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을 예수에게”(1980)와 “10‧27 한국 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배덕만)

배덕만(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원장)

지난 10월 27일 종교개혁 주일, “10‧27 한국 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가 서울특별시 광화문, 서울시청, 여의도 일대에서 개최되었다. 한국교회총연합, 한국교회연합, 한국기독교총연합 같은 연합 기구, 예장 통합, 예장 합동, 예장 백석, 예장 합신, 예장 고신, 예장 대신, 기침, 기성 등 주요 교단, 그리고 여의도순복음교회, 사랑의교회, 온누리교회 등 대형 교회를 포함한 전국의 수많은 교회들이 참여했다. 조직위원회는 현장과 온라인에 각각 110만 명과 100만 명이 참여했다고 발표했으나, 경찰은 232,500명, 「뉴스앤조이」는 220,000명으로 추산했다.

이 집회를 알리는 포스터는 집회 명칭을 “10‧27 악법 저지를 위한 2백만 연합예배 찬양 & 큰 기도회”라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악법은 포괄적 차별 금지법이며, 집회가 선정한 100대 기도 제목과 집회 당일에 발표한 선언문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준비 측에선 이 집회가 정치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강변했지만, 포괄적 차별 금지법을 저지할 목적으로 200만 명이 동원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종교 집회 형식을 빌린 정치 집회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한편, 이 집회를 둘러싸고 한국 교회가 양분되었다. 대회를 주도한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는 집회 반대자나 불참자를 사탄, 마귀, 주사파, 이완용이라고 비난했고, 기윤실을 포함한 여러 기관과 교회, 개인들은 이 집회가 비성경적‧정치적이라고 비판하며 불참했기 때문이다.

이 집회는 현재 한국 교회에서 동성애 문제가 가장 뜨거운 쟁점이며, 분열과 갈등의 일차적 원인임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그렇다면 이 집회는 장차 한국 교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될까? 현재로선 정확하게 평가하고 예측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우려와 관심을 포기할 수도 없다. 이를 위해, 한국 교회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 교회에서 비슷한 사례를 살펴보자.

“워싱턴을 예수에게” 대회(Washington for Jesus, 1980)

1980년 4원 29일, 워싱턴 D. C. 내셔널 몰(the National Mall)에 20만 명이 넘는 기독교인들이 모였다. 이 집회는 버지니아비치(Virginia Beach)의 록처치(Rock Church)의 설립자이자 오순절파 목사인 존 기메네즈(John Gimenez)와 세계 최대의 기독교 방송국 CBN의 설립자이며 700클럽 진행자로 유명한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의 주도로 성사되었다. 팻 로버트슨, 데모스 쉐이커리언(Demos Shakarian), 마가렛 무디(Margaret Moody), 빈슨 사이난(Vinson Synan), 찰스 스탠리(Charles Stanley), 제이 오 패터슨(J. O. Patterson) 같은 저명한 오순절-은사주의자들이 참여했으며, 팻 로버트슨의 설득으로 CCC 설립자 빌 브라이트(Bill Bright)가 공동 의장으로 합류했고, 기독교 우파를 대표하는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의 대표이자 토마스로드침례교회 설립자인 제리 폴웰(Jerry Falwell)도 오순절-은사주의에 대한 개인적 편견을 극복하고 합류했다.

이 대회는 “비정치적‧애국적 종교 행사”로 선전되었지만, 대회 목적을 천명한 “기독교 선언”(A Christian Declaration)은 정치적 색채를 명백하게 드러냈다. 미국에서 도덕적 타락을 포괄적으로 언급한 후, 낙태, 공립학교에서 신앙 표현 금지, 군사력 약화, 대외 정책의 실패, 정부의 종교적 차별 등에 대해 맹렬히 비판한 것이다. 특히, 대통령과 국회에 보낸 청원서에서, “연방 정부가 위험할 수준으로 비대해져서, 국민들의 양심과 종교적 권리를 포함하여 미국인들의 가장 기본적인 여러 자유들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라고 경고했다. 대회 연사들도 대법원 결정들을 비판했으며, 낙태와 동성애를 용납하면 하나님이 소련을 통해 미국을 징벌하실 것이라고 경고했다.

본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이미지 입니다.

세심하게 조직된 이 집회는 12시간 동안 진행되었는데, 주요 종교 방송사들(CBN, PTL, TBN)을 통해 전국에 중계되었다. 20여 명의 저명한 연사들이 3분-10분씩 연설했으며, 중간중간 교회 성가대와 유명한 가수들이 공연을 이어갔다. 특히, 16명의 하원 의원들이 참석했는데, 정치가로서 유일하게 연사로 초청된 지미 카터(Jimmy Carter)는 자신과 이 대회를 후원하는 종교 지도자들 간의 간격을 인지하고 초청을 거절했다.

참여 인원과 영향에 대해선 의견이 다양했다. 지지자들은 500,000명-750,000명이 참석했다고 주장했지만, 주요 신문들은 참석자 수를 200,000명 정도로 추산했다. 그럼에도 이 수는 전년도에 요한 바오로 2세를 환영하러 나온 인파보다 많았다. 이런 숫자에 고무되어 프로듀서 로이드 왓슨(Lloyd Watson)은 이날 방송이 “역사상 최대의 기독교 방송 행사”였다고 자랑했고, 팻 로버트슨도 이 대회를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 중 하나였다”고 평가했다.

NCC를 포함한 20여 개 주요 기독교 단체들은 이 대회가 명백히 정치적이고, 정부를 기독교화하려는 시도라고 강력히 비판했지만, 기독교 우파의 지도자들은 같은 기간 동안 동성애, 낙태, 십 대 임신, 마약, 이혼율 증가, 여권 운동 등에 반대하면서 긴밀히 연합했다. 이 대회는 보수 기독교 내에서 “정치적 행동주의 발흥”의 선구자로 간주되고 있으며,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W. 부시 같은 공화당 대선 후보들 뒤에 기독교 우파가 결집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워싱턴을 예수에게” 집회에 비추어 본 10‧27 집회

두 집회는 여러 면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무엇보다, 양국의 보수 기독교인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상징적 광장에 대규모로 집결했다. 이들은 오랫동안 정교분리를 고수하면서 정치적 발언과 집단행동을 자제했지만, 자국 내에서 기득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직접 단체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로써 이들은 영혼 구원과 다른 세계로의 구원을 신봉하며 비정치적 태도를 견지하던 자신들의 과거와 단절하고, 현세적 쟁점에 민감히 반응하는 극우적 정치 세력으로 변모했다.

둘째, 보수적 쟁점을 중심으로 정부를 압박하는 단체 행동에 나섬으로써. 양국의 기독교는 보수와 진보로 확연하게 양분되었다. 이들은 정부를 압박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욕망을 해결할 뿐 아니라, 자신에게 동조하지 않는 이들을 악마화하고 적대화 함으로써, 동시에 이들의 극우적 행보에 반감을 갖는 이들이 직간접적으로 반대를 표명함으로써. 양국의 교회는 극심한 갈등과 분열의 터널을 통과하게 되었다.

셋째, 보수적 기독교인들이 대규모로 광장에 집결하여 예배와 기도 형식으로 극우적 욕망을 분출함으로써, 교회의 이미지가 심하게 훼손되고 사회적 평판이 추락했다. 사회가 인권, 성, 민주, 공정, 평등, 다양성, 공생 등에 대해 개방적ㆍ포용적ㆍ관용적 태도를 중시하는 상황에서, 보수적 개신교는 정반대 방향으로 퇴화했다. 정직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자기 개혁을 추구하는 대신, 약자들에 대한 혐오와 비난에 집착함으로써, 개혁의 골든 타임을 놓치고, 비난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양국 교회의 미래가 암울한 이유다.

따라서, 이런 혼탁하고 위태로운 상황에서, 한국 교회는 광장 대신 성문 밖, 광야, 골방에서 자신을 정직히 성찰하고 시대를 냉철히 관찰해야 한다. 자신이 부패의 주범이 되어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상태에서 타자를 정죄하며 애국과 윤리를 호소하는 것은 난센스요 코미디다. 이제는 광장에 집결해서 태극기를 흔들고 타자를 정죄할수록, 한국 교회는 무저갱으로 침몰할 뿐이다. 이제야말로 한국 교회가 골방에서 몸에 재를 뿌리고 금식하며, 자신의 오만과 믿음 없음을 회개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