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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에 대한 대가는 과학계에 다시 발을 들일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다. 이런 과학의 특징이 과학에 높은 신뢰를 보이는 원인이 된 것이다. 오늘날 과학에 대한 신뢰는 종교에 대한 신뢰보다 높다. 특히 젊은 세대는 기독교보다 과학을 더 신뢰한다. 정직하지 못한 기독교(교회)보다 정직한 과학의 말을 더 듣는 것이다. 정직은 여전히 우리 모두가 존중하고 추구하는 가치라 할 것이다. (본문 중)

 

성영은(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우리는 거짓말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정치가나 고위공직자 등 소위 우리 사회의 지도층들을 보면 누가 봐도 다 알 수 있는 거짓말을 태연히 한다. 요즈음 들어 정치적 이념이 극단적으로 갈리면서 거짓말하는 정도가 훨씬 심해진 것 같다. 이념만 같으면 거짓말을 해도 공직자 임용에 아무런 장애가 안 되는 분위기 때문인 듯하다. 어릴 때부터 늘 들었던 정직하게 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거짓이 가득한 사회가 되었을까? 개신교에 천주교까지 합치면 인구의 거의 1/3이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제9계명을 아는 신자들인데도 말이다. 적어도 사회 지도층의 3명 중 1명은 신자일 텐데 정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거짓말은 (자연)과학적 주제는 아니다. 설령 다룬다 해도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 대신 식물과 동물에게서 속임수나 거짓 행동들은 연구할 수 있다. 식물이나 동물은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또 반대로 먹잇감을 잡아먹기 위해 위장술이라는 속임수를 사용한다. 보호색 혹은 의태(擬態, mimesis)도 그중 하나다. 아프리카 사자가 모래색인 황갈색을, 배추 나방 애벌레가 초록색을 띠는 사례가 그것이다. 뻐꾸기가 다른 새의 둥지에 자신의 알을 낳는 탁란도 속임수의 일종이다. 그리고 동물 사회에서 거짓 행동으로 서로 속인다는 연구 결과들도 많다.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죽은 체하거나 다른 동물의 행동이나 신호나 울음소리를 흉내 내어 먹이를 유인하여 잡아먹는 것이다. 침팬지는 먹이를 숨겨두고 자기만 몰래 먹기 위해 동료들에게는 가짜 장소를 알려주기도 한다고 한다. 식물이나 동물이 이렇게 속임수를 쓰고 거짓 행동을 하는 이유는 생존을 위해서이다. 먹고 먹히지 않기 위해, 그리고 살아남아 번성하기 위해 속이는 것이다.

 

이런 식물과 동물에서의 연구 결과를 우리 인간에게 적용하여 사람도 생존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는 주장이 있다. 유아 때 거짓 행동을 하고 어릴 때부터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잘 아는 사실이다. 또 사람은 하루에 200번 이상 거짓말을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거짓말을 통해 더 좋은 생존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 말은 거짓말로 자신이 더 인정받고 더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말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학력, 경력, 재산, 자녀 문제 등 자신의 과거를 위조하고 말과 행동을 거짓으로 위장하면 더 대단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명예와 부와 같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 주장이 잘 통하는 사회처럼 보인다. 그러면 속이고 속는 이런 사회가 정말 정상적일까?

 

 

동물의 세계도 위장이나 거짓 행동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라 한다. 『파브르 곤충기』의 저자 파브르는 생존에 유리하게 위장하는 의태라는 속임도 일부 동물에게서만 보인다고 한다. 그는 흙색 밭의 화려한 새나 빨강과 노랑의 원색 애벌레 등 예외가 더 많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멀리서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색을 띠고 살아가는 것이다. 비록 식물과 동물의 세계 안에 속임과 거짓 행동들이 있다고 해도 여전히 아름다운 색깔의 옷을 입고 열심히 살아가는 생명체들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파브르는 남을 속이려 하지 않는 이런 생명체들이 생존하지 못하거나 번성하지 못하는 일을 결코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인간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과학이 비교적 짧은 시간에 과학 시대로 세상을 주도하게 된 원인 중 중요한 것이 거짓 없이 진실을 추구하려는 학문적 특성 때문이다. 과학은 자연 속에 들어 있는 진실(혹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려 한다. 과학은 원칙적으로 거짓이 들어오기 어려운 체계를 갖추고 있다. 반복적인 관찰과 실험을 통해 확인하고 다른 사람의 결과를 검증한다. 논문으로 발표할 때 사용한 약품의 정보나 장비의 모델까지 밝혀야 할 정도로 정직함을 요구한다. 남의 결과를 베끼거나 도용하는 것은 엄격히 금한다. 실험과 관찰 과정을 의무적으로 연구 노트로 남겨 수년간 보관해야 한다. 간혹 거짓이 있기는 하지만 얼마 못 가서 거의 들통이 나게 되어 있다. 거짓말에 대한 대가는 과학계에 다시 발을 들일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다. 이런 과학의 특징이 과학에 높은 신뢰를 보이는 원인이 된 것이다. 오늘날 과학에 대한 신뢰는 종교에 대한 신뢰보다 높다. 특히 젊은 세대는 기독교보다 과학을 더 신뢰한다. 정직하지 못한 기독교(교회)보다 정직한 과학의 말을 더 듣는 것이다. 정직은 여전히 우리 모두가 존중하고 추구하는 가치라 할 것이다.

 

거짓말은 사회 공동체의 신뢰를 파괴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심지어 거짓말하는 자신도 파괴한다. 그러니 우리 사회가 정직한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정직하면 손해를 보는데 어떻게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거짓말하지 않을 용기가 어디서 나올 수 있을까? 우리 신앙이 그 용기를 주는데 그 일이 쉽지 않다. 그래도 우리가 말하는 거짓말을 다 보고 듣고 있는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가 행한 거짓이 다 밝혀질 심판의 날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것이 거짓말이 판치는 사회에 신자가 필요한 이유이다. 신자들이 정직한 사람이 이익을 보는 사회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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