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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사기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단순히 임차인의 부주의만이 아니다. 부동산 계약에서 임대인과 임차인 간 정보와 권한의 비대칭 구조, 전세 사기 조짐이 보였으나 가해자를 처벌하거나 시스템을 고치지 않고 방치한 수사·사법 기관의 문제, 세입자로서 안전하고 장기적으로 살 수 있는 주거 여건을 마련하기보다 대출 위주의 부동산 정책만을 추진하여 전월세 시장의 불안정을 가속화한 국가, 계약서에 규정된 기한에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관대했던 우리 사회의 관행 등에도 원인이 있다. (본문 중)

 

이철빈(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

 

대구 전세 사기 피해자 대책위, 영남권 피해 대책위 릴레이 기자 회견 4회차 (2024. 03. 27.)

 

고대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각종 사회적 참사와 구조적인 부조리로 인해 우리 곁에 수많은 ‘강도 만난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2020년대 초반부터 전국에 전세 사기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2024년 4월 17일 기준, 정부가 공식 집계한 전세 사기 피해자는 15,433명에 달하지만, 문제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2023년 2월에서 4월 사이에 전세 사기로 인해 세상을 등지는 피해자들이 연이어 발생하자 “전세 사기 특별법” 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제정된 “전세 사기 특별법”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특별법에 희망을 걸었던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분노하고 있으며, 21대 국회가 문을 닫기 전에 특별법을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고 외친다. 과연 전세 사기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특별법 개정은 왜 필요하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어떠해야 할까?

 

보증금 회수 방안

 

작년 6월 1일부터 시행 중인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에는 피해자들이 가장 강력히 요구해 온 보증금 회수 방안이 빠져 있다. 대신에, 기존 대출을 대환하거나 주택 매입 자금을 대출해 주고, 경매·공매 절차를 지원하는 방안 몇 가지를 담고 있다.

 

전세 사기를 인지한 다음부터는 피해 주택에 계속 거주하는 것 자체가 감옥살이 같다. 소송과 경매 절차를 거쳐 보증금을 회수하기까지 몇 년의 시간을 견디며 큰 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너무 버거운 일이다. 또한 경매를 개시하더라도 시세보다 전세가가 높은 경우가 많아 빠르게 낙찰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피해자는 손실을 줄이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본인이 주택을 낙찰받는 것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 학업·취업·청약 대기 등의 이유로 잠깐 들어온 집을 억지로 매입하게 되면, 그것은 풀릴 기약 없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집에 선순위로 근저당이나 압류가 걸려있는 후순위 임차인의 경우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현행법상 경매가 완료되면 보증금의 대부분을 잃고, 집에서 강제로 퇴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별법을 통해 경매·공매를 최장 1년간 유예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이제 유예 기간이 모두 끝나가고 있어 6월 이후부터는 돈도 집도 잃고, 전세 대출 미상환으로 인해 신용까지 잃는 삼중고에 빠지는 피해자가 속출할 것이 예상된다.

 

피해자들은 대출을 대출로 돌려막는 것이 아니라, 보증금 자체를 돌려줘야 한다고 외쳐왔다. 다행히, 특별법 개정안에는 국가에서 보증금의 일부를 피해자에게 먼저 돌려주고, 시간을 두고 비용을 회수하는 ‘선구제-후회수’ 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아직 본회의에서 의결되지 않아 시행령이나 구체적인 방안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공정한 가치 평가를 통해 피해자의 임차보증금 채권을 매입해서 피해자에게 채권 평가 금액만큼을 먼저 돌려주고, 그 비용은 추후 경매나 채권 추심, 몰수·추징으로 회수하게 된다. 그리고, 만약 채권 평가 금액이 너무 낮게 나오더라도 최소한 보증금의 30% 이하인 최우선 변제금만큼은 돌려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확한 피해 실태 조사 결과가 없어 정확한 예산 규모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시민 사회에서는 총 2만 명의 피해자 중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할 피해자에게 최우선 변제금만큼 보장해 주는데 필요한 예산이 4천억 원 이하라고 추정하고 있다. 적은 금액은 아니겠지만, 우리나라의 2023년 실질 GDP가 약 2천조 원, 2024년 정부예산이 650조 원임을 고려하면 감당 못 할 금액은 아니다.

 

출처: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의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설명 기자간담회 (2023. 11. 22) 자료집

 

 

강제 퇴거 위기 피해자 보호

 

특별법 개정안에는 앞서 언급한 경매·공매가 재개되어 강제 퇴거 위협에 놓일 전세 사기 피해자를 위해 한국자산관리공사에서 선순위 근저당 채권을 매입한 후 경매를 장기간 멈춰두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다. 현행 특별법상 경매·공매 유예 조치가 1년까지 한정되어 있고, 조만간 유예 기간이 끝나는 것에 대한 대책이다.

 

또한, 신탁 사기 피해자를 위한 명도 소송 및 강제 집행 유예 조항도 포함되어 있어 당장 피해자들이 쫓겨나는 것을 방지할 대책도 마련되어 있다. 신탁 등기가 설정되어 법적인 소유권이 임대인이 아닌 신탁사에 이전된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임대인과 계약한 경우는 계약 자체가 무효 처리되므로 임차인은 불법 점유자로 전락하고 신탁사에 의한 명도 소송 및 강제 집행이 신속하게 진행되어 아무런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채 갑자기 내쫓기게 된다. 신탁 사기를 뒤늦게 인지해 충격에 빠진 것도 모자라, 돈 한 푼 없이 거액의 빚더미에 오른 채로 집에서 내몰리는 피해자들에게 특별법 개정이 마지막 희망이다.

 

시설 관리의 문제

 

전세 사기 문제에는 돈을 잃고 집에서 내쫓기는 문제뿐 아니라 시설 관리 문제도 포함된다. 임대인이 시설 관리 의무를 포기하여 발생하는 누수, 균열 등의 하자 방치, 공용 관리비 미납으로 인한 단전·단수, 소방 시설과 승강기 관리 미비로 인한 안전 문제 등은 거주 자체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비용을 임차인이 더 부담한다고 하더라도, 건물 전체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나 외부 기관과의 소통이 필요한 경우에는 임차인이 개인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지자체가 이 문제에 개입해서 적어도 단전, 단수 조치를 풀거나 소방 및 승강기 시설의 안전 관리 의무에 대해 조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소수 지자체를 제외하면 이런 식의 민원에 대응해 본 경험이 없는 지자체는 관련 근거나 예산,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방관하는 상황이 계속 발생했다.

 

특별법 개정안은 각 지자체에서 시설 관리 방치 문제에 대해 점검하고, 공공 위탁 관리를 결정하거나, 관리 비용 일부를 지원하도록 정하고 있다. 각 지자체 상황에 맞게 시설 관리 방치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피해자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

 

전세 사기 문제의 원인과 교회가 할 일

 

전세 사기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단순히 임차인의 부주의만이 아니다. 부동산 계약에서 임대인과 임차인 간 정보와 권한의 비대칭 구조, 전세 사기 조짐이 보였으나 가해자를 처벌하거나 시스템을 고치지 않고 방치한 수사·사법 기관의 문제, 세입자로서 안전하고 장기적으로 살 수 있는 주거 여건을 마련하기보다 대출 위주의 부동산 정책만을 추진하여 전월세 시장의 불안정을 가속화한 국가, 계약서에 규정된 기한에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관대했던 우리 사회의 관행 등에도 원인이 있다. 미약하지만, 피해자의 목소리를 반영한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이 모든 문제를 바로잡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국가가 대책을 논의하는 것과 별개로, 교회 구성원 중 전세 사기 피해자가 외롭게 고립되어 있지는 않는지 실태 조사를 하고, 간담회를 열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방안이 무엇일지 의논하는 공동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교회가 엄혹한 ‘전세 사기 강도’를 만난 사람들과 연대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더 읽어 볼 자료>

이철빈, “전세사기에 대한 오해와 진실 3가지”, 「캠페인즈」 2024. 3. 29.

이철빈, “전세사기 피해 선구제 후구상방안은 비용이 얼마나 들까?” 「캠페인즈」 2024. 4. 9.

이철빈,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지금 당장, 특별법 개정을 외치는 이유”, 「alookso」, 2023. 12. 14.

이철빈, “대표적인 전세사기 유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alookso」, 2024. 4. 16.

피해지원총괄과, “보도자료: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 피해자등 1,432건 결정”, 국토교통부, 2024. 0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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