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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거주의 공간이 아니라 투기의 수단이 되는 순간, 도시는 집값의 노예가 된다. GTX, 3기 신도시, 초심도 터널 사업은 “공급이 늦으면 더 오른다”라는 주문 속에 속전속결로 승인된다. 공사에는 언제나 속도가 안전보다 앞서고, 정보는 투명하게 공유되기보다 ‘민감하다’라는 이유로 감춰진다. 지질 보고서와 위험 지도는 ‘집값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봉인되고, 그 사이, 땅은 꺼지고, 배관은 터지고, 사람은 사라진다. (본문 중)
김덕영(희년함께 토지정의센터장)
2025년 3월 24일 저녁. 퇴근 차량으로 붐비던 서울 명일역 사거리에 지름 20m, 깊이 18m의 싱크홀이 순식간에 아스팔트를 삼켰다. 아래에는 9호선 연장선 굴착 현장이 있었다. 퇴근 뒤 배달 노동으로 생계를 돕던 서른셋 청년이 오토바이째 추락했고, 구조대가 꺼냈을 땐 이미 숨이 멎어 있었다. 1년 전 연희동 싱크홀 사망 사고 뒤 서울시는 “지반 침하 안전 지도” 공개를 약속했지만, 명일동 싱크홀 사건 직후 공개 요구를 거부했다. 서울시 관계자의 비공개 결정 이유 중 하나가 “집값 영향”이었다. 사고 다음 날, 현장 인근 공인중개소에는 “집값 영향은 없나요?”라는 문의가 빗발쳤다. 사람이 사라져도, 도시의 첫 반사 신경은 ‘집값 괜찮나요?’였다.
집값에 몰두한 사회에서 청년의 죽음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2023년 봄, 스물여섯 청년이 전세 사기로 9,000만 원 보증금을 날렸다. 수도 요금 6만 원을 내지 못해 단수 예고장을 받았다. 어머니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2만 원만….” 청년은 수년간 땀 흘려 모은 종잣돈을 모두 날리고 추가로 받은 대출만 고스란히 남았다. 보증금은 사라졌지만 은행의 독촉은 멈추지 않았다. 빚 투기 시대가 한 평의 땅도 없는 그를 고립시켰고, 끝내 그는 삶을 포기했다.
두 죽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건설 현장에서는 “안전보다 수익률이 우선”이라는 말이 비밀 아닌 비밀처럼 통용되고 전세 시장에서는 “사적 계약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정보는 감춰지고 책임은 미뤄진다. 지반 등급, 공사 위험도, 임대인 체납 기록은 사고 뒤에야 공개된다. 개발 프리미엄과 임대 차익은 극소수가 독점하지만, 무너진 기반을 복구하는 비용, 보증금 미지급, 가계 파산의 고통은 세금과 공적 기금, 그리고 청년과 서민의 지갑이 그 대가를 떠안는다.
숫자는 이 구조적 폭력을 말없이 고발한다. 서울 하수관로의 30% 이상은 매설된 지 50년이 넘은 노후 구간이다.1) 2025년 3월 말 기준, 국토교통부가 인정한 전세 사기 피해는 28,666건. 피해자는 3만 명에 육박한다.2) 청년 가구 중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쓰는 ‘과부담’ 비율은 30%를 넘겼고,3) 2024년 잠정 합계출산율은 0.75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4) 우리나라 가계 총자산의 75.2%는 부동산에 묶여 있으며,5) 가계 부채는 1,927조 원에 달하고, 이 중 60% 가까이가 주택 담보 대출이다.6) 자산과 빚이 같은 그래프를 타고 오르내리는 순간, “집값이 내려가도 괜찮다”라는 말은 누구도 쉽게 꺼내지 못한다. 그 침묵의 끝에서, 무너지는 건 집값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반이다.
집이 거주의 공간이 아니라 투기의 수단이 되는 순간, 도시는 집값의 노예가 된다. GTX, 3기 신도시, 초심도 터널 사업은 “공급이 늦으면 더 오른다”라는 주문 속에 속전속결로 승인된다. 공사에는 언제나 속도가 안전보다 앞서고, 정보는 투명하게 공유되기보다 ‘민감하다’라는 이유로 감춰진다. 지질 보고서와 위험 지도는 ‘집값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봉인되고, 그 사이, 땅은 꺼지고, 배관은 터지고, 사람은 사라진다.
이 무대는 고대 근동의 몰렉 신전을 떠올리게 한다. 몰렉은 번영을 미끼로 부모에게 자녀를 불 속에 바치도록 요구했던, 고대 가나안 지역의 우상이었다. 오늘 우리의 ‘몰렉’은 ‘집값’이라는 이름으로 청년과 아이들을 꺼진 지반과 과도한 대출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의 주인이 아니다. 성서는 분명히 말한다. ‘땅은 여호와의 것이요, 우리는 그 땅을 맡은 나그네요 임차인이다’(레위기 25:23).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며, 공동선을 위한 토대 위에서만 우리는 진정한 안전과 평화를 기대할 수 있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 왔다. 위험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이익과 손실을 공정하게 나누며, 속도보다 안전을 앞세우는 도시로 나아갈 것인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년적 전환이다. ① 위험 정보는 감추지 말고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며, ② 개발로 얻는 이익과 발생하는 손실은 모두가 함께 책임져야 하고, ③ 보유세의 순증분은 ‘토지 배당’이라는 이름으로 전 국민에게 현금으로 환급하는 실험을 시작해야 한다(1/N로 분배되는 이 배당은 기본소득의 성격을 지닌다). ④ 공공 임대 확대와 전세 대출 구조 점검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상식이다. 이것은 단지 경제 정책이 아니다. 집값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공동체의 생명과 미래를 지키기 위한 결단이다. 신앙의 실천이자, 민주 시민으로서의 의무다.
1) KBS, “서울 하수관 30% 50년 넘어… ‘땅 꺼짐’ 주된 원인”, 「KBS」, 2025. 4. 15.
2) 국토교통부 피해지원총괄과,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사업… 총 28,666건 결정”, 「국토교통부」, 2025. 4. 1.
3) 국토교통부 주택정책과, “「2023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 「국토교통부」, 2024. 12. 27.
4) 통계청 인구동향과, “2024년 인구동향조사 출생·사망통계(잠정)”, 「통계청」, 2025. 2. 25.
5) 통계청 복지통계과,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통계청」, 2024. 12. 9.
6) 한국은행 금융통계팀, “2024년 4/4분기 가계신용(잠정)”, 「한국은행」, 2025.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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