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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이란 근대 국가의 문민 통치하에서 발생하는 일시적인 군사 통치를 지칭한다. 한국의 경우 1949년 말에 입법되었다. 제헌헌법 64조에 대통령의 계엄 선포권이 규정되어 있었으나 이는 여타 국가들의 헌법을 참조한 구색 갖추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48년 여순 사건과 제주 4・3 사건이 발생하자 계엄법의 법제화가 요구되었다. (본문 중)
백종국1)
대한민국의 계엄령
2024년 12월 3일 저녁 10시 27분에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국회와 지방의회의 활동을 포함한 모든 정치 활동의 금지와 언론 출판의 자유 박탈이 주 내용을 이루고 있었다. 대통령의 명령을 따르는 계엄군이 국회 폐쇄를 시도하였으나 국회의사당에 진입한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되었다. 12월 4일 오전 4시 30분에 국무회의 의결에 따라 비상계엄이 해제되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령은 6시간 만에 종료되었다.
계엄령이란 근대 국가의 문민 통치하에서 발생하는 일시적인 군사 통치를 지칭한다. 한국의 경우 1949년 말에 입법되었다. 제헌헌법 64조에 대통령의 계엄 선포권이 규정되어 있었으나 이는 여타 국가들의 헌법을 참조한 구색 갖추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48년 여순 사건과 제주 4・3 사건이 발생하자 계엄법의 법제화가 요구되었다. 국방부의 초안은 일제의 1882년 군국주의적 계엄령을 모방한 것이었으나 국회의 논의 과정에서 계엄령의 남용을 막고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조치들이 포함되었다. 계엄의 종류도 ‘임전지경’(臨戰地境), ‘합위지경’(合圍地境)에서 ‘비상계엄’ ‘경비계엄’으로 교체된 바 있다.
윤석열의 계엄령 이전에 한국 정치에서 계엄령은 15회 발동되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10회였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5회 발동되었다. 박정희의 암살로 발동된 15회째 계엄령은 450일간 지속되었는데 1980년 5월 17일의 계엄령 전국 확대는 전두환의 새로운 쿠데타이므로 따로 16회차 계엄령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여순 사건, 제주 4・3 사건, 한국 전쟁, 박정희 암살로 인한 4회의 계엄령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국가 위기 상황이라기보다 독재자가 권력을 찬탈하거나 혹은 확대하기 위해 실시한 계엄령이었다. 이러한 경우를 우리는 보통 “친위쿠데타”라 부르고 있다.
제6공화국의 계엄령
1987년 6월 항쟁 이후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는 제6공화국 헌법은 헌정사상 최초로 여야 합의를 통해 이루어졌다. 군사 독재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 삼권분립을 강화하고 있다. 군사 독재 시절에 악용되었던 대통령 비상대권 즉 국회 해산권과 비상 조치권은 제거되고 대통령 직선제, 6년 단임제, 헌법재판소 설치, 국회의 국정 감사권, 국회 활동의 상설화, 지방자치제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6공화국은 대통령 계엄령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우선 그 절차에 있어서 엄격하다.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할 때 국무회의를 통해 정리된 계엄의 이유, 종류, 시행 일시, 시행 지역 및 계엄 사령관을 “문서로” 공고해야 한다. 이 공고문에는 국무위원의 친필 서명이 포함되어야 한다. 계엄을 선포할 때는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해야 하며 이 또한 해당 내용을 담은 문서가 수반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회가 과반수로 요청하면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
계엄 발동의 요건도 명료하다. 비상계엄의 요건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 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이다. 경비계엄은 이에 준하는 사태로 “일반 행정 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에 선포될 수 있다. 윤석열의 계엄령은 비상계엄이며 따라서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라는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윤석열의 계엄령이 법체계가 지시한 절차와 요건을 갖추었는지는 현재 헌법재판소를 중심으로 검토 중이다. 이 절차와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면 윤석열은 대통령직에서 파면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직을 회복할 것이다.
윤석열 계엄령의 성격
가장 최근까지 확인된 자료들을 살펴보면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놀라울 정도로 취약한 근거에 입각하고 있다. 먼저 절차적 차원에서 여러 가지 미비점들이 발견되고 있다. 첫째로, 국무위원의 친필 서명 혹은 전자서명이 들어간 공고문을 게시하지 않았다. 극도로 권위주의적이었던 전두환의 비상계엄에서조차도 국무위원의 서명이 들어가 있었다는 점과 대조적이다. 둘째로,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하지 않았다. 계엄이 선포되고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안을 상정할 때까지 대통령의 통고가 없었다고 한다. 셋째로, 계엄포고령 1호가 국회와 지방 의회의 정치 활동 금지라는 점이다. 제6공화국의 삼권분립 체계는 계엄군에게 사법권과 행정권만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계엄령을 통한 입법부 통제 시도는 위헌이 된다.
1월 14일의 탄핵 심판 첫 변론에서 윤석열 측 변호인단은 절차적 차원의 세 번째 항목에 대해 색다른 주장을 제시하였다. 포고령 1호는 대통령의 의사가 아니었으며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과거의 자료를 복사하면서 포함되었다고 한다. 대통령은 단지 “부주의로 간과”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전 장관은 포고령 초안을 자신이 작성한 것은 사실이나 대통령이 이를 검토했고 일부 수정까지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석열 비상계엄의 요건, 즉, 비상계엄을 선포하게 된 이유는 1월 16일에 진행된 탄핵 심판 변론에서 윤석열 변호인단에 의해 제시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령 선포 당시 우리나라가 비상사태에 처해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여소야대의 국회가 바로 최대 국정 문란 사태이며, 이 여소야대 국회는 2020년의 4・15 “부정선거”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이다. 윤석열은 이 부정선거가 “사실은 중국과 크게 관련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 “부정선거”를 발본색원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 즉 비상계엄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게 윤석열 변호인단의 주장이었다.
지금까지 진행된 바를 검토해 보면 윤석열의 계엄령은 제6공화국의 헌법 체계가 지시한 절차와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윤석열을 “내란의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조사하고 있는 현 진행 상황을 볼 때, 사법부의 해석 방향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의 혐의에 대해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하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대통령직의 탄핵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에서부터 내란죄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에 이르기까지 충분한 증거와 논란을 거친 판결 결과를 기다려 보아야 한다. 이러한 ‘법치의 존중’이야말로 눈앞에 닥친 이해관계와 허망한 이데올로기를 좇아 국민의 삶을 산산 조각내고자 하는 악한 의도들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실로 기대하는 바는, 대부분의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처럼 계엄령이 법제화되어 있으나 전혀 사용할 필요가 없는 평화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1) 경상국립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기윤실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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