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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력서에 ‘태어난 곳’ 항목에 선뜻 ‘북한’이라고 적어 넣을 수 없다. 적어 봤자 업무 역량과는 상관없이 흥밋거리만 될 뿐이다. 인사 담당자 입장이 되어 생각해 봐도 ‘북한 출신’이라는 이력이 회사에 필요한 장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희박할 것 같다. 북한 연구나 북한 정보 관련 업무를 하는 회사가 아니라면 말이다. (본문 중)

 

조경일1)

 

“굳이 밝히고 싶지 않다”

 

많은 북향민 청년들은 자신이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는다. 대개는 숨기며 살아간다. 먼저 밝히는 사람은 소수다.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이 알려져 봤자 손해일 뿐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구경꾼에 둘러싸이는 듯한 경험은 예사이고 질문 폭탄을 받기 일쑤다. 북한에서 왔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북향민을 만나는 경험이 새롭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북향민이 5,200만 인구 중에 3만 5천 명이므로 겨우 0.06%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북향민 관련 일을 하거나 관련 단체에서 자원봉사라도 해 본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뉴스에서나 북향민을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북향민을 직접 만나게 되면, 자연스레 고향이 어디냐, 어떻게 탈북했냐 질문을 던진다. 질문하는 사람은 만남부터가 흔한 일이 아니지만, 북향민에게는 그런 일이 늘 있는 일이다. 게다가 간단히 대답할 수도 없는 질문이어서 피로감이 생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차라리 출신을 숨기고자 하는 것이다. 게다가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학업에서, 생업에서, 취업에서, 관계에서 배제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 실제로 어린 학생들의 경우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거나 친구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이로 인해 학업을 중도 포기하고 북한 출신 학생들만 다니는 대안 학교로 전학하기도 한다. 대학생이 된 후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겉으로는 원만한 교우 관계를 보이지만, ‘북한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알게 모르게 친구들과의 관계를 어색하게 만든다. 개인에 따라 다른 문제라 함부로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겉보기에 문제없는 ‘학우 관계’는 유지해도 ‘찐친’의 관계로 들어가기는 어렵다는 게 대다수의 이야기다. 남한 출신이나 북한 출신이나 서로에 대한 무의식적인 ‘경계심’이 있는 것일까?

 

생업 현장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이어진다. 우선 이력서에 ‘태어난 곳’ 항목에 선뜻 ‘북한’이라고 적어 넣을 수 없다. 적어 봤자 업무 역량과는 상관없이 흥밋거리만 될 뿐이다. 인사 담당자 입장이 되어 생각해 봐도 ‘북한 출신’이라는 이력이 회사에 필요한 장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희박할 것 같다. 북한 연구나 북한 정보 관련 업무를 하는 회사가 아니라면 말이다. 무엇보다도 북한 자체가 기업에게 기회를 주는 시장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취업이 곧 생존인 북한 출신 청년들은 당연히 이력서에서 가능하면 ‘북한’이라는 말을 뺀다. 나는 한때 한국 사회의 치열한 취업 생태계를 허투루 보고, 순진한 마음으로 이력서에 떡하니 ‘북한 출신’이라고 기록하거나 누가 봐도 북한 출신임이 드러나는 자기소개서를 제출했고, ‘광탈’(빛의 속도로 탈락)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이력서에 출신 부분을 지웠더니, 적어도 서류 전형까지는 어렵지 않게 통과하는 것을 경험했다. 취업 시장에서 ‘북한 출신’임을 밝히는 것은 곧 ‘광탈’을 의미한다.

 

 

의도치 않은 낙인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북한 출신임을 왜 굳이 밝히는 거냐고, 처음부터 안 밝히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냐고.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출신은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밝혀지며 일종의 ‘낙인’이 된다는 게 문제이다. 이력서에서 고향을 묻지는 않지만 출신 고등학교는 기입해야 한다. 거기에 북한 학교나 또는 검정고시 학원 이름이 들어간다. 차마 거짓을 적을 수는 없어서 아무것도 적지 않으면 채용 담당자가 그 이유를 물어본다. 그렇게 고향과 출신이 밝혀지는 것이다.

 

여차저차 어려운 관문을 뚫고 취업 문을 통과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동료들과의 문제가 있다. 높은 경쟁을 뚫고 취직해도, 아는 사람의 소개로 일을 시작해도, 일터에서 겪는 문제는 대체로 비슷했다. ‘출신’ 때문에 겪는 오해와 편견들, 그로 인해 상처를 받은 북향민들은 퇴사나 이직을 강요받게 된다. 이들의 근속 기간은 일반 남한 사람들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장년 세대일수록, 북에서 온 지 얼마 안 될수록 짧다. 북한식 말투와 습관들은 쉽게 바뀌지 않았고, 대화 방식과 문화 차이 때문에 직장 동료 또는 상사와 잦은 갈등을 겪는다. 억울하게도 대부분의 문제는 오해와 편견 때문에 발생한다. 업무 역량이나 숙련도로 인한 갈등이야 출신과 상관없이 어느 현장에서든 생길 수 있다. 일 못하면 혼이 나거나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사소통 방식의 차이, 말투, 북한 출신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 등이 금방 해결될 수 있는 갈등도 크게 키우곤 한다.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결국 관계는 어려워지고 쌍방 간의 신뢰에 문제가 생겨 결국 북한 출신이 퇴사하는 쪽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출신’ 때문에 상대방을 다른 잣대로 대하는 것은 분명히 편견이며 차별임에도 이를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은 드물다. 또 처음에는 출신에 대한 편견이 없더라도 업무 중 생기는 작은 실수를 출신과 연결해 확증 편향으로 나아가는 경우도 있다. “거 봐. 북한에서 와서 그래”, “북한에서 와서 그런지 잘 몰라”와 같은 말들이다. 이런 모습은 언어 자체가 다른 동남아 외국인 노동자들이 겪는 일상과도 닮아 있다.

 

정체성, 당당한 상처

 

우리는 종종 ‘나답다’, ‘너답다’라는 말을 한다. ‘~답다’는 말은 어떤 ‘성질이나 특성 또는 자격이 있음’을 뜻하는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다. 흔히 ‘너답다’고 할 때는 바로 그 사람의 모습과 특징이 잘 나타날 때, 즉 그 사람의 정체성이 잘 나타날 때 이런 말을 한다. 사람들은 대개 정체성을 숨긴 채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잠깐은 숨길 수 있고, 스스로 잘 숨기고 있다고 생각해도 마음에는 불편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말투가 어색하고 살아온 삶과 문화적 경험이 다르면 자연스럽게 시작된 대화도 금방 어색해질 수 있다. ‘너’와 ‘나’가 다른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정상적인’ 것이지만, 아쉽게도 한국 사회에서 그것을 정상적이라고 여기는 경우는 대부분 서양 출신 외국인들과 함께 있는 경우다.

 

북에서 왔다는 사실을 애써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 북향민 청년들은, 특히 나이가 어린 여성일수록, 자신을 숨겨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평범’해지고자 애쓴다. 중국 땅에서는 잡혀가지 않으려고 정체성을 철저히 숨겨야 했는데, 자유를 찾아온 대한민국에서는 평범하게 살려고 정체성을 숨기는 것이다. 정체성은 벗어 던질 수 없는 고유한 것임에도 많은 북향민 청년들은 오해와 편견이 귀찮고 짜증이 나서 ‘탈북’ 정체성을 숨긴다. 이처럼, 북향민들에게 대체로 ‘탈북자’라는 정체성은 불편한 것이지만, 내가 아는 어떤 이들은 이 정체성 때문에 더욱 용기를 내서 당당하게, 혹은 악착같이 살아간다. 나 자신을 돌아보아도 나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탈북’이라는 경험과 그 정체성이었다. 비록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는 자주 사회적 약자, 보호의 대상, 동정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때로는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사실 북향민들은 모두 참혹한 생존의 싸움을 이겨낸 사람들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의 고통을 통과하고 이겨낸 것으로, 내게는 이 정체성 자체가 용기를 낼 힘을 주었다. 북향민은 더 당당해져도 괜찮다. 사회적 시선과 편견은 극복해야 할 일이고, 반드시 극복될 것이다.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시간은 우리의 편이다.

 


1) 작가. 『리얼리티와 유니티: 북한이탈주민의 이슈와 비전에 관한 보고서』(이소노미아, 2023), 『아오지까지: 세 번 탈북한 소년의 나라』(이소노미아, 2021)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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