다.

 


1) 새벽이슬교회 담임목사,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 함께 읽어볼 글

이태호 정리, “사참위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조사보고서> 무엇을 밝혔고 무엇을 남겼나”, 「사월십육일의약속」, 2023.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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