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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기까지 가장 걱정스러웠던 점은 아이를 낳으면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그중 가장 큰 부분은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아’, 즉 사회적 정체성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 제도가 예전보다 훨씬 더 잘 마련되어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육아로 인해 직장에 복귀하지 못하거나, 복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하거나, 애초에 육아 휴직을 쓸 수 없어서 직장을 그만두는 등 다양한 형태의 경력 단절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본문 중)

 

김정슬기(더불어숲평화교회)

 

나는 최근에 임신과 출산을 하고 현재는 육아 휴직 중이며, 하루 대부분을 아이를 돌보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임신 전에는 아이 양육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임신·출산·육아(이하 ‘임출육’)와 관련 제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막상 임출육을 경험하며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제도들이 생각보다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예를 들면 서울시 임산부 교통비 70만 원 덕분에 입덧이 심했던 초기나 몸이 무거워진 만삭 때 택시를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었다. 임신출산바우처 100만 원으로는 산부인과 진료와 약제비, 수술 및 입원비까지 결제하고도 잔액이 남았다. 첫만남이용권 200만 원은 산후조리에 보태어 쓸 수 있었으며, 산후조리경비 100만 원으로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산후도우미’의 정식 명칭)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 제도 덕에 경력 단절과 생계에 대한 불안을 잠시 내려놓고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점도 컸다.

 

임신 전에는 이런 제도에 관심이 없었던 만큼, 막상 혜택을 받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지원이 있구나’라고 느꼈고, 실질적으로도 상당히 도움이 됐다.

 

그러나 한계도 명확했다. 예컨대 만 35세 이상 임산부에게 권고되는 니프티(NIPT) 정밀 기형아 검사는 병원에 따라 60만~80만 원 이상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임산부가 이 비용 때문에 임신출산바우처를 예상보다 빠르게 소진하는 게 현실이다. 2024년 기준 국내 첫째 아이 평균 출산 연령이 33.7세임을 고려하면, 현재 바우처 금액은 이러한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는 못하고 있다.

 

필자가 경험한 제도적 한계 중 대표적인 예는 ‘임산부 배려석’ 문제였다. 지하철과 버스에서 임산부 배려석은 대부분 중장년층이 차지하고 있었고, 임산부 배지를 가방 정면에 달아 두어도 거의 양보를 받지 못했다. 문제는 제도적 허점이었다. 임산부 배려석은 어디까지나 ‘배려’이지, 임산부가 아닌 사람이 앉아도 불법이 아니며 양보할 의무가 없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따라서 양보를 부탁해도 ‘의무가 없다’는 말이 돌아오면 할 말이 없게 된다. 이런 구조 때문에 선뜻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이 두 가지 사례 외에도 많은 여성들과 양육자들이 여러 제도의 한계를 경험할 것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지금의 임출육 제도가 과연 저출생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구조인가 하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기까지 가장 걱정스러웠던 점은 아이를 낳으면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그중 가장 큰 부분은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아’, 즉 사회적 정체성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 제도가 예전보다 훨씬 더 잘 마련되어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육아로 인해 직장에 복귀하지 못하거나, 복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하거나, 애초에 육아 휴직을 쓸 수 없어서 직장을 그만두는 등 다양한 형태의 경력 단절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2019년 여성가족부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임출육으로 경력 단절을 경험한 여성은 3명 중 1명이라고 한다. 또한 육아 휴직을 사용한 여성 10명 중 6명은 원래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했으며, 경력 단절 여성이 다시 일자리를 얻기까지 평균 7.8년이 걸렸다고 한다.

 

육아휴직급여 제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원액을 줄여 ‘복귀를 유도’하는 원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여성 경력 단절의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 채 개인에게 생계 부담을 안겨 등 떠밀려 복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만드는 제도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렵게 복귀를 결정해도 다음과 같은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육아기 단축 근로’ 제도를 사용하면 하루 2시간 단축 근무가 가능해 자녀의 어린이집 등·하원을 시킬 수 있지만 사용 기간이 제한적이고, 실제로는 회사 내부 분위기 때문에 신청을 망설이게 되는 경우도 많다.

 

육아 휴직 역시 마찬가지다. 법적으로 1년이 주어지고 남편의 사용 시 6개월 추가가 가능하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에서 남성이 육아 휴직을 쓰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여성은 1년 육아휴직 후 돌도 채 되지 않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복직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국가가 말하는 저출생 해법이 ‘조기 어린이집 입소’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결국 현장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면 이 제도들은 허울뿐인 제도가 된다.

 

정부는 이를 ‘일·가정 양립 지원 제도’라는 이름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정말로 일과 육아의 병행이 가능해지려면 기업 내에 적절한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국가는 양육자를 고용하고 그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를 낳아도 ‘일하는 나’를 잃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길 것이다.

 

현재 정부가 기업에 제공하는 지원은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 사용 시 대체 인력 지원금과 기업 지원금 정도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현금성 지원에 그친다.

 

핵심은 일하는 엄마 아빠가 ‘주 40시간 전일제’와 ‘퇴사’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하는 이분법적 구조를 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육아기 부모에게 원격 근무와 같은 유연 근무제를 허용하는 기업을 국가가 지원하거나, 기간에 정함이 없는 주 40시간 ‘미만’의 다양한 일자리 모델을 만드는 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는 기업에게도 운영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이고, 부모에게도 일과 양육을 병행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다양한 형태의 노동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 역시 국가가 주도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한 회사의 중년 직원에게 “요즘 여자들은 임신이 권력이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본인도 과거에 임출육을 경험했다면서, ‘나 때는 임신하면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이 어디 있었냐, 그냥 퇴사하는 거였다. 요즘 여자들은 왜 산후조리원에 몇백만 원을 쓰냐. 하긴 나라에서 산후조리원 비용을 주지 않냐’ 등의 말도 덧붙였다(첫만남이용권을 산후조리원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 산후조리원 비용을 나라에서 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현재 여성들이 사용할 수 있는 제도를 ‘권력‘이라며 비꼬는 듯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싸워서 일궈낸 권리를 본인의 자녀들이 누리고 살아간다는 이면의 사실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요즘은 너무 많은 혜택을 받는다”라는 시선 자체가 돌봄과 노동을 바라보는 사회의 기준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 주는 듯하다. 돌봄은 철저히 개인 희생의 영역이며, 육아로 인한 커리어 단절은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어떤 부모가 이 사회에서 건강하게 일과 돌봄을 지속할 수 있을까.

 

저출생 대책의 핵심은 더 많은 지원금이 아니라, 양육자가 ‘나’를 잃지 않고도 돌봄을 지속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아이를 낳아도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 육아가 개인이 희생할 일이 아니라 공동체의 책임으로 인식되는 사회가 되지 않는다면 변화는 어려울 것이다. 임출육 제도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진짜 고민해야 할 방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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