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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세상이 그럭저럭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생길 때, 그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에서 개인과 집단의 실체가 드러난다. 집단 안에서 불의가 벌어지고 억울한 일이 생겨도, 다들 불편한 진실을 덮고 싶어 한다. 문제를 바로잡으려 드는 사람을 오히려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지워버림으로써 현 상태를 간신히, 억지로 유지하려 한다. 그렇게 세상은 ‘그 사람만 없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굴러가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한 무언가가 희생된다. 영화는 바로 그 지점을 뼈아프게 묻는다. (본문 중)
홍종락(작가, 번역가)
연상호 감독의 신작 영화 〈얼굴〉을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마음속에 여러 겹의 파문이 남았다. 놓치고 싶지 않았던 그 파문을 이 글로써 함께 나누고 싶다.
이야기의 출발
영화는 시각장애인 도장 장인 임영규와 그의 아들 임동환 부자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어느 날 아들은 경찰로부터 충격적인 전화를 받는다. 40년 전 집을 떠난 어머니 정영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살해 가능성까지 언급한다. 아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더 나아가 어머니의 삶을 되짚는 여정을 시작한다.
이야기의 방식이 흥미롭다. 영화는 다섯 차례의 인터뷰라는 형식을 취한다. 장례식장을 찾아온 친척을 시작으로, 지인과 주변 인물들이 차례로 입을 열면서 정영희라는 인물의 흔적이 조금씩 드러난다. 그런데 누구나 그녀를 ‘괴물처럼 못생겼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얼굴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인터뷰가 이어질수록 관객의 질문은 깊어진다. “그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영화 <얼굴> | 감독: 연상호 | 103분
불편함과 부정의 얼굴
연상호 감독은 인간의 민낯(!)을 가차 없이 드러내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 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에는 악역으로 규정할 만한 인물이 여럿 등장하지만, 정의롭다고 부를 수 있는 인물은 단 한 명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람을 공동체는 불편해한다. 못생겼다는 이유,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를 대며 존재 자체를 부정해 버린다.
평소에는 세상이 그럭저럭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생길 때, 그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에서 개인과 집단의 실체가 드러난다. 집단 안에서 불의가 벌어지고 억울한 일이 생겨도, 다들 불편한 진실을 덮고 싶어 한다. 문제를 바로잡으려 드는 사람을 오히려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지워버림으로써 현 상태를 간신히, 억지로 유지하려 한다. 그렇게 세상은 ‘그 사람만 없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굴러가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한 무언가가 희생된다. 영화는 바로 그 지점을 뼈아프게 묻는다.
관객은 어느 순간 깨닫는다. 스크린 속 불편한 인물들이 사실은 우리 자신의 그림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역시 불편한 진실을 덮어 두고 불의와의 대결을 피한 채, 현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를 밀어내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영화는 정영희의 ‘괴물 같은 얼굴’을 말하면서 동시에 그 얼굴을 외면하는 우리의 추한 얼굴을 비춘다. 관객은 처음에는 정영희의 얼굴을 궁금해하고 그 얼굴에 관심을 갖게 되지만, 어느새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주목하게 되고, 이윽고 자신의 얼굴을 돌아보게 된다. 꼭꼭 숨겨놓았던 자신의 맨얼굴이 등장인물들의 얼굴에 겹쳐 드러나면서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영화 속 한 장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단호하다.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우리는 어떤 상황을 만나면 대개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먼저 계산한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 덕분에 어찌어찌 큰 마찰 없이 무난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아주 가끔, 앞뒤 계산하지 않고 용감하게 진실을 외치는 사람, 세상을 어지럽히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곤란을 자초한다. 예수, 세례 요한, 구약성경의 예언자들…. 신앙의 언어를 벗겨 내고 그들이 보여 준 언행 자체에 주목한다면 그들이야말로 뒷배 없이 진실을 말하다 고난을 겪은 이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정영희라는 인물도 그런 부류로 보인다. 그녀의 선택과 목소리는 공동체를 불편하게 했고, 그 불편함은 곧 배척으로 이어졌다. 이 대목에서 문득 돈 맥클린의 노래가 떠올랐다. 빈센트 반 고흐를 기리며 쓴 곡의 이 구절이.
This world was never meant for one as beautiful as you.
이 세상은 당신처럼 아름다운 사람을 담기엔 애초에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어요.
평소 그럭저럭 살만한 곳처럼 보였지만 얇디얇은 천으로 간신히 가려져 있던 세상의 치부가 확 드러나는 때가 있다. 그때 그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피곤해진다. 나는 그런 사람 곁에 있어 본 적이 있다. 문제가 생겼는데 나는 그냥 눈감고 평소처럼 지내고 싶었지만, 그 사람이 문제를 공론화시키니 함께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덕분에 피곤하고 불안하지만 자부심 가득한 시간을 보냈다. 용감한 시간을 살았다. 또 그런 일이 있으면 어떻게 될까? 모르겠다. 난 그저 내 앞가림도 버거운 보통 사람일 뿐인데. 그래도 예수님의 삶을 들어 보지 못한 사람처럼, 정영희의 얼굴을 안 본 사람처럼 살 수는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공동체를 위협하는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만만한 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일은 수시로 벌어진다. 문제의 진짜 원인, 상황의 본질에 주목하지 않고, 희생양을 이상한 사람, 괴물 같은 존재로 몰아가는 것, 심하게는 악마화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의 양심을 달래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 진짜 악당은 따로 있을 수 있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집단적 따돌림과 괴물 만들기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마지노선을 정해두자. 그리고 거기서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앞으로 나가 보는 건 어떨까.

영화 <얼굴> 스틸컷.
보지 못하는 눈, 보지 않으려는 눈
영화 속 시각장애는 단순한 신체적 조건을 넘어선 은유로 기능한다. 임영규는 눈은 멀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명장으로 불릴 만큼 솜씨를 갈고닦았다. 그의 인생은 통째로 차별과 무시와 폭력에 맞서 독립적 삶을 추구한 투쟁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의 팍팍하고 황폐한 삶, 말 그대로 어두운 삶에 빛처럼 들어온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 그는 그녀의 진심을 볼 수 있었고, 그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따스하고 정 많은, 다들 인정하는 착한 여인. 정말 함께하고 싶은, 호강시켜 주고 싶은 대상을 볼 수 있었다.
시각 장애인이었던 그는 당연히 아내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한때 아내를 진정한 의미에서 볼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자격지심이 모든 것을 뒤틀어놓는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나머지 육체의 눈만 아니라 마음의 눈까지 멀고 만다. 오랫동안 남들이 쏟아내는 조롱과 무시에 짓눌렸던 그는 마침내 스스로 지옥에 갇혔다. 그것이 그의 진정한 주체적 판단이었는지, 아니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합리화였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선택의 순간에 소중한 사람을 외면하고 힘 있는 쪽, 안전해 보이는 쪽을 택했다. 결국 ‘눈이 멀었다’는 것은 단순한 육체적 사실을 넘어, 진실을 감당할 용기와 시선을 잃어버린 인간의 상태를 드러낸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얼굴
〈얼굴〉은 결코 편안한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불편함 속에 담긴 진실을 외면하지 못하게 만든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마음이 계속 무겁다. 그러나 그 무거움은 불행이 아니라 선물이다. 그것은 내가 마주하기 싫은 얼굴을 끝내 바라보게 했기 때문이다. 연상호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의 얼굴을 지우며 살고 있는가?
끝으로, 그래서 정영희의 얼굴은 어땠느냐고? 어떤 괴물 같은 얼굴이었느냐고? 그걸 확인하려면 영화를 보셔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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