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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붕괴시켜야 한다는 ‘북한 붕괴론’, 북한이 저절로 붕괴될 것이라는 ‘북한 붕괴론’은 1948년 이후 한국의 주된 대북 정책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한국이 북한을 붕괴시키지도 못했고, 북한이 스스로 붕괴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북한은 유일 체제, 세습 체제, 핵보유국 체제를 더욱 강화했고, 남북 관계는 완전히 파탄이 났으며, 분단 80년의 시간이 헛되이 낭비되었다.  (본문 중)

 

배기찬1)

 

북한에 대한 두 생각: ‘현실적 사고’와 ‘희망적 사고’

 

우리는 어떤 현상에 대해 현실적 사고를 할 수도 있고,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를 할 수도 있다. 현실적 사고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객관적인 사실과 증거에 기초해 생각하는 것이라면, 희망적 사고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결과를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보다 높다고 믿고, 객관적인 정보나 사실을 자신의 소망에 맞추어, 왜곡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남북 관계에서 이러한 사례의 첫 번째는 1948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조선’)의 수립에서 비롯되었다. 1948년 8월 15일에 수립된 대한민국은 헌법 제3조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규정하여 38선 이북에 존재하는, 소련의 점령지였던 북한을 무시했다. 이어서 9월 9일에 수립된 ‘조선’은 헌법 103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부는 서울시다”고 규정하여 대한민국을 부정했다. 둘 다 ‘당위’를 ‘존재’에 우선해 현실적 사고가 아니라 희망적 사고를 한 것이다.

 

두 번째로, 무력 통일을 추구한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전면 남침 또한 희망적 사고의 결과였다. 북한은 미국이 개입하지 않거나 개입하기 전에 남한 전체를 점령할 수 있다는 ‘희망적 사고’를 했다. 미군이 중심이 된 유엔군이 참전한 뒤, 미국과 이승만 대통령은 북진하면 통일할 수 있다고 보았고, 중국은 개입하지 않거나 개입해도 미국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희망적 사고를 했다.

 

세 번째로, 1950년대 이후 남과 북이 각각 자신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국가로 보고 상대를 괴뢰로 지칭하는 등 서로의 국가 실체를 부정한 것이다, 그 결과 통일은 ‘남조선 혁명’ 또는 ‘북한 붕괴’로 가능하다고 본 것도 희망적 사고의 결과였다. 이러한 희망적 사고는 1991년 9월 17일 한국과 ‘조선’이 국가들의 조직체인 국제연합에 동시에 가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었다. 왜냐하면 각각은 서로의 헌법과 당규, 법률 등에 입각해 서로의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희망적 사고인 ‘북한 붕괴론’의 문제점

 

희망적 사고의 대표적인 예가 북한 붕괴론이다. 1990년대 초 독일 통일과 소련·동구 공산 체제 붕괴 이후 지금까지 북한 붕괴론은 크게 네 차례 제기되었다. 첫째는 1990년 독일 통일 이후로 노태우 정부 후반기이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루마니아 독재 정권의 몰락과 독일통일을 염두에 두고 북한도 곧 붕괴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 결과 노태우 정부의 대북 강경파들은 희망적 사고에 입각해 교차 승인을 부정하는 등 북한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는 정책을 추진했다.

 

둘째는 1994년 7월 김일성의 사망 이후 김정일의 권력이 공고해지는 시기까지인데, 김영삼 정부 중반기 이후이다. 김영삼 정부는 김일성의 사망으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성, 고난의 행군으로 상징되는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 한국의 소련·중국과의 국교 수립으로 인한 외교적 고립, 북한 주민의 대량 탈북과 황장엽 비서의 망명 등을 북한 붕괴의 징조로 보았고, 모든 대북정책을 북한 붕괴에 초점을 맞추었다.

 

 

셋째는 2008년 김정일의 건강 악화부터 김정은의 권력 기반 강화까지인데,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이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 체제의 붕괴가 임박했다고 믿고 대북 제재와 압박에 주력하면서 북한 붕괴를 ‘기다리는 전략’으로 일관했고, ‘통일 항아리론’을 펼쳤다. 박근혜 정부도 북한 체제에 심각한 균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고, ‘통일 대박론’을 주창하고 통일준비위원회를 가동했다.

 

넷째는 2022년 이후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과 함께 김주애가 등장하는 시기인데, 윤석열 정부 시기이다. 윤 대통령은 2023년 1월 통일부 업무 보고에서 “통일은 갑자기 찾아오겠죠. 그러나 준비된 경우에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며 북한 붕괴를 전제한 대북 정책을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통일부의 역할을 남북의 화해와 협력, 평화와 번영이 아니라, (우리가 헌법 제3조에 의해 실효적으로 지배해야 하지만 반국가 단체인 북한 때문에)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하지 않고 있는 그 지역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다루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연구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북한을 붕괴시켜야 한다는 ‘북한 붕괴론’, 북한이 저절로 붕괴될 것이라는 ‘북한 붕괴론’은 1948년 이후 한국의 주된 대북 정책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한국이 북한을 붕괴시키지도 못했고, 북한이 스스로 붕괴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북한은 유일 체제, 세습 체제, 핵보유국 체제를 더욱 강화했고, 남북 관계는 완전히 파탄이 났으며, 분단 80년의 시간이 헛되이 낭비되었다. 반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와 같은 분단을 경험한 독일은 분단의 냉엄한 현실, 미국과 소련이 독일에 미치는 영향력, 유럽의 역사에 대한 냉철한 인식 속에서 ‘희망적 사고’가 아니라 ‘현실적 사고’를 했다. 그 결과 독일은 탈냉전이라는, 짧게 열린 역사의 시간을 놓치지 않고 움켜쥐었으며, 분단 45년 만에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고 유럽 연합의 중심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북한 붕괴론은 한국 정부의 플랜B, 플랜C로 준비될 수는 있어도, 결코 플랜A로서 추구되어서는 안 된다.

 

트럼프의 재집권과 대북 정책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조선’의 최고 지도자와 정상 회담을 전개한 트럼프가 다시 대선에서 승리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진행된 두 차례의 정상 회담 뒤 5년이 흐른 지금, 국제 관계는 ‘탈’탈냉전, 즉 ‘신’냉전 체제로 크게 변화되었다. 미‧중 간의 패권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중국과 러시아는 준동맹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동맹 관계를 맺은 ‘조선’은 러시아에 군사 무기만이 아니라 1만 명 이상의 군대를 파병했다.

 

대통령 선거 기간 중에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하루, 24시간 안에 해결”하겠다고 주장한 트럼프는 북한에 대해, “나는 북한 김정은과 잘 지냈다. 그는 핵무기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내가 대통령이었을 당시 여러분은 결코 위험에 처할 일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집권했던 5년 전과 비교해 국제 관계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트럼프가 러시아 및 북한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트럼프의 희망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현실주의자라는 점에서 데탕트를 추구한 닉슨(키신저)처럼, 바이든 정부와는 다르게 러시아 및 북한과 대화와 협상을 전개할 수 있다. 이때 트럼프가 추구할 수 있는 대북 정책은 ‘조선’과의 외교 관계 수립, 비핵화가 아닌 비확산과 핵 동결이 될 수도 있다. 만일 윤석열 정부가 지난 시기의 대북, 대러시아 정책을 계속한다면 한국의 대북·외교 정책은 닉슨 독트린 이후의 박정희 정부처럼 심각한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

 

한국(윤석열) 정부는 더 이상 희망과 이념에 기초한 대북·외교 정책이 아니라 현실과 국익에 입각한 정책을 전개해야 한다. 윤 정부가 북한 붕괴론, 자유주의 이념론이 아니라, 북한의 국가적 실체, 북한의 핵무장 실체, 러시아의 국가적 특성을 현실적으로 냉혹하게 인식하고 정책을 전개할 때 평화를 이루고 국익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1) 평화문명원 원장,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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