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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고민되는 부분이 있다. 2023년 도서전의 주제는 “비인간”이었다. 기후 위기를 초래한 ‘인간중심주의’를 성찰하고, ‘비인간’들과 어떻게 공존할지 이야기하는 장을 열었다. 그러고 불과 2년 만에 굿즈로 떠들썩해진 도서전은 어딘가 겸연쩍기는 하다. 도서전이 매년 내거는 주제들은 그해 행사를 치르고 곧장 작별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가지고 가는 것일 텐데(내년부터는 책이 ‘믿을 구석’이 아니어도 될 리가 없다), “비인간”이라는 주제를 이후 도서전에서 어떻게 이어갈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겠다. (본문 중)
박예찬(IVP 편집자)
믿을 구석.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인데, 처음 봤을 때 조금 놀랐다. 매사 주저하는 나로서는 너무 자신만만해 보이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서전은 성황리에 끝났다. 성황리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다. 출판계가 불황이라는 말은 너무나 익숙하고, 전 국민의 ‘충격적인’ 독서율을 다루는 기사가 심심찮게 돌아다니는데도, 도서전은 최근 몇 년간 엄청난 흥행을 이어가니 신기한 일이다.
얼리버드 입장권 구매자가 너무 많아 현장 판매를 하지 않을 정도로 시작하기 전부터 성공한 축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즐긴 행사. 물론 두말할 것 없이 좋은 일이지만, (거의)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는 법. 도서전이 남긴 고민거리들도 있다.
도서전은 믿을 구석인가
뜨거운 열기 이면에는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크게 네 가지 정도다. 첫째, 도서전 사유화 논란.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문체부와의 갈등으로 도서전 운영이 어려워지자 ‘주식회사 서울국제도서전’이 출범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지분 30%를 제외한 나머지 70%는 개인이 소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이슈가 되었다. 도서전의 공공성이 위협받는다는 비판이 준비 과정부터 있었다.1) 둘째, 얼리버드 매진.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얼리버드 입장권을 구매하여 주최 측은 현장 판매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2) 이에 정보 취약 계층을 비롯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 생겼다. 셋째, 소규모 부스 소외. 대형 출판사들3)의 부스가 입구 쪽 ‘명당’에 포진되어 소규모 부스들이 소외되었다.
인파가 몰리는 A홀 입구 쪽에 큰 부스가 몰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국제도서전 플라이어 맵”
도서전 주최 측을 향한 이러한 비판들과는 달리, 네 번째는 실제 참여한 출판사와 독자를 겨냥한다. 이 글에서 조금 더 깊게 살펴보고 싶은 비판이기도 하다. 넷째, ‘굿즈(goods) 도서전’으로 변질. 책이라는 ‘가치’가 아니라, 굿즈라는 ‘상품’을 쫓아다니는 ‘젊은 여성’ 독자와 이에 편승하는 출판사들을 아니꼽게 보는 시선들이 있었다.
이 비판의 기저에는 ‘그들은 진정한 독자가 아니다’라는 판단이 깔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진정한’ 독자란 무엇인지 정답을 말할 수 없다. 우리 모두가 다만 동의할 수 있는 것은 독서란 책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책을 읽는 행위, 즉 경험이기에 독서는 책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굿즈, 이벤트, 모임 등 ‘경험의 그물망’이 형성되는 것은 독서가 ‘문화’로 존속되기 위해 필요할 것이다.
특히 도서전은 단순히 책을 파는 장터가 아니라, 출판사가 독자를 직접 만나 브랜드를 어필하고 소개하는 자리다. 그러니 굿즈를 포함한 여러 시도는 도서전이라는 축제 속에서 탄생하는 창의성과 역동성의 일면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민되는 부분이 있다. 2023년 도서전의 주제는 “비인간”이었다. 기후 위기를 초래한 ‘인간중심주의’를 성찰하고, ‘비인간’들과 어떻게 공존할지 이야기하는 장을 열었다. 그러고 불과 2년 만에 굿즈로 떠들썩해진 도서전은 어딘가 겸연쩍기는 하다. 도서전이 매년 내거는 주제들은 그해 행사를 치르고 곧장 작별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가지고 가는 것일 텐데(내년부터는 책이 ‘믿을 구석’이 아니어도 될 리가 없다), “비인간”이라는 주제를 이후 도서전에서 어떻게 이어갈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겠다.
다시 말하지만 굿즈 문화를 일절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적절하지도 않다[출판업은 나무로 상품(goods)을 만드는 사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접근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일례로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4)라는 책을 출간한 돌고래 출판사는 이번 도서전에서 굿즈를 제작하지 않았다. 그 대신 직원들이 각자 안 쓰는 타 출판사의 ‘중고’ 굿즈들을 가져와 방문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창의적이고 용기 있는 시도도 있었지만, 개별 출판사나 참가자 차원에서 결단하기는 힘든 일이다. 주최 측 차원의 논의와 시도가 필요할 것이다. 이를테면 한 해만이라도 굿즈 없는 도서전을 선언하는 건 불가능할까?
이처럼 도서전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안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하나하나 개선되어 가리라 기대한다.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믿을 구석’이 되기를 바란다. 말하자면 나는 도서전에 대한 믿음이 있다.

본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이미지 입니다.
기독교 출판의 경우
도서전 후기에 반드시 나오는 말이 있다. ‘젊은 여성’이 많았다는 것인데, 도서전에 참여해 보면 이를 절절히 체감할 수밖에 없다. 비단 도서전의 경우만 아니라, 젊은 여성은 이미 출판계에서 주 독자층으로 호명되어 왔다. 그렇다면 기독교 출판사는 어떨까?
이러한 흐름에서 한 발짝 옆에 서 있는 듯하다. 대부분 기독교 출판사의 주요 독자는 목회자와 신학생, 즉 남성이다. 여성 독자는 소수이고, 여성 저자는 찾아보기 어려우며, 젊은 여성 저자는 희박하다. 읽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고 쓰는 사람이 읽는 사람이 되니, 여성 저자·독자가 나오기 힘든 순환에 빠진다. 이는 물론 기독교 출판계에 국한되는 상황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의 초상이기도 하다. 신학 전공자가 주요 저자이자 독자인 현실에서 당장 여성 신학생과 목회자가 적으니―일부 교단에서는 아직도 여성이 목사가 될 수 없으니―구조적 문제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젊은 여성 독자 필요 없다’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정말 없다기보다는 굳이 응답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기독교 담론을 넓히고, 더 많은 독자를 초대하고, 적극적으로 대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우선 나부터) 필요할 것이다.
책은 믿을 구석인가
마지막으로 질문해 본다. 책은 믿을 구석인가.
글쎄, 확신하기 어렵다. 한낱 종이 뭉치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을 책에게 직접 해 본다면 아마 손사래를 치며 부정할 것이다. 내가 아는 책이라면 분명 그럴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회사 계정으로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끝으로 신앙을 잘 키워 나갈 수 있도록 좋은 책 많이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규모는 작았지만 기독교 서적으로 도서전 참가해 주신 것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책에 정말 믿을 구석이랄 게 있다면, 그것은 책과 도서전을 경유한 ‘만남’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비록 그 구석은 불안정하고 연약해서 쉽게 사라지고 말지만,
천진하게도, 그 믿을 구석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어리석은 나도 그들을 믿기로 한다.
1) 차형석, “‘사유화’ 논란 휩싸인 서울국제도서전”, 「시사IN」, 2025. 5. 13.
2) 양선아, “국내 최대 책 축제와 나의 ‘믿을 구석’ [.txt]”, 「한겨레」, 2025. 6. 15.
3) 물론 도서전에는 출판사뿐 아니라 서점, 도서관 등 여러 기관도 참여한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출판사로 통칭했다.
4) “기후위기와 패스트패션에 맞서는 제로웨이스트 의생활”이라는 부제에서 볼 수 있듯 지속 가능한 의(衣)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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