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2-3회 발행되는 <좋은나무>글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시려면(무료),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여 ‘친구추가’를 해주시고

지인에게 ‘공유’하여 기윤실 <좋은나무>를 소개해주세요

 

카카오톡으로 <좋은나무> 구독하기

 <좋은나무> 뉴스레터 구독하기

‘표류하는 것’과 ‘흐르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표류하는 것은 목표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방향 없이 떠도는 것이고, 흐르는 것은 목표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흐름에 따라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구나 성실하게 따라가고 있는 바람직한 목표를 따라가지 못하고 표류하던 남자 김씨와 여자 김씨는 자발적이면서도 비자발적으로 고립되었다. (본문 중)

 

최주리(청년활동가)

 

여기 두 명의 김씨가 있다

 

남자 김씨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 한강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다행히도(혹은 불행히도) 밤섬에서 눈을 뜬다. 밤섬은 여의도와 마포구 사이 한강의 가운데에 있는 무인도이자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자연보호구역이다. 밤섬 위의 서강대교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서울 한복판에서 무인도에 버려지다니.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핸드폰으로 119에 신고를 하지만 믿어주질 않고, 지나가는 유람선의 사람들에게 구조요청을 해보지만 영문을 모른 그들은 해맑게 인사를 건넬 뿐이다. 이왕 죽기로 했으니 다시 한 번 실수가 없기를 바라며 넥타이로 목을 매지만, 갑작스러운 배탈이 이마저 방해한다. 남자 김씨는 죽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일단 어떻게든 섬에서의 생활에 적응해보기로 한다.

 

그리고 그를 우연히 보게 된 여자 김씨가 있다. 건너편 한강 변에 자리한 아파트의 작은 방에서 히키코모리1)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규칙적인 기상과 취침, 제자리걸음으로 만보기를 채우는 꾸준한 운동, 정해진 칼로리의 식사로 나름의 루틴을 지키고 있다. 사람으로 가득 찬 도시가 텅 비게 되는 민방위 훈련 때 도시 곳곳의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는 그는 사진을 찍다 우연히 밤섬에 살고 있는 ‘외계인’(남자 김씨)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 <김씨 표류기> | 감독: 이해준 | 116분

 

여기 두 명의 표류하는 인생이 있다

 

남자 김씨는 엄청난 빚을 졌고 여자 친구마저 자신을 떠났다. 가진 건 없고 갚아야 할 것만 가득 남은 세상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죽는 것마저 맘대로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무인도 생활에서 우연히 짜파게티 수프를 발견하게 되고 짜장면을 만들어 먹겠다는 새로운 ’삶의 목표‘가 생긴다. 이전 세상에서처럼 집을 산다거나, 좋은 직장을 얻는다거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거나, 시험에 합격하겠다는 ’중요하고 진지한 목표‘는 아니지만, 그에게는 사활을 건 목표가 된다.

 

여자 김씨는 3년째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고 있다. 얼굴의 흉터 때문에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그는 스스로를 작은 방 안에 가두었다. 다른 사람의 사진을 가져다가 멋진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미니 홈피를 꾸미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남자 김씨의 삶을 지켜보게 되고, 새똥을 모아 작물을 기르며 어떤 목표를 위해 애쓰는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결국 그는 남자 김씨가 모래사장에 “HELP”라고 써놓은 구조 요청에 대한 답장으로 유리병에 “HELLO”라고 쓴 쪽지를 넣어 섬에 던진다. 놀라운 우연으로 유리병이 섬에 닿게 되고 이를 남자 김씨가 발견하게 된다.

 

영화 <김씨 표류기> 스틸컷.

 

‘표류하는 것’과 ‘흐르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표류하는 것은 목표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방향 없이 떠도는 것이고, 흐르는 것은 목표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흐름에 따라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구나 성실하게 따라가고 있는 바람직한 목표를 따라가지 못하고 표류하던 남자 김씨와 여자 김씨는 자발적이면서도 비자발적으로 고립되었다. 그들은 고립된 자신만의 세상에서 발견한 목표를 따라 진지하고도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무인도에서 새똥에 있는 옥수수 낱알을 길러 짜장면을 만들어 먹는다니? 그런 그의 목표를 응원하기 위해 무인도에 쪽지를 넣은 유리병을 던진다니? 하지만 그들의 황당하면서도 진지한 모습을 마냥 재미있고 가벼운 코미디로 보기에는 마음 한 켠에 무언가 차인다.

 

영화 <김씨 표류기> 스틸컷.

 

여기 보이지 않는 곳에 사람이 있다

 

이 영화가 개봉한 지 15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고립과 외로움, 무기력 등의 문제가 여전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사회 활동이 줄어들어 취약 상태에 처한 19-34세의 고립 청년은 전체 청년의 5%인 54만 명이다. 이 중 집이나 방에서 나오지 않은 채 생활하는 은둔 청년은 2만 명이다.2) 통계청 국가 통계포털의 조사에 따르면 비경제활동 인구 중 ‘그냥 쉬었음’이라고 답한 20-30대가 70만 명에 육박했다. 이는 육아, 가사, 학업, 취업 준비, 진학 준비, 질병 및 장애로 인한 쉼 등에도 해당하지 않는 인구를 뜻한다.3) 그렇다면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떻게 ‘쉬고’ 있는 것일까?

 

최근 무업 기간을 보내는 청년들을 위한 커뮤니티인 니트컴퍼니, 은둔 청년과 그 가족들을 위한 교육과 자립 프로그램,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는 안무서운회사 등의 단체를 비롯하여 지자체의 다양한 정책들이 고립 청년들을 돕고 있다. 그러나 도움이 필요한 청년들의 규모에 비해 실제로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지원을 받는 청년들의 숫자는 적고, 지원이 필요한 당사자에게 닿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누군가에게는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다짐조차도 너무나 큰 장벽이다.

 

이는 현재 청년 세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동, 청소년부터 노인 세대까지 우리나라 전반적으로 크고 작게 고립된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아 실체를 체감하기 힘들다는 것이 어려운 지점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1/5인 천만 명이 살고 있고, 출퇴근길 대중교통에서는 불쾌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가깝게 붙어 서게 되는 서울이지만, 서울 한복판의 밤섬에도 한강 변 아파트에도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곳에 자의와 타의로 고립되어 있는 이들이 있다.

 

영화 <김씨 표류기> 스틸컷.

 

여기 김씨들의 표류기가 끝난다

 

남자 김씨는 무인도에서의 고립된 생활이 바깥세상에서의 생활보다 진정 자유로웠고 살아야 할 이유가 충만했다. 그러다 한강에 내린 폭우로 인해 한강 정화 작업을 하러 온 공익근무요원들이 남자 김씨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끝까지 반항하지만 결국 바깥세상으로 끌려 나오게 된다. 또 다시 모든 것을 잃고 살아갈 이유가 없는 세상에 버려지게 된 그는 이번에야말로 죽어야 할 때라고 생각하며 63빌딩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여자 김씨는 스스로 통제할 수 있고 누구도 그를 공격하지 않는 방 안에서 가짜 삶을 꾸미며 위태로운 자유와 안전을 누린다. 방 안에서 카메라로 밤섬을 살피는 그는 해변에 만든 글자와 유리병의 쪽지로 소통하며 남자 김씨의 짜장면 만들어 먹기 프로젝트를 응원한다. 그러다 밤섬에서 끌려 나와 버스를 타는 남자 김씨를 본 그는 평소라면 절대 나오지 않았을 환한 낮에 얼굴도 가리지 않은 채로 집에서 뛰쳐나와 남자 김씨에게 달려간다.

 

영화 <김씨 표류기> 스틸컷.

 

영화의 마지막 장면. 남자 김씨와 여자 김씨는 결국 만나게 되었을까? 둘이 만나게 되면 무슨 말을 나눌 수 있을까? 남자 김씨는 유보된 죽음을 맞이했을까? 여자 김씨는 그를 말릴 수 있었을까? 둘의 만남만으로 서로의 외로움과 고립, 사회와의 단절이 해결될 리는 만무하다. 영화는 표류하는 인생을 무시하거나 다그치거나 교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안전하고 편한 경계선을 넘어서 무섭지만 새로운 세상으로 내디딘 한 발을 주목할 뿐이다. 이제 그들은 결코 이전의 표류하는 인생이 아니다.

 


1) 사회적 교류 없이 집에만 있는 사람-편집자 주.

2) 김성아, “고립·은둔 청년 현황과 지원 방안”, 「보건복지포럼」 319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3, 6-20.

3) 통계청, “연령/ 활동 상태별(쉬었음) 비경제활동 인구”, 「경제활동인구조사」, 2024.

 

* <좋은나무> 글을 다른 매체에 게시하시려면 저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02-794-6200)으로 연락해 주세요.

* 게시하실 때는 다음과 같이 표기하셔야합니다.
(예시) 이 글은 기윤실 <좋은나무>의 기사를 허락을 받고 전재한 것입니다. https://cemk.org/26627/ (전재 글의 글의 주소 표시)

 

<좋은나무>글이 유익하셨나요?  

발간되는 글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시려면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여 ‘친구추가’를 해주시고

지인에게 ‘공유’하여 기윤실 <좋은나무>를 소개해주세요.

카카오톡으로 <좋은나무> 구독하기

 <좋은나무> 뉴스레터 구독하기

<좋은나무>에 문의·제안하기

문의나 제안, 글에 대한 피드백을 원하시면 아래의 버튼을 클릭해주세요.
편집위원과 필자에게 전달됩니다.
_

<좋은나무> 카카오페이 후원 창구가 오픈되었습니다.

카카오페이로 <좋은나무> 원고료·구독료를 손쉽게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_

 


관련 글들

2024.11.11

: 광장이 광야가 될 때(홍종락)

자세히 보기
2024.10.17

한강, 한국 문학의 새 역사를 쓰다(이정일)

자세히 보기
2024.10.16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민형)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