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2-3회 발행되는 <좋은나무>글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시려면(무료),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여 ‘친구추가’를 해주시고

지인에게 ‘공유’하여 기윤실 <좋은나무>를 소개해주세요

 

카카오톡으로 <좋은나무> 구독하기

 <좋은나무> 뉴스레터 구독하기

중요한 것은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출루 후에 외야석이 있는 야구장 펜스까지 직진하는 주자는 아무도 없다. 야구의 규칙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그는 다시 돌아온다. 점수를 내면서 돌아오든, 실패하고 중간에 돌아오든 다시 집으로 온다. 1루에 도착한 후로는 앞으로 직진하지 않고 방향을 틀어 집으로, 곧 출발한 지점으로 돌아오려 하는 게 바로 야구다. (본문 중)

 

김혜미(영암교회 교육목사)

 

프로야구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2024년, 한국 프로야구는 사상 처음 천만 관중을 돌파하며 전례 없는 전성기를 맞았다. 다른 프로 스포츠 리그의 관중 수와 비교해 보면 프로야구의 인기가 독보적인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야구가 인기 종목으로 자리 잡은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천만 관중 돌파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는 작지 않다.

 

야구는 실외 스포츠다. 실내에서 경기가 진행되는 배구나 농구와 달리 야구는 날씨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프로야구 10개 구단 중 돔구장을 보유한 팀은 단 하나뿐이다. 돔구장 경기가 아니면 폭우가 쏟아질 때는 우천 취소가 불가피하다. 심각한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한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는 물론이고 점점 견디기 어려워지는 날벌레 떼와 미세 먼지의 습격을 생각할 때, 천만 관중 동원은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120년 전, 한국에 야구를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은 필립 질레트(P. Gillett) 선교사다. 1905년 질레트 선교사가 황성기독교청년회(현 서울YMCA) 회원들에게 야구를 가르친 것이 우리나라 야구의 시초이다. 당시 역사상 처음으로 야구를 접한 한국 청년들은 이듬해 일본과의 첫 국제 경기를 벌였는데, 실력 차가 클 수밖에 없어 3:29로 대패했다고 한다. 처음에 우리나라에서 야구는 ‘타구(打球)’라고 불렸는데 일본인들이 ‘들판’을 뜻하는 한자 ‘야(野)’를 사용한 데 영향을 받아 야구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언젠가 야구광인 한 친구로부터 야구 경기에 가족과 관련된 의미가 들어있다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먼저, 타자가 출발하는 첫 번째 베이스이자 다시 돌아와 점수를 얻는 마지막 베이스는 집 모양을 닮았으며 홈이라고 부른다. 그곳을 지키는 포수는 ‘안방마님’이라고 불린다. 집은 안전한 곳이지만, 집에만 머물러 있으면 성장할 수 없으니 타자는 집을 떠나 출루하는 주자가 되어야 한다. 야구에서는 안타든 볼넷이든 어떤 방법으로든 집을 떠나 출루하여 한 바퀴를 돌아와야만 점수를 얻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출루 후에 외야석이 있는 야구장 펜스까지 직진하는 주자는 아무도 없다. 야구의 규칙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그는 다시 돌아온다. 점수를 내면서 돌아오든, 실패하고 중간에 돌아오든 다시 집으로 온다. 1루에 도착한 후로는 앞으로 직진하지 않고 방향을 틀어 집으로, 곧 출발한 지점으로 돌아오려 하는 게 바로 야구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처럼 한 번 집을 떠난 주자는 아웃당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뛰거나 베이스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야구 홈베이스, AI 생성형 이미지

 

집은 이처럼 돌아오는 곳이며 만약 한 바퀴를 돌아왔다면 점수를 얻게 되는 장소다. 1루타보다 2루타, 2루타보다 3루타, 3루타보다 홈런이 더 좋다. 집은 빨리 돌아올수록 좋은 곳이다. 그래서 홈런(Homerun)을 친 타자는 야구 용어에 담긴 의미 그대로 집으로 뛰어온다. 점수를 내고 돌아오든, 빈손으로 돌아오든 집은 응원과 격려를 받는 장소다. 집은 그런 곳이어야만 한다.

 

한국에서 야구는 남녀노소에게 고르게 사랑받는 종목이다. 가족 단위의 관중이 야구장을 많이 찾는 것은 프로야구 흥행의 중요한 요소다. 야영장처럼 텐트를 설치하여 캠핑하듯 야구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하거나 바비큐 존을 마련하는 등 색다른 방식으로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가족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구단들도 많아지고 있다. 20-30대 여성 팬들의 증가는 프로야구 흥행을 이루어낸 또 다른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숏폼 콘텐츠의 확산과 소셜 미디어의 영향이 여성 팬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관중이 야구장을 찾게 한 요소라고 분석한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야구가 이처럼 인기를 끈 데는 미국 MLB나 일본 NPB와는 다른 역동적인 KBO 리그 특유의 응원 문화가 큰 몫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응원단장이 이끄는 치어리딩과 선수별 입장곡 및 응원가가 있고, 팬들이 함께 떼창을 부르는 열성적인 응원 문화는 외신의 이목을 끌 정도로 두드러진다.

 

이처럼 프로야구 천만 관중 돌파라는 흥행 성공에는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한 가지 짚어보고 싶은 점이 있다. 2024년은 참 살기 힘든 한 해였다. 혼란과 실망이 반복되었던 정치, 앞날이 꽉 막힌 듯한 경제 침체, 치솟는 물가, 삶의 고단함과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한 해였다. 녹색의 탁 트인 야구장에서라도 잠시나마 고달픔을 잊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억눌린 마음을 터뜨려 어딘가로 분출할 창구가 필요했다. 알고 보니, 지난해 관중이 늘어난 것은 프로야구만의 경사가 아니었다. 물론 야구의 관중 수가 압도적이었지만, 프로축구, 프로농구의 관중 수도 꾸준히 증가했다. 프로축구 1부 리그인 K리그1의 평균 유료 관중 수는 집계 이후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프로농구의 관중 수도 이전 시즌에 비해 22% 증가하여 역대 최고 입장 수입을 달성했다고 한다.

 

사실 한국 프로야구의 출범에는 아픈 역사가 있다. 한국에 야구가 처음 소개된 것은 선교사에 의해서였지만, 프로야구가 출범한 건 독재자에 의해서였다. 프로야구는 1982년 대중의 관심을 정치로부터 분산시키려는 3S 정책1)의 일부로서 출범하였지만, 40여 년이 흐른 오늘날에는 천만 관중을 돌파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인기 스포츠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런데 스토브 리그2)가 한참이던 2024년 12월,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그날 저녁, 필자는 우연히 광주 출신의 누군가로부터 “광주는 아픔을 야구로 씻은 도시”라는 말을 듣고, 그 프로야구가 전두환에 의해 시작된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계엄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어 광주의 아픔을 다시 떠올렸다.

 

프로야구 천만 관중을 돌파한 해에 역사를 몇 겹이나 뒤로 돌리는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출범 당시의 어두운 역사를 걷어내고 천만 관중의 국민 스포츠가 된 프로야구가 지금의 혼란과 상처도 극복하도록 위로와 힘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고, 지금처럼 청정하게 우리를 위로해 주어 많은 사람에게 오래 사랑받는 스포츠가 되기를 바란다.

 


1) 3S[스포츠(Sports), 영화(Screen), 성(Sex)] 정책이란 1980년대 군사 정권이 국민의 정치적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대중문화와 스포츠 산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정책을 비판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2) 스토브 리그란 정규 시즌 종료 후 선수 영입, 트레이드, 재계약을 통해 전력을 보강하고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 <좋은나무> 글을 다른 매체에 게시하시려면 저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02-794-6200)으로 연락해 주세요.

* 게시하실 때는 다음과 같이 표기하셔야합니다.
(예시) 이 글은 기윤실 <좋은나무>의 기사를 허락을 받고 전재한 것입니다. https://cemk.org/26627/ (전재 글의 글의 주소 표시)

 

<좋은나무>글이 유익하셨나요?  

발간되는 글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시려면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여 ‘친구추가’를 해주시고

지인에게 ‘공유’하여 기윤실 <좋은나무>를 소개해주세요.

카카오톡으로 <좋은나무> 구독하기

 <좋은나무> 뉴스레터 구독하기

<좋은나무>에 문의·제안하기

문의나 제안, 글에 대한 피드백을 원하시면 아래의 버튼을 클릭해주세요.
편집위원과 필자에게 전달됩니다.
_

 

 


관련 글들

2025.02.17

2: 희미한 빛(홍종락)

자세히 보기
2025.01.31

영화 : 두렵지 않은 사랑(최주리)

자세히 보기
2025.01.20

아름다움과 구원: 도스토옙스키가 바라본 예술과 문학의 의미(정단비)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