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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표면적으로 그린 무속 신앙을 비판하는 것에만 치중하다 보면 ‘종교’를 차용해 이 작품이 이야기하려는 것을 놓치게 된다. 선과 악의 갈등을 ‘포용’과 ‘화해’로 풀어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서사가 매우 종교적인 특색이 강한 이 작품을 전 세계적으로 흥행시켰다는 것은 분명 오늘날의 종교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본문 중)
이민형(성결대학교 파이데이아학부 교수)
넷플릭스 오리지널 뮤지컬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연일 흥행 기록을 경신하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공개 9주 차가 된 지난 8월 중순까지 누적 조회 수는 2억 천만 회를 넘겼고, 그 결과 ‘넷플릭스 사상 가장 많이 시청된 영화’ 기록에 바싹 다가서고 있다. 뮤지컬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성상 OST의 인기도 상당한데, 작품에 삽입된 노래 중 8곡이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진입하였고, 타이틀 격인 “Golden”은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 빌보드 Global 200 차트 1위를 차지했다. K-Pop, 한국 영화, 한국 드라마에 이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성공에 “K-”를 부르짖던 이들은 다시 한번 한류의 위대함을 설파하고 있다. 이곳저곳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대한, 혹은 그것에서 파생된 이야기들이 들려오는 것을 보니, 엄청난 흥행이 분명한 것 같다.
사실 예고편이 공개되었을 때부터, 이 작품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기독교와 문화를 연구하는 사람에게 종교와 대중문화, 그러니까 오컬트와 K-Pop을 한데 묶은 설정은 너무나 귀한, 그래서 반가운 소재였기 때문이다. 다만, 공개일이 다가올수록 K-Pop의 진입 장벽을 넘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는 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 K-Pop은, 적어도 내게는, 어렵고 공감하기 힘든 그네들의 문화였기 때문이다. 부담은 왜 하필 K-Pop인가 하는 원망으로 이어졌고, 심지어 K-Pop의 세계적 인기에 편승하려는 조악한 작품은 아닐지 하는 의심까지 들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상자를 열고 나니, 음악은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아니, 상당히 좋았다. 화려한 장면 연출과 함께 흘러나오는 삽입곡들은 K-Pop이 어색한 사람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덕분에 내 플레이리스트에 저장된 최초의 K-Pop이 되었다. 아마도 애니메이션 <겨울 왕국> 이후로 이 정도로 음악이 돋보인 뮤지컬 애니메이션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처음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소 억지스러울 것 같았던 K-Pop 가수가 주인공이라는 설정도 설득력 있는 서사 덕분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사람들의 영혼을 힘의 원천으로 삼고 있는 귀마라는 악귀와 오래전부터 대를 이어가며 귀마를 막아 온 헌터의 대결을 다룬다. 조선시대의 무당에서 시작해 시대별 여성 예인 3인이 한 팀으로 활동하는 헌터는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K-Pop 아이돌 가수, ‘헌트릭스’로 분하고 있다. 그들은 팬들의 마음을 모아 귀마를 소멸시킬 혼문을 완성하려 한다. 이를 지켜본 귀마의 수하들 역시 사람들을 홀려 그들의 영혼을 빼내 올 심산으로 ‘사자 보이즈’라는 5인조 남성 아이돌 밴드를 만든다. 그리고 이들은 팬덤을 놓고 대결을 펼친다. 아이돌 가수가 팬덤을 놓고 경쟁하는 것과 선과 악이 인간의 마음을 놓고 대결하는 것의 유비, 종합 예술로 여겨졌던 한국의 무속 문화와 대중예술 산업의 정점에 있는 K-Pop의 유사성 등이 ‘왜 굳이 주인공이 K-Pop 가수인가’에 대한 충분한 답을 해준 것이다.
우려하던 두 가지, 음악과 서사에서 만족감을 느껴서인지,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누구나 즐길만한, 잘 만든 애니메이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적인 인기 역시 음악과 서사가 훌륭했기에 가능했으리라는 판단이 섰다. 그런데, 다른 이들의 평이 궁금해서 찾아본 기사와 블로그, 소셜 미디어에는 이 두 요인 못지않게 ‘한류’의 영향력을 주요 성공 요인으로 분석하는 글들이 많이 있었다. ‘한국의 문화’, ‘한국의 장소’, ‘한국의 전통’ 등이 잘 묘사되었고, 외국의 시청자들은 이것에서 매력을 느꼈을 것이라는 평가였다. 그리고 이런 글들의 대부분은 ‘한류’의 경쟁력과 ‘K-문화’의 세계화를 강조하는 문장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물론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의 한국적 요소들이 외국인들의 눈에 흥미롭게 보였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K-애니메이션’이 보여준 ‘한류의 힘’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틸컷 ⓒNETFLIX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작품은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이 감독을 맡았고, 성우를 포함한 제작진의 상당수 역시 한국계 외국인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통해 묘사한 한국의 문화는 한국인이 보기에는 어색한 부분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약방 장면이다.) 마치 소셜 미디어에 외국인들이 멋있다고 올린 한국의 사진을 보고 정작 한국인들은 갸우뚱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것들을 외국인들의 눈에 보이는 대로 재해석을 하고 그것을 재현해 낼 때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이 작품 속 한국의 문화 역시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외국인의 방식으로 재창조된 한국의 문화. 이것을 온전한 한류, 혹은 K-콘텐츠라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기존의 한류 개념으로 이를 정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러한 혼종적인 특징은 비단 작품 속의 장면들이나 소품들에 한정되지 않는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대한 논란 중 하나는, 이 작품이 한국의 무속 신앙을 대중화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주인공들이 무당의 맥을 이어 악귀를 무찌르는 퇴마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궁극적으로 상대하는 귀마는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악이다. 원래 존재해 왔던 악. 이는 한국의 무속적 관점에서 정의하는 악과는 차이가 있다. 무속 신앙에서 악은 원 (혹은 한)의 결과이다. 그래서 해원을 통해 악을 해결하는 것이 무당의 역할이다. 물론 퇴마를 하는 무당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는 한국 무속이라기보다는 컬트적 성격이 강한 오래된 민속 신앙, 혹은 무속에서도 비주류적인 요소에서 기인한 것으로 구분한다. 반면 서구의 종교는 퇴마를 악을 다루는 유일한 방법으로 여긴다. 악은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고,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없기에 싸워서 없애야 할 대상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헌터들이 악귀를 무구로 처리하는 장면은 해원보다는 퇴마에 더 익숙한 서구의 종교적 관점에 맞추어 만들어진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한국식 외형을 차용한 전형적인 서구 오컬트물이라고 할 수 있느냐면 또 그렇지만도 않다. 서구 오컬트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과 악의 강한 대립 구조를 유지한다. 반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혐오’와 ‘대립’이 아닌 ‘포용’과 ‘화해’가 선과 악의 극렬한 대결로 인해 망가진 세상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악도 포함이 된다. 그래서 선과 악이 최후의 전쟁을 통해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악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해함으로써 선과 악의 갈등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러한 서사는 서구식 종교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한국식 해원의 현대적 해석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서구식 악의 설정과 한국식 해결 방식이 새로운 형태의 오컬트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처럼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분명 한국적인 것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것을 다양한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재현해 낸 혼종적인 작품이다. 그래서 ‘한류의 쾌거’라고 정의하기에도, ‘한류의 미래’를 긍정하기에도 망설여진다. 어쩌면 이제는 한류를 새롭게 재정의할 때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문화를 세계인의 눈에 맞춰 재현하는 것은 결코 ‘한국적인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그들에게도 설득력이 있는 장르를 만들어내는 길이다. 이러한 방향의 전환은 우리에게도 득이 된다. 우리 안에 갇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비단 한류 문화뿐 아니라 종교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하나의 종교적 관점에서 그 밖의 것들을 경계하기만 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표면적으로 그린 무속 신앙을 비판하는 것에만 치중하다 보면 ‘종교’를 차용해 이 작품이 이야기하려는 것을 놓치게 된다. 선과 악의 갈등을 ‘포용’과 ‘화해’로 풀어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서사가 매우 종교적인 특색이 강한 이 작품을 전 세계적으로 흥행시켰다는 것은 분명 오늘날의 종교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혼종적인 종교를 만들자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다. 종교가 갈등의 근원이 되고 있는 현 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말로만 ‘귀하다, 귀하다’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모든 존재를 ‘golden’으로 보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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