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2-3회 발행되는 <좋은나무>글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시려면(무료),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여 ‘친구추가’를 해주시고
지인에게 ‘공유’하여 기윤실 <좋은나무>를 소개해주세요
저자는 아이히만이 평범한 사람, 그저 맡겨진 일을 수동적으로 감당하는 무사유의 군인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민족사회주의, 즉 나치즘의 이념에 전폭적으로 동의하고 그것을 적극 구현했다. 그리고 자기를 내세우기 위해 허풍과 기만, 속임과 술수에 아주 능했다. 연기에 능했기에 몇 마디의 히브리어 표현만으로 히브리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유대인 전문가로 행세할 수 있었다. 유대인 전문가라는 이미지로 유대인들에게 근거 없는 희망을 갖게 만들어 죽음의 수용소로 순순히 가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그 권력을 즐겼다. (본문 중)
홍종락(작가, 번역가)
베티나 슈탕네트 |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 대량학살자의 밝혀지지 않은 삶』
이동기, 이재규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2월 28일 | 864쪽 | 48,000원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 유대인 절멸 계획, 일명 “최종적 해결”의 중심에 있던 나치 친위대 중령. 전후 아르헨티나로 도피해 있다가 모사드에 의해 이스라엘로 납치되어 재판에 회부된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전 세계적 관심사였던 아이히만 재판을 취재했고, 그 결과로 고전이 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탄생했다.
600만 명의 유대인 멸절에서 핵심에 있는 죽음의 수용소로의 유대인 수송을 제안하고 계획하고 집행한 대량 학살자 아이히만이 재판정에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거기엔 악마가 아니라 신중한 관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어진 일을 수행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관료를 자처하는 아이히만의 모습에서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테제를 내놓는다. 사유하지 않음.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악이다. 그러니 생각하자, 자신이 하는 일, 그 일의 취지와 의미를.
예루살렘 이전의, 진짜 아이히만
이런 아렌트의 통찰에 찬물을 끼얹는 책이 나왔다. 이 책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원서 2011)은 예루살렘에 잡혀 와 재판을 받기 전, “나 역시 일개 희생자입니다”라고 주장하는 피고가 되기 전의 아이히만의 실체를 드러낸다. “유명한 ‘유대인 문제’ 전문가이자 절멸 프로젝트의 부처 간 조정자, 상관들과 함께 난롯가에서 코냑을 마시며 그 일의 실행을 축하했던”(611) 그가 그 일을 어떻게 했는지, 어떻게 전쟁이 끝난 후 이름을 바꾸고 신분을 속이고 수용소에서 탈출하여 아르헨티나로 피신했는지 소개한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에서 쓴 글과 나치 동조자들의 모임에서 연설과 대화, 인터뷰의 형태로 드러낸 그의 진짜 생각을 들려준다.
저자는 아이히만이 평범한 사람, 그저 맡겨진 일을 수동적으로 감당하는 무사유의 군인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민족사회주의, 즉 나치즘의 이념에 전폭적으로 동의하고 그것을 적극 구현했다. 그리고 자기를 내세우기 위해 허풍과 기만, 속임과 술수에 아주 능했다. 연기에 능했기에 몇 마디의 히브리어 표현만으로 히브리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유대인 전문가로 행세할 수 있었다. 유대인 전문가라는 이미지로 유대인들에게 근거 없는 희망을 갖게 만들어 죽음의 수용소로 순순히 가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그 권력을 즐겼다.
아르헨티나의 아이히만 1: 글 쓰는 아이히만
아이히만은 나치 동료 네트워크의 도움으로 아르헨티나로 이주했고 몇 년 후에는 아내와 자녀들까지 데려올 수 있었다. 그냥 숨죽이고 살았다면 안전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굳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고, 친위대에서 했던 일들을 공공연하게 자랑했다. 왜 그랬을까?
그는 15년 전에 역사의 중심에 서서 세상을 뒤흔드는 일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문명사회의 모든 규칙에서 벗어난 아이히만의 제안, 의견, 계획이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시기가 한때 있었다. 반유대인 정책이 절멸이라는 아이디어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 그의 생각은 반유대인 정책의 개발에 영향을 미쳤다”(399). 그런 그였기에 먼 나라 한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우선, 아이히만은 방대한 분량의 원고를 남겼다. 거기서 민족사회주의의 철저한 신봉자임을 밝힌다. “전통적인 도덕관념을 완전히 거부하고, 자연이 요구하는 무제한적 생존 투쟁을 지지했다. … 인종 간의 투쟁은 본질적으로 자원을 둘러싼 투쟁이었다. … 중요한 것은 단 하나, 바로 각자의 자기 민족이었다. 옳은 것이란 자기 민족에 도움이 되는 것이고, 자기 민족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런 권리가 없었다”(376-377). 이런 생각을 거부하는 모든 보편적 사상은 위험하고, 그런 생각을 대표하는 이들이 유대인이었다. 아이히만에게 유대인 멸절은 당위였다.
아이히만은 … 무엇보다 올바른 일을 했다는 존중을 받고 싶어 했다. 그리고 사람들을 전향시키고 싶어 했다. 바로 그것이 그의 글들을 역겹게 만드는 점이다(383). 그가 생산한 엄청난 양의 텍스트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필요성을 드러내지만, 설득력 있는 수사의 힘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비전을 강요하는 선동가가 되고픈 욕망을 더 많이 드러낸다(383-384).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표지 ⓒ글항아리
아르헨티나의 아이히만 2: 대화하는 아이히만
아르헨티나의 나치 동조자들은 유대인 전문가 나치 중령 아이히만의 입에서 홀로코스트가 과장된 유대인들의 헛소문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이히만의 이념과 자기애,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나치 동조자들은 결국 유대인 대량 학살자의 입에서 그 범죄 행위의 엄청난 규모와 진면목에 대한 가장 분명한 자백을 듣는 증인이 된다.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 나는 여론을 위해서, 그것을 깊이 후회하고, 사울이 바울이 된 것처럼 구는 일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 그럴 의사가 없기 때문이고, 우리가 뭔가 잘못된 일을 했다고 말하는 것을 내 마음속으로 주저하기 때문입니다. … 1,030만 명의 유대인 중에서 우리가 1,030만 명을 죽였다면 나는 만족스러워 할 것이고, 좋다고 우리가 적을 말살했다고 말할 것이라고요. (515-516)
이 내용은 현장에서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에게 머물지 않고 퍼져나갔다. 이런 인터뷰가 아이히만의 몰락에서 담당한 첫 번째 역할은 “반인륜적 범죄의 가해자들을 오랫동안 보호했던 민족사회주의 세계관에 대한 많은 이들의 동조를 파괴하는 데 일조”(525)한 것이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거울이 되는 연기자
아이히만은 납치되어 투옥되었을 때 “유포되고 있는 자신의 이미지들 중 어떤 것이 자기변호에 가장 유용할지 이미 정해놓은 상태”였다. 그것은 “신중한 관료의 이미지”(610)였다. “그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성공했다.”
권력을 갖고 있던 시절에 아이히만은 … 희생자들의 희망을 가지고 기만적인 게임을 벌여, 저항도 없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옛 동료들의 존경과 도움을 얻기 위해서, 민족사회주의가 절멸의 명령과는 별개일 수 있다는 그들의 기대를 확인해 주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자신이 ‘유대인의 본능’이라고 여기는 것, 즉 이해하고 앎을 얻으려는 유대인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려 노력했다. … 그 모든 거울 이미지 뒤에는 아이히만의 권력의지와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하려는 욕망이 근면함으로 위장된 채 놓여 있었다. (616)
그는 사람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사람들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재판에서는 성실하지만 소심하고 무력한 관리의 역할을 연기하여 목숨을 건지고자 했다.
악인은 어떻게 자신을 지켰나
민족사회주의 이념은 아이히만을 도덕적 부담에서 지켜주었다. 이데올로기는 “심지어 살인자가 스스로의 범죄로 인해 공포에 휩싸였을 때도 위안을 가져다주는 종교”(385)이기도 했다. 그는 사유할 줄 모르는, 생각이 없는 관리가 아니었다. 자기 생각 안에서의 빈틈없는 정합성과 폐쇄성에 갇혀 버린 것이 오히려 문제였다.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서 한 말은 … 생각 없는 헛소리가 아니었다. 제대로 된 사고 체계에 기초한 일관성 있는 말이었다. … 여기 빠져 있는 것은 … 전체주의적 사유 구조에 대한 기본적인 비판의 의지였다. 그것은 그들 나름의 교조성 때문이었다.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휘두를 수 있는 폭력의 지속성…은 그 자체로 하나의 목적이 되었다. … 체계적 대량 학살은 … 근본적으로 왜곡돼 있는 정치적 사고의 결과다.(457)
하지만 아이히만도 인간이었기에 이념만으로 공포와 부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주도한 범죄의 끔찍한 현장을 접해야 하는 자신이 진정한 피해자인 것처럼 주장했다. “자신이 기여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는데도 마치 무력하게 지켜보고 있었던 양”(478) 이야기했다.
또 다른 대처법은 술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비법이 있었다. “내가 젊었을 때부터 죽 외우고 있는 매우 경건한 어떤 말이 있어요. 지독히 불쾌한 일을 접하게 되고 그것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을 때면 나는 항상 그 말을 하죠”(478-479). 아, 그것은 사도신경이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범죄자의 불안과 공포를 달래는 ‘주술’로 사용한 것이다.
어둠의 심연에서 발견한 불빛
예루살렘 재판 이전, 대량 학살자 아이히만의 밝혀지지 않은 삶을 살펴보았다. 그래도 이런 어두운 이야기로만 글을 채울 수는 없다. 희망적인 내용 둘만 떠올리며 리뷰를 마무리하자.
첫째, 악인은 제가 들어갈 구덩이를 판다. 아이히만이 특유의 인정 욕구와 과시욕, 다음 세대를 자기와 같은 생각으로 교화하려는 권력욕에서 늘어놓았던 장황한 이야기가 오히려 민족사회주의 동조자들과 나치의 유대인 멸절에 참여한 가해자들을 분리시키는 뜻밖의 결과를 낳았다. “글을 써서 자신을 설명하는 데 필사적이었던 한 남자의 저주는 이 충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그가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철저하게 그의 모든 말을 읽을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 입으로, 제 손으로 결국 대학살의 증거와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남겨놓고 갔다.
둘째, 아이히만 체포 과정이 보여 준 것. 독일 정부 내의 한 나치 동조자는 아이히만 추적을 방해하려다 독일 검찰총장에게 추적 방향에 확신을 안겼다. 나치 사냥꾼 지몬 비젠탈은 포기하지 않고 아이히만을 법정에 세우고자 끈질긴 노력을 이어갔다. 모사드의 국장은 조직을 위해 획기적 작전을 모색 중이었다. 이스라엘 초대 총리 벤구리온은 독일과 이스라엘 간의 대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무역협정과 무기 공급이 달린 일이었다. 독일 검찰총장은 독일에서 아이히만을 기소하고 싶어 했다. “아이히만 체포는 … 일련의 실이 점점 엮여 하나의 그물을 형성해 간 결과였다. …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흔한 인간 활동 패턴이다”(581).
“인간의 활동이 단일한 인과관계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활동은 어떤 일을 각자 다른 이유에서 하고 있는 많은 사람과 관련된 여러 갈래의 활동이 누적된 결과”다(580). 이 대목에서 나는 힘을 얻었다. 당장 성과가 없다고 흔들리지 말고 자기가 할 일을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이 각자의 일을 해 나간 것이 누적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이루어낸 역사적 사례들을 떠올리고, 그 배후에 계신 그분을 믿고서 말이다.
* <좋은나무> 글을 다른 매체에 게시하시려면 저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02-794-6200)으로 연락해 주세요.
* 게시하실 때는 다음과 같이 표기하셔야합니다.
(예시) 이 글은 기윤실 <좋은나무>의 기사를 허락을 받고 전재한 것입니다. https://cemk.org/26627/ (전재 글의 글의 주소 표시)
<좋은나무>글이 유익하셨나요?
발간되는 글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시려면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여 ‘친구추가’를 해주시고
지인에게 ‘공유’하여 기윤실 <좋은나무>를 소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