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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다 더 세상적인 방식으로 세상에서 앞서려는 교회의 욕망. 우리 쪽 사람을 세상의 정점에 올려놓아 세상을 뜻대로 부리려는 생각. 교회는 역사 속에서 이 생각에 많이 넘어갔다. (조금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교회가 오랫동안 명문대 선교에 열심을 쏟았던 것도, 교회가 경영학과 심리학의 여러 기법을 열심히 배워서 활용하려 했던 것도, 그 배후에 혹시 비슷한 생각이 놓여 있지는 않을까. (본문 중)
홍종락(작가, 번역가)
이 연재에서 다루는 웹툰 중에는 내가 적극 추천하는 작품도 있지만, 특정한 장면이나 주제 등에 꽂혀서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용되는’ 웹툰도 있다. 그런 작품의 경우에는 꼭 보시라는 뜻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거,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린다. 이 글에서 다루는 웹툰 <캐슬>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이것은 작품을 폄하하는 말이 아니다. 액션물이자 누아르인 이 작품은 작화와 구성, 캐릭터의 매력 면에서 훌륭하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킬러가 한국으로 돌아와 어둠의 세계를 지배하는 조직 ‘캐슬’의 지배자에게 도전하는 복수극이라는 특성상, 킬러와 폭력배들의 싸움과 대결, 음모가 내용의 뼈대를 이룬다. 이런 특성을 가진 작품을 ‘좋은나무’에 싣는 글에서 대놓고 추천하기는 좀 그렇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작품이기에 던질 수 있는 화두가 있는 법, 오늘은 그 얘기를 해볼까 한다.
그의 다른 점
주인공 김신. 딱 봐도 주인공임을 알 수 있는 수려한 외모. 뛰어난 두뇌와 싸움 실력.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적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다. 그는 싸움꾼, 킬러답지 않게 의리를 중시하고 동료를 아낀다. 위기의 상황에서는 주저 없이 자기를 던질 줄 알고, 동료들을 귀하게 여긴다. 많은 이들이 김신에게 ‘감화되어’ 그의 밑으로 들어온다.
그를 제거하기 원하는 적의 평가에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분석은 그가 몸담았던 조직 이스크라의 수장 리사가 그를 처치할 방안을 제시하는 대목에서 등장한다. 최고의 킬러/싸움꾼 5명이 특별히 김신의 목숨을 노리고 달려드는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를 리사는 이렇게 예견한다.
김신은 뛰어난 전술가니 당연히 전원에 둘러싸이는 최악의 시나리오엔 대비를 했겠지만,
자기 사람들의 희생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특유의 성정이,
자신을 혹사시키는 수를 쓰도록 할 것이 자명해요.
아마도 그 남자는, 그 오인방을 전부 직접 상대하려 들 겁니다.
이건 명백한 오만.
무르기 때문에 오만하고 강경한 선택을 한다. 정말 아이러니한 인물.
전술적으로는 예리하고 차가운 평가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보자면 그가 얼마나 ‘간지나는’ 인물인지 알리는 찬사로 들릴 수도 있다. 평범한 상남자나 할 일을 조직의 리더가 한다고 폄하하는 근거로 제시되는 김신의 성향은, 사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서 최고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힘이기도 하다. 리사의 분석을 들은 야쿠자 보스의 다음 답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철혈의 세계에서 한 몸 던져 정점에 이른 자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맨 앞에서 싸우는 것보다,
마음을 동요시키는 것은 없다네.
이런 김신이라면, 그가 하는 일은 뭔가 다르지 않을까? 믿고 따라가도 되는 리더 아닐까?
그의 우선순위
뒷세계의 정점에 있는 권력 캐슬. 온갖 더럽고 추악한 뒤처리를 담당한다. 그런데 김신은 캐슬의 지배자 최민욱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 조직의 일원이 된다. 그는 캐슬의 최민욱 같은 괴물이 될 마음은 없지만, 최민욱을 몰아낸다면 그가 서게 될 자리는 최민욱이 있던 바로 그곳이다. 지옥 같은 곳이다. 김신은 복수를 위해 지옥에 발만 살짝 담그고 나오리라고 다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될까?
독자들의 예상을 늘 뛰어넘는 스토리를 보여준 작가이니만큼, 주인공에게 어떤 퇴로를 열어줄지 한편으로 기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김신은 최민욱 시즌 2가 되기 십상이리라. 물론 그는 원래 킬러일 뿐이었고, 무슨 대단한 명분을 말하거나 새로운 세상을 그리는 것도 아니다. 동료 악당들에 대한 의리와 낭만을 아는 악당 정도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인간적 면모마저도 지키기는 쉽지 않다. 그는 지독한 괴물 최민욱과 싸우다 그에 맞먹는 괴물이 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김신의 목표가 더 나은 조직을 꾸리는 것도, 캐슬 없는 다른 세상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복수이기 때문이다. 동료들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지는 않지만, 복수라는 목표와 동료의 목숨이 충돌할 때는 과감하게 복수를 선택한다. 그런 그의 태도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그의 오른팔이라 할 만한 서진태가 목숨을 걸고 중요한 적수를 죽인 후 간신히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을 보는 장면이다. 빨리 조치를 취하면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서진태를 보고도 김신은 그를 살릴 기회를 잡지 않는다. 당장의 기세를 몰아서 곧장 최민욱을 치러 가는 선택을 내린다. 이 장면은 그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 잘 보여준다.
신세계
만약 김신이 다른 세상을 꿈꾸었다면 달라졌을까? 그렇게 생각하기 어렵다. 왜 그러냐고? 이에 관해서는 영화 <신세계>를 통해 이어가 보자. 이 영화는 경찰청 기획수사과 강 과장이 꿈꾸었던 신세계가 그의 계획대로 펼쳐지지만, 그 결과로 그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다른 의미의 신세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정말 세련되게 그려냈다. 오래된 영화고 다들 내용을 아시리라 믿고 내용을 편하게 소개하며 하고 싶은 말을 하려 한다.
강 과장은 머리가 비상한 경찰이다. 뇌물을 받지 않는 것도 머리가 좋아서다. 뇌물을 받는 그 시간부터 뇌물 공여자의 관리 대상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아서다. 그런 그가 국내 최대 조폭 그룹 골드문에 주목한다. 두목을 잡아넣어도 결국 그 빈자리를 다른 놈들이 채우니, 경찰이 하는 일은 결국 끝없이 새로운 놈을 잡아넣어야 하는 피곤한 일이 된다. 강 과장은 이런 소모적이고 단회적인 대책 말고, 보다 근본적으로 그들의 숨통을 쥐고 흔들 묘책을 생각해 낸다. 그의 뜻대로 된다면 경찰이 조폭 조직을 근원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신세계가 열릴 것이었다.
경찰은 골드문의 목줄을 틀어쥐고 관리하고자 그 안에 경찰 요원을 심고는, 조폭보다 더 비열하고 치졸한 방식으로 그들을 협박하고 몰아붙인다. 여러 해 동안 조폭 그룹에 침투해 있던 이자성은 경찰 조직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지만 결국 자신이 꼼짝달싹 못 할 덫에 걸렸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그의 조폭 보스 정창은 ‘브라더’ 이자성의 정체를 파악하고도 그를 손대지 않는다. 그러다 라이벌 조직의 공격을 받아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이자성을 불러 지금처럼 양다리를 걸치고는 못 산다고 선택을 촉구한다. 독해야 산다고 말한다.
김신과 교회와 신세계
경찰과 조폭 그룹의 대결 구도에서 나는 자꾸만 교회와 세상의 대립 구도가 보였다. 영화에서 경찰은 전반적으로 조폭보다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다. 조폭 조직 간의 대결 구도를 적절히 활용해 서로를 공격하게 하고 약화시키고, 마침내 원하는 사람을 골드문의 최고 권력자로 올려놓기에 이른다. 조폭보다 더 조폭스러운 방법으로 조폭을 길들이고 관리하는 신세계가 열리는 것 같았다.
경찰의 중요한 업무 하나는 무엇보다 나쁜 놈을 잡아넣는 것이겠다. 그놈이 더 나쁜 짓을 못 하도록 말이다. 그놈을 집어넣어도 다른 놈이 어차피 또 그 자리를 차지하는 상황이라 소모적인 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경찰의 일이다. 조폭 조직을 경찰의 하부 조직처럼 부릴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조폭과 똑같은 방식으로 조폭과 싸울 수는 없다. 그럼 어느 순간부터 경찰은 더 이상 경찰이 아니게 될 것이다.
세상보다 더 세상적인 방식으로 세상에서 앞서려는 교회의 욕망. 우리 쪽 사람을 세상의 정점에 올려놓아 세상을 뜻대로 부리려는 생각. 교회는 역사 속에서 이 생각에 많이 넘어갔다. (조금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교회가 오랫동안 명문대 선교에 열심을 쏟았던 것도, 교회가 경영학과 심리학의 여러 기법을 열심히 배워서 활용하려 했던 것도, 그 배후에 혹시 비슷한 생각이 놓여 있지는 않을까.
김신 이야기에서 멀리까지 왔다. 인간적으로 멋진 김신이지만 그에게서 다른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설령 다른 세상을 꿈꾸었다 해도 그가 보여 주는 모습은 결국 킬러와 싸움꾼의 세계에서 가장 강한 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가 따르는 길은 결국 킬러의 길이다. 더 강한 폭력으로 잠시 다른 폭력을 이길 수는 있겠지만, 폭력의 세계를 다른 세계로 만들 수는 없다. 내게 <캐슬>과 <신세계>는 모두 신자가, 교회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의 원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반면교사로 보인다.
경찰은 조폭 조직과는 다른 원리와 방법으로 움직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무늬만 경찰이지 않겠는가. 교회도 그럴 것이다. 교회는 평화의 왕, 십자가의 길로 구원을 이루신 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따르는 이들의 모임이다. 이 정체성을 놓치면 ‘무늬만 교회’가 되기 십상이다. 이름이 다르고 용어가 다를지 몰라도 그 실체는 세상과 동일한, 그래서 더욱 해괴망측한 조직으로 바뀌고 말 것이다. 진작부터 그런 신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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