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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복수에 대한 강한 열망과 심리를 날카롭게 파고든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을 빼놓을 수 없다. ‘박찬욱의 복수 3부작’이라고 일컬어지는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가 바로 그것이다. … 아름답지만 그로테스크한 영상미와 섬세한 미장센,1) 뛰어난 연출력과 스토리텔링을 보여 주는 이 작품들을 통해 복수라는 주제를 다각도로 고찰해 볼 수 있다. (본문 중)

 

최주리(청년활동가)

 

통쾌한 복수에 열광하는 우리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억울함, 여전히 떵떵거리며 사는 가해자, 그에 비해 공권력과 정의는 무기력하다. 그때 등장하는 주인공. 눈이 먼 공권력을 대신해 가해자를 처벌하고 통쾌한 복수를 내린다. 사람들은 부패한 권력과 안하무인의 빌런들을 ‘참교육’하고 피해자로서 혹은 그를 대신하여 억울함을 갚아 주는 복수극을 보며 대리 만족을 느낀다.

 

복수에 대한 열광은 현실 세계에도 존재한다. 천인공노할 성폭행으로 수감됐던 조두순이 출소하자 많은 사람들이 교도소와 조두순의 집 앞으로 몰려들었다. 어느 이종격투기 선수 출신 유튜버는 조두순을 직접 벌하겠다며 그를 찾아간 장면을 생중계했고, 많은 네티즌들은 열광하며 이를 지켜봤다. 그는 결국 조두순이 탄 호송차를 걷어차 공무집행 방해, 공용물 손괴로 경찰에 입건되었다. 이외에도 출소 당일 소란을 피운 시민들이 공무집행 방해로 입건되었고, 이로 인한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계속되었으며, 조두순의 집 근처에 많은 수의 경찰관을 배치하게 되어 공권력이 낭비되었다.

 

또한 어느 유튜버는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의 사진, 이름, 전과 기록 등 세세한 신상을 공개했다.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이라 피고인의 신상 공개가 불가한 상황이어서 큰 논란이 일어났고, 결국 해당 영상은 개인 정보 침해 신고를 받아 수익 창출 제한 조치를 받았다.

 

가해자에게 직접 내리는 복수와 처벌

 

이처럼 정당한 공권력이나 사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개인이나 집단이 직접 가하는 폭력과 사회적 제재를 ‘사적 복수’ 혹은 ‘사적 제재’라고 한다. 사적 복수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만큼, 드라마나 영화처럼 속 시원한 사적 복수는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서사에 열광하는 것은 중요하게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다.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법 정의를 실현해야 할 공권력과 언론 등 사회의 공적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답답함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끔찍한 범죄에 대한 형벌의 무게가 국민의 법 감정에 충분히 미치지 못해 논란이 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대중들의 불신과 억울함을 대리만족시켜 줄 누군가를 찾고, 누군가는 이를 오락거리로 만들어 인기나 조회 수를 모아 돈벌이에 이용하기도 한다.

 

복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복수에 대한 강한 열망과 심리를 날카롭게 파고든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을 빼놓을 수 없다. ‘박찬욱의 복수 3부작’이라고 일컬어지는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가 바로 그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처음부터 3부작을 기획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나, 이 작품들을 통해 대중적, 비평적으로 큰 인정을 받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으로 서게 되었다. 아름답지만 그로테스크한 영상미와 섬세한 미장센,1) 뛰어난 연출력과 스토리텔링을 보여 주는 이 작품들을 통해 복수라는 주제를 다각도로 고찰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박찬욱의 복수는 답답함을 뻥 뚫어 주는 재미나 짜릿함을 선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이 뻥 뚫린 것 같은 공허함과 허망함만이 남는 비극으로 마친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포스터

 

박찬욱이 들려주는 복수 이야기

 

<복수는 나의 것>에서 공장 노동자이자 청각 장애인인 류는 누나의 신장이식 수술을 위해 박동진의 딸을 납치하고, 박동진은 납치한 딸을 죽인 류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나선다. 오해와 실수, 무지가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류와 박동진은 걷잡을 수 없이 서로에 대한 복수에 복수를 더한다.

 

<올드보이>에서는 난데없이 납치되어 사설 감옥인 허름한 방에 갇혀 군만두만 먹으며 15년을 보내다 풀려나 자신을 가둔 이를 찾는 오대수의 복수와, 어린 시절에 받았던 상처를 복수하기 위해 오대수에게 더 큰 상처를 주기로 계획한 이우진이 맞붙는다.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혼전 임신을 한 고등학생 이금자를 속여 어린아이를 유괴하게 만들고 살인죄까지 덮어씌운 백 선생에 대한 복수가 이뤄진다. 이금자는 백 선생이 죽인 여러 아이들의 가족들을 모아 그들의 분노를 쏟아낼 복수극을 준비한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 스틸컷. <복수는 나의 것>에서 류(신하균 분)가 죽은 누나(임지은 분)를 발견한다.

 

이 영화들의 복수와 상처, 갈등은 선인과 악인을 간단하게 구분할 수 없고 뒤섞여 있다는 점에서 입체적이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류는 누나의 신장 이식 수술을 위해 전 재산을 사기당하고 자신의 신장마저 장기 밀매단에 빼앗긴 피해자였다. 또한 류는 애초에 박동진의 딸을 죽일 계획이 아니었다. 자신의 동생이 신장을 구하기 위해 아이를 유괴했다는 사실을 안 류의 누나가 자살하게 되고, 누나를 강가에 묻어주려다 청각 장애가 있는 류가 박동진의 딸이 물에 빠져 소리치는 것을 듣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복수는 나의 것>).

 

이우진이 오대수를 15년간 가둔 것은, 고등학생 시절 이우진과 그의 친누나와의 사랑을 오대수가 발견하고 그 사실을 친구에게 말한 것이 걷잡을 수 없는 소문으로 번졌고, 그로 인해 이우진의 누나가 괴로워하다가 결국 자살하게 된 것에 대한 복수였다(<올드보이>).

 

백 선생은 지체 장애를 가진 어머니가 성폭행당해 태어난 자식이라는 이유로 그의 어머니와 할머니에 의해 감금당하고 학대당했고, 그에 대한 복수로 그들을 죽인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친절한 금자씨>). 류와 이금자는 납치를 통해 가족이 더 끈끈해질 수 있다는 ‘착한 유괴’라는 말에 속아 넘어가고 막막한 현실에 쫓겨 아이를 납치한다.

 

영화 <올드보이> 스틸컷. <올드보이>의 이우진(유지태 분)과 오대수(최민식 분)

 

주인공들이 바라던 복수와 이 모든 파국 끝에 남은 것은 만족감이나 속 시원함이 아니었다. 이우진과 오대수가 결국 대면하게 된 장면에서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말한다.

 

상처받은 자한테 복수심만큼 잘 듣는 처방도 없어요. 한번 해 봐. 15년간의 상실감. 처자식을 잃은 고통…, 이런 거 다 잊어버릴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복수가 다 이뤄지고 나면 어떨까. 아마 숨어 있던 고통이 다시 찾아올걸? (영화 <올드보이>)

 

이는 결국 이우진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이었고, 결국 누나에 대한 죄책감과 공허함에 괴로워하다 끝내 자기 머리에 권총을 겨눈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 스틸컷. <친절한 금자씨>의 이금자(이영애 분)

 

이금자는 백 선생에 대한 복수를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유괴했던 아이의 부모의 상처를 온전히 해결하거나 자신이 충분히 속죄할 수 없음에 괴로워하고, 교도소에 수감되느라 해외 입양되어 행방을 알 수 없는 딸에 대한 죄책감과 지난 세월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워한다.

 

그리스도인과 복수

 

복수와 관련해 가장 많이 인용되는 성경 구절은 로마서 12장 19절일 것이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우리의 모든 억울함과 사정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를 갚아주실 것을 믿고 맡기라는 말씀이다. 억울함에 몸부림치는 이에게 이 구절을 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위로와 상처, 든든함과 억울함, 속 시원함과 공허감을 느끼곤 했다.

 

영화 <밀양> 스틸컷. <밀양>의 이신애(전도연 분)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2007)에서도 이러한 아이러니가 나타난다. 유괴당한 아들의 죽음으로 깊은 우울에 빠졌던 이신애가 이를 계기로 교회에 나가게 되고 마음의 평화를 얻어 유괴범을 용서하겠다고 결심한다. 여전히 속으로는 불안과 경계심이 극에 달해 있었지만 그는 용기를 내 유괴범을 찾아간다. 그러나 유괴범은 이신애가 용서와 하나님의 뜻을 말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께 용서를 받아 마음이 평안하다며 오히려 위로를 건넨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이신애는 온몸과 마음이 부서지는 듯한 극심한 고통과 괴로움에 시달린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는 신이 존재한다면 이렇게 끔찍하고 비합리적인 일이 일어나도록 방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세상에 죄로 인한 불완전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일이며,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심판하고 정의를 세울 것이라는 성경의 설명도 제대로 와닿지는 않는 듯했다.

 

복수의 악순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수를 우리가 아닌 하나님의 손에 두는 것은, 복수가 온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오히려 더 큰 공허함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억지로 묻어두고 용서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 모든 억울함과 상황을 모두 알고 있고 기억하며, 복수가 복수를 낳고 피해자가 또 다른 가해자가 되어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고자 하는 이가 계신다는 것이다.

 

박찬욱 감독 또한 인간의 근원을 건드리는 복수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오락적 요소로 사용하지 않고, 복수가 또 다른 상처와 파국을 끌어내며 죄와 죄의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없는 허망한 것임을 보여 주었다. 김윤정(2006)에 따르면, 이 세 작품을 일관하는 주제 의식은 ‘인간은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복수를 한다’는 것과 ‘그러한 복수는 악순환한다는 것’, 그리고 ‘복수에 성공해도 영혼의 구원은 없다’는 것이다.2)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피해자를 대신해 마땅한 책임을 묻고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는 공권력과 사회 공적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다. 피해자들의 억울함과 사회의 법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반성하며 사적 복수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촘촘하게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 끝내 정의가 이긴다는 말을 공허하고 허울뿐인 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1) 영화나 연극에서 시각적 요소를 배치하고 조정하는 방식 – 편집자 주.

2) 김윤정, “박찬욱 복수 3부작에서의 ‘복수’의 의미”, 「한국현대문학연구」 20(2006), 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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