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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모든 것을 예상하고, 대비할 수 있겠는가?’라고 질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잘 모르는 현장과 시민을 만나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면, 적어도 그 현장을 지켜온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행정 편의주의적인 기준에서 인원을 배정하거나 선택하는 것은, 선한 의도를 가진 일에 관해 불필요한 잡음과 갈등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적 참사로 온 세상보다도 더 소중한 가족을 잃고, 사실조차 정확히 모르는 이들에 의해 삶을 난도질당하고 있는 참사 피해 가족들을 만날 때에는, 상처를 이해하기 위한 섬세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 (본문 중)
박성현(4·16 재단 사무처장)
“진심 어린 태도에 눈물이 났습니다.”
여간해서는 눈물을 잘 보이지 않던 4‧16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인 한 엄마의 말이었다. 담담하게 건네준 말이지만, 위로가 되었구나 싶어서 다행이었다.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이가 떠난 정확한 이유에 대해 듣지 못한 엄마의 표정에서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더위가 일상을 지배하던 7월 16일, 이재명 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4‧16 세월호 참사, 10‧29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등 네 개의 사회적 참사 피해 가족, 207명을 만났다. “기억과 위로, 치유의 대화”라는 이름의 간담회 자리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사회적 참사 피해 가족들이 그토록 바라던 사과를 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정부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정부를 대표해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밝히며, 정부의 부재로 인해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았던 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억울한 국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정부의 책임을 강화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 이후, 4개 참사 피해 가족 대표들은 참사 대응의 현안과 정부에게 바라는 요구 사항을, 때로는 울먹거리기도 했지만, 최대한 담담하게 읽어 내려갔다. 이어 비공개 질의 및 응답 시간이 있었다. 대화 시간에는 가족들의 현안인 ‘내 가족이 그렇게 목숨을 잃어야 했던 참사의 진실을 알고 싶다’는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가족 자신들보다는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한 요구를 했다. 좀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생명과 안전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지키고, 사회적 참사 피해자에 대한 혐오와 폄훼가 없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4‧16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은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요청했고, 10‧29 이태원 참사 피해 가족은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다른 참사 피해 가족이 있음을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는 “기억과 위로, 치유의 대화”를 위한 첫 번째 원칙인 ‘경청’을 했다. 가족들의 말을 충분히 듣고, 말로 다 하지 못한 내용은 이후에도 다양한 경로로 의견을 수렴했다. 사회적 참사 피해 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더 많은 배상이나 보상이 아니라, 내 가족이 세상을 떠나야 했던 그 이유를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원인을 모른 채 가족을 떠나보낼 수 없었다. 유가족들은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자는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그들이 겪는 슬픔의 고통을 다른 시민들이 반복해서 겪지 않을 수 있다고 굳게 믿고 목소리를 내 왔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편견을 가지고 혐오와 폄훼의 말로 유가족의 삶을 헤집어 놓았고, 피해 가족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 고통의 시간을 지나온 피해자들에게 이재명 대통령이 보여 준 경청의 태도는 위로가 시작되는 계기로 충분했다. 대통령은 ‘당신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태도’가 위로의 첫 단추임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우리 사회의 행정은 대통령 한 명의 태도가 전부일 수 없다. 그 자리가 있기까지 수많은 관계 부처의 연락과 만남이 있었다. 대통령의 경청 이후에는 관계 부처의 실무로 일이 이어지기 때문에 사전에 준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피해 가족의 초대를 처음 결정할 때, 어떤 참사에 대한 피해 가족을 선택할 것인지, 참사 별로 몇 명을 초대할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피해 가족 단체들의 인원 현황이나 사정을 묻는 과정이 없었다. 이는 선정된 참사 가족들 안에서 참여 인원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겨나게 만들었다. 결국 그 갈등을 조정하는 것도 당사자들 몫이었다.
선정된 4개의 참사에 대해 어떤 언론은 ‘4대 참사’라는 표현을 썼다. 한국 사회에 4개의 참사만 있었겠는가. 4개의 사회적 참사 피해 가족이 초대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른 참사 피해 가족들의 마음에 서운한 감정이 일렁였다. 아리셀 참사 관계자로부터 이야기가 들렸고, 4·16 재단이 제안해 만들어진 부설 기관 재난피해자권리센터와 함께 하고 있는 ‘재난참사피해자연대’에 속한 9개 사회적 참사 피해 가족 중, 4‧16 세월호 참사를 제외한 8개 참사 피해 가족들도 ‘우리는 언제 만날 수 있는가?’ 질문하며 동요하는 순간이 있었다.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기억하고 있을 삼풍백화점붕괴참사, 씨랜드화재참사, 인천인현동화재참사, 2‧18대구지하철참사, 가습기살균제참사, 7‧18공주사대부고 체험학습참사,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참사, 광주학동참사 피해 가족들이었다. 어떤 참사는 이미 오래되어 참사 관련 현안이 없을 것 같지만, 사실은 각 경우마다 해결되지 않은 현안이 하나 이상은 있는 상황이다 보니 기대를 품게 되었고, 그들의 마음에 서운함이 뒤따랐다.
‘어떻게 모든 것을 예상하고, 대비할 수 있겠는가?’라고 질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잘 모르는 현장과 시민을 만나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면, 적어도 그 현장을 지켜온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행정 편의주의적인 기준에서 인원을 배정하거나 선택하는 것은, 선한 의도를 가진 일에 관해 불필요한 잡음과 갈등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적 참사로 온 세상보다도 더 소중한 가족을 잃고, 사실조차 정확히 모르는 이들에 의해 삶을 난도질당하고 있는 참사 피해 가족들을 만날 때에는, 상처를 이해하기 위한 섬세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 ‘경청의 행정’이라는 다소 번거롭게 보이는 이 과정은 행정의 절차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는 시민들에게 불필요한 갈등과 사회적 지출을 줄이는 일이다.
최근 다행스럽게도 여력이 닿지 못했던 피해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정을 잡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 이후에는 현안들이 실질적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앞으로는 한국 사회에서 원인도 모르는 죽음이 사라지기를 희망해 본다. 이에 더해, 사회적 참사로 목숨을 잃는 시민이 없는, 생명과 안전의 가치를 무엇보다도 존중받는 대한민국을 간절하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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