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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7.6%로 아일랜드에 이어 세계 2위이다. 국가 산업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다른 모든 선진국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그 제조업도 대부분 반도체 등 첨단 기술들이다. 그런데 국가의 부를 책임지는 이 업종에 종사하는 기술자의 위상은 이런 통계에 걸맞지 않게 매우 낮다. (본문 중)
성영은(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지난 9월 4일,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사 건설 현장에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무장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불법 체류자를 단속한다는 이유로 우리 기술자 317명을 포함하여 475명을 체포 구금한 것이다. 미국과의 긴박한 협상 끝에 우리 기술자 316명은 9월 12일 귀국했다. 구금되었던 317명 중 취업이 허가된 영주권 신청자 1명 외 316명은, 비자 면제 프로그램(ESTA) 소지자 170명과 단기 사업/방문 비자(B1/B2) 소지자 146명으로 불법 체류자는 없었다. 그러나 이들이 미국 내에서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느냐의 문제는 아직 양국 간에 이견으로 남아있다, 이 사건 2주 뒤에는 미국 기술 전문직 취업 비자(H-1B) 신청 비용을 약 1.4억 원(10만 달러)으로 100배 인상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조지아주 구금 사태에 대해 우리 언론들은 연일 미국이 우리 기술자(혹은 노동자)들을 홀대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에 공장까지 지어 주는데 어떻게 범죄인 취급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전세기를 띄우는 뉴스를 더해 마치 우리는 기술자나 노동자를 굉장히 우대하는 것처럼 보도했다. 기술 전문직 비자 신청 비용 대폭 인상에 대해서는 우수 기술자를 국내에 유치할 절호의 기회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올바른 분석일까? 굉장히 복합적인 이슈들을 겉으로만 보고 감정적으로 다루고 만 것은 아닐까. 정치 외교적인 이슈 이면의 미국 정책에 대한 냉정한 분석을 통해 우리에게 던져진 숙제를 언급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조지아주 구금 사태나 기술 비자 수수료 인상은 미국이 자국 기술자나 노동자의 위상을 지키려는 정책의 일환이다. 우리가 외국인 불법 체류자를 단속하는 이유처럼 말이다. 물론 미국이 그 과정에서 외국인의 인권을 무시한 처사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미국에서 기술자의 위상은 우리나라와 비교가 안 되게 높다. 단순 기술자나 노동자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미국의 기술자 우대는 높은 인건비와 각종 복지 및 안전시설 설치로 인한 비용 증가로 제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결과를 낳았고,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 때부터 빠르게 그것을 원상 복구해 보려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런 정책은 트럼프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 기업들도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이 이 제조업 부흥 정책을 장기화할 것까지 예상하고 미국에 선제적으로 공장을 짓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할 점은 우리 사회에서의 기술자의 위상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기술자의 위상은 무척 낮다. 전문 기술자조차 그 위상이 말이 아니다. 그러니 단순 기술자나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나 그들의 위상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지표상으로 우리나라는 세계 4위의 제조업 경쟁력 지수를 가진 나라이다. 우리보다 앞선 나라는 독일, 중국, 아일랜드밖에 없다. 우리나라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7.6%로 아일랜드에 이어 세계 2위이다. 국가 산업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다른 모든 선진국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그 제조업도 대부분 반도체 등 첨단 기술들이다. 그런데 국가의 부를 책임지는 이 업종에 종사하는 기술자의 위상은 이런 통계에 걸맞지 않게 매우 낮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기술자나 노동자의 값싼 노동력으로 이만큼 성장해 왔는데, 그 인식이 아직 바뀌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다. 이제 그 인식을 바꿔야 할 시점인데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직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후진적이다. 법률, 의료, 경영 등의 위상에 비해 기술에 대한 인식이나 대우는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니 우수 인재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의대나 로스쿨로 몰려간다. 관료 사회에서도 기술직의 위상은 낮다. 각종 산업 재해나 재난이나 위기 대응 후진성의 배경에도 이런 사회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기술자나 노동자의 생명을 상대적으로 하찮게 여기는 태도이다. 그러니 어렵게 공부한 우수한 공대 졸업생들은 기술자들이 존중받고 대접받는 미국이나 외국계 기업으로 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공계 유학생들이 어떻게든 미국에 남으려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교회도 이 문제 앞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직업의 귀천에 가장 반대해야 할 교회가 사실상 우리 사회의 직업 우열을 부추기는 데 일조해 왔기 때문이다. 많은 교회는 지난 50년의 성장 시대에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 편에 서 왔고, 기술자나 노동자들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소위 약자 편에 서기보다 강자 편에 서서, 심지어는 기술자나 노동자의 위상을 논하는 것을 이념의 잣대로 판단하기도 했다. 이제 교회가 그 본연의 자리로 돌아와야 할 때이다. 성장의 시대가 끝난 우리나라에서 기술자와 노동자의 위상을 높이는 일은 교회가 담당할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기술 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다. 우리 신앙은, 특히 종교개혁이 가르친 우리 신앙은, 육체적 노동을 존중하고, 자연을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로 보고, 자연 속의 결핍을 인간 타락의 결과로 본다. 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이런 신앙에 기초하여 육체적 노동을 존중하고 자연의 결핍을 극복하는 기술 개발을 하나님이 주신 선한 임무로 알고 소명으로 행했다. 서구의 과학혁명과 산업혁명, 그리고 기술과 기술자들을 존중하는 태도의 배경에 이런 기독교적 영향이 들어있다. 우리 한국 교회도 이제 이런 신앙으로, 국가의 부를 늘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기술자와 노동자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위상을 높이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교회가 이들을 환대하고, 우리 자녀들과 청년들이 이런 직업을 가지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하는 일에 앞장서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제도 개선이나 법의 제정을 더 이상 이념의 잣대가 아닌 기독교 정신으로 바라보고 적극적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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