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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避靜)은 ‘세상을 떠나 고요한 생각에 머문다’라는 뜻의 피세정념(避世靜念)의 줄임말입니다. 영어의 본래 뜻은 ‘물러나다’라는 뜻인데, 여기서 물러난다는 것은 ‘무엇으로부터’ 물러난다는 뜻과 함께 ‘무엇을 위한(향한)’ 물러남이라는 이중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피정은 여가 생활과 다르게, 우리의 일상과 스트레스, 문제들로부터 물러나는 것은 물론이고, 동시에 하나님 안에 깊게 침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 중)

 

김홍일(성공회 사제, 한국샬렘영성훈련원)

 

피정이란 무엇인가

 

현대인들은 지나치게 바쁜 삶을 살며 하루 종일 온갖 종류의 소음에 시달립니다. 더 빠른 것, 더 많은 것을 향한 추구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세상에서 ‘멈춤’과 ‘물러섬’이라는 말은 반문화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생존을 위한 경쟁과 분주한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종종 우리가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왜 그 길을 가고 있는지 등의 근본적인 질문들을 맞닥뜨리곤 합니다. 그 질문을 마주하는 사람들에게는 고독과 침묵을 향한 공간적 시간적 갈망들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피정을 삶의 리듬에서 필수적인 부분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피정’(避靜)은 낯선 단어입니다.

 

‘피정’이란 ‘수련회’ 혹은 ‘퇴수회’ 등으로 번역되어 사용되는 영어 단어 ‘리트릿’(retreat)의 다른 번역입니다. 피정(避靜)은 ‘세상을 떠나 고요한 생각에 머문다’라는 뜻의 피세정념(避世靜念)의 줄임말입니다. 영어의 본래 뜻은 ‘물러나다’라는 뜻인데, 여기서 물러난다는 것은 ‘무엇으로부터’ 물러난다는 뜻과 함께 ‘무엇을 위한(향한)’ 물러남이라는 이중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피정은 여가 생활과 다르게, 우리의 일상과 스트레스, 문제들로부터 물러나는 것은 물론이고, 동시에 하나님 안에 깊게 침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안에 깊이 침잠하는 시간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들 삶과 활동 속에 숨겨져 묻힌 보물들과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만나게 되며, 가진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왜 피정을 떠나는가?

 

사람들에게는 피정을 떠나는 저마다의 이유들이 있습니다.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예기치 못한 상실감을 받아들여야 할 때, 많은 일들과 업무로 인한 소진과 탈진으로 멈추어 서야 할 때, 그 외에도 다양한 이유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를 일상에서 벗어나 피정으로 향하게 하는 가장 깊은 동인(動因)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입니다, 그러나 우리 내면에서 이러한 갈망을 느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훨씬 더 갈망하고 계시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실제로 성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할 때 ‘갈망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당신의 삶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셨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른 아침 일어나 광야로 나가 홀로 기도하셨고(막 1:35) 열두 제자의 파송과 세례 요한의 죽음 후에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막 6:30, 31).

 

 

무엇이 피정을 만드는가?

 

피정은 무엇보다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하여’ 듣거나 공부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피정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듯 그리스도께 온통 집중하는 일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피정 중에는 성서 외에 다른 독서는 피할 것을 권하며, 피정 중에 지키는 ‘침묵’과 ‘고요함’은 그리스도를 향한 집중을 위한 중요한 조건이 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외적 침묵은 더욱 깊은 내적 침묵을 위한 시작 단계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침묵 가운데서 자신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경험하게 되고, 여리고 작은 소리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할 수 있게 됩니다. 피정 시간이 소중하게 채워지기 위해서는, 몸의 휴식, 그리고 일상에서의 걱정들을 내려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충분한 휴식을 통한 몸의 회복과 근심이나 걱정거리들, 집착을 떠난 평상심의 유지는 좋은 피정의 중요한 조건이 됩니다.

 

피정을 위한 준비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처음 피정을 하는 사람은 피정을 인도하거나 피정 과정을 동행하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피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특별히 개인적으로 피정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피정 센터에 있는 수도자들이거나, 성직자 혹은 경험 있는 교우들 가운데 개인 피정을 도와주고 피정 과정에 함께 상담을 하여줄 사람과 미리 약속을 하고 피정에 참여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룹 피정이나, 프로그램화된 피정의 경우에는 인도자가 있으므로 인도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피정을 하기 전에 준비하여야 할 중요한 사항 가운데 한 가지는 자신의 피정 욕구에 맞는 피정 유형과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다양한 피정의 유형과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어떤 피정이 자신에게 필요한지를 파악하고 선택하여야 합니다. 피정을 하는 동안에는 편안한 복장과 산책을 위한 신발, 성서와 필기도구를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집을 떠나지 못하고 일상생활을 하면서 피정을 하고자 한다면 기도에 집중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정기적인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야훼여, 내 마음은 교만하지 않으며,

내 눈 높은 데를 보지 않사옵니다.

나 거창한 길을 좇지 아니하고,

주제넘게 놀라운 일을 꿈꾸지도 않사옵니다.

차라리 내 마음 차분히 가라앉혀,

젖 떨어진 어린 아기, 어미 품에 안긴 듯이

내 마음 평온합니다.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희망을 야훼께 두어라. (시편 131:3-4)

 

개인 피정을 위한 안내

1. 하나님께 자신을 열어드리며 과거에 가졌던 태도를 고집하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자신의 기도와 하나님의 뜻을 향한 갈망에 계속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2. 피정의 인도자는 성령 하나님입니다. 자신 안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3. 침묵은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첫 번째 언어를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로는 좀처럼 표현할 수 없는 그 언어를 듣는 우리의 능력이 깊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4.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정직함은 경청을 위한 가장 좋은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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