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교회 거부” 사랑누리교회의 ‘민주주의 실험’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교회 민주주의 성찰’ 좌담회
“당회 아닌 운영위서 의사결정…청년·여성 뜻 반영”
“당회 중심의 귀족 정치로는 교회 밖 시민들을 예수님의 복음으로 초대하기에 역부족입니다. 교회 정치의 낙후성 탓에 노회와 총회가 세습을 비롯해 목회자의 온갖 범죄 행위에 면죄부를 주고 있지 않습니까.”
13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교회 민주주의 성찰’ 좌담회에서 당회 중심의 교회 정치를 둘러싼 지적이 이어졌다. 당회는 교회 의결 기구로 담임목사 부목사 장로들로 구성된다. 한국교회 대다수를 차지하는 장로교단 교회엔 익숙한 의결 기구다.
비판을 제기한 이는 김정태 사랑누리교회 목사였다. 사랑누리교회는 국내 양대 장로교단이자 대표적인 보수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에 소속돼 있다.
사랑누리교회에도 당회가 있다. 2002년 개척된 교회는 성장을 거듭하면서 2011년 당회를 구성했다. 다만 당회 구성 이전에 당회 권한을 제한하는 정관부터 만들기로 했다. 겉으로는 대의제를 표방하더라도 임기가 없는 항존직 당회원들에 대한 아무런 견제가 없으면 독점적 귀족 정치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단 판단에서다. 교회는 2010년 정관을 완성했는데 그중 핵심만 간추리면 이런 내용이다.
① 의사결정은 당회원이 포함된 운영위원회에서 논의한다.
② 대표성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운영위원회 의장은 담임목사로 한다.
③ 6년마다 담임목사 재신임을 정한다. 연임엔 제한이 없다.
④ 장로 역시 임기제와 6년 재신임제를 적용받는다. 연임은 1회만 가능하다.
⑤ 한 성(性)이 운영위원 60%를 넘지 않도록 한다.
교회는 항존직 당회원들의 여론 왜곡을 견제하면서도 당회원이 될 수 없는 청년 여성 새가족들의 목소리가 교회 운영에 반영되길 바랐다. 하지만 정관을 제정한 지 9년째 접어든 2019년, 교회는 예견했던 상황에 직면했다. 노회 활동에 참여한 일부 교인들이 다른 교회들과 운영 방식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운영위원회 토론 과정이 비효율적이란 주장이 나왔고 안수받은 항존직 장로들이 특권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교회 안에선 당회의 권한을 확대하자는 제안이 공론화됐다.
찬반 의견이 이곳저곳에서 표출되자 교회는 운영위원회와 당회 모두에 제동을 걸었다. 이후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뒤 기존의 ‘운영위원회 중심 체제’와 새롭게 떠오르는 ‘당회 강화론’을 공동의회에 상정했다. 투표 결과는 운영위원회 체제 유지. 10명 중 8명 이상이 이에 찬성했다. 교인들은 당회 권한 축소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장로 임기도 6년 단임으로 개정했다.
교회가 갈등을 짐작하면서도 민주주의 실험을 이어가는 이유는 뭘까. 김 목사는 “민주적 운영안이 없는 교회는 토론과 투명성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고대 유물처럼 간주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회 밖 사람들도 포용하는 교회가 되려면 민주적 운영은 불가피하다는 전제다.
“민주적 교회 운영은 이론적으론 쉬워요. 합의된 결과를 모든 회의에서 설명하고 혹여 자기 의견이 반영되지 않더라도 승복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런 기본 원리가 현실 교회에서 실현되기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종교개혁이 혁파한 목사 장로의 특권적 신분 의식이 꿈틀거리고, 교인들은 민주적 협의와 토론에 익숙하지 않아요. 자기 의견을 하나님의 뜻으로 간주하려는 독단을 비롯해 모든 사안마다 감정과 관계를 상하게 하는 미숙함도 남아 있죠.”
하지만 김 목사는 민주적 운영에서 오는 효험이 상처보다 크다고 평가했다. 그는 “민주적 교회 운영의 조건은 재신임 임기제 같은 제도로 갈음할 순 없다”며 “개별 교회 상황에 맞춰 ‘소통’을 원활히 할 방안을 찾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밖에 이날 좌담회에선 언덕교회(박창훈 김태완 목사) 예인교회(정성규 목사) 주님의보배교회(김형태 목사)의 민주적 운영 사례도 제시됐다. 언덕교회는 연말 인사총회에서 다수결로 선출된 운영위원들을 통해 의사를 결정한다. 운영위원장은 평신도가 맡고 목회자는 운영위원 중 한 사람으로 의사 결정에 참여한다. 예인교회와 주님의보배교회 역시 직분의 계급화를 경계하고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민주적 교회 운영에 힘쓰고 있다.
글·사진=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